항상성, 예비력 그리고 버퍼

생명의 원리, 생리학 I

by 이상무

등산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작은 산을 오를지라도 오르기 시작할 때는 처음에는 다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다 보면 점차 쉬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며 자연스럽게 오르게 된다. 그러다 또 어느 시점을 지나게 되면 아무리 더 힘을 내려해도 몸은 천근 만근이 되고 그런 상태에서 하산하게 되면 다리가 풀려 자칫 실족할 위험이 있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체력을 잘 가늠해야 하고 자신의 몸의 생리적 반응에 대해 잘 이해하여야 한다.


그림- Gemini


산에 오를 때 내 몸이 느끼는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 몸의 생리학적 구조가 일직선이 아닌 시그모이드 곡선을 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의 몸의 생리학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가는 자칫 낭패를 볼 수 있는데 가속 구간의 투입 대비 성과의 높은 효율을 직선관계로 오인하여 조금만 더하면 더 높은 성과를 내겠거니 하지만, 정점지점(plateau)을 넘어서면 조금의 증가된 성과를 위해서도 갑절이 넘는 내 몸의 자원 투입을 해야 하고 목표치를 자신의 능력보다 과하게 잡은 결과 순간 급속히 탈진에 빠지는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다. 육상이나 스케이트 선수들에게 페이스 조절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순 산술 공식이 통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몸의 생리학적 역량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



항상성 (homeostasis)

우리 몸은 세포와 조직의 기능이 최적의 상황에서 돌아갈 수 있도록 몸의 내부 조건을 항상 일정하게 맞추려는 기전을 작동시키고 있다. 이를 일컬어 항상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체온은 섭씨 36.8도 , 혈액의 산도는 pH 7.4, 공복 시 혈당은 80-100 mg/dL, 혈장 삼투압은 약 300 mOsm/L, 혈액의 Na 농도 135-145 mmol/L, 동맥혈 산소 분압(PaO2) 약 80~100 mmHg, 산소 포화도로는 95-100% 유지, 동맥혈의 이산화탄소 분압(PaCO2)은 35-45mmHg 등 이루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생화학적, 생리적 적정범위를 놀랍게도 우리 몸은 유지하며 몸의 구성원들이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몸은 측정하고 피드백을 주고 조절하는 관리 시스템을 운용한다. 예를 들어 강을 따라 발달한 도시를 생각해 보자. 강은 일 년 내내 일정 수위를 유지해야 상수도 공급과 강을 이용한 운송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홍수로부터도 보호받게 한다. 이런 시스템이 잘 정비될수록 그 도시민은 예측 가능한 도시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려면 수위를 측정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상류에서 물을 저장하였다가 더 흘려보내거나 덜 흘려보낼 수 있는 댐들이 건설되어야 하고 수위와 댐 방류사이에 주고받는 피드백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이것이 잘 작동하면 강변 도시 주민들은 항상성 있는 환경으로 인해 도시 생활을 즐기게 될 것이다.


혈당의 항상성을 예를 들어 보자. 정상인에서 설정값은 80-100 mg/dL이다. 이 값의 감지 기관 즉 모니터링 시스템은 췌장에 위치한다. 췌장의 베타 세포는 혈액 속에 떠다니는 포도당 농도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모니터링한다. 정해진 혈당보다 높을 경우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신호를 보내 간이나 근육 및 지방 등 여러 세포에서 혈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도록 한다. 인슐린 없이도 혈당을 사용하는 기관은 뇌와 운동할 때 근육세포가 있다. 혈당이 정해진 수준보다 낮아지면 글루카곤을 분비하여 간에서 저장형태의 글리코겐에서 포도당으로 전환하여 혈당을 상승시킨다. 이런 측정, 피드백, 조절 시스템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주요 구성 성분들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각 고유의 개별 시스템으로 작동하는데 큰 틀에서 말하면 체온 조절, 혈당 조절, 체액 및 삼투압 조절, pH 및 혈액가스 조절, 혈압 및 심혈관 조절, 전해질 조절시스템과 같이 다양한 항상성 유지 시스템이 지금 이 시간에도 내 몸에서 작동 중이다. 이 항상성 유지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질병이 발생한다. 당뇨병과 같이 말이다.


예비력 (reserve)

폐나 신장은 한쪽만 있어도 일상에 지장이 없고 간도 70-80% 기능을 상실해도 큰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우리 몸의 해당 장기의 예비력 혹은 기능적 예비력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심장, 췌장, 골수 등이 기능적 예비력을 가진 장기로 꼽힌다. 이렇게 디자인된 것은 생명체의 역동적 활동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다. 휴식 시 안정상태에 비해 운동 강도와 개개인의 심폐능력, 체력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안정상태에 비해 극단적으로 활동량을 끌어올릴 때 우리 몸의 산소 소비량은 약 10배, 혈액 공급량(심박출량)은 약 6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 역동적인 상황에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 몸은 예비력을 지니고 있다.


버퍼 시스템 (Buffer Systems)

버퍼 시스템은 인체 내부 조건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 장치로, H⁺ 농도를 놀랍도록 정교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 몸의 거의 대부분의 효소들은 이에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산소를 마시고 영양소를 태울 때,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물과 만나면 탄산이 되며 H⁺을 방출한다. 여기에 운동을 하면 이산화 탄소가 더 발생하고 무산소 운동이나 지방을 태우게 되면 젖산, 키톤체 같은 산성 물질들이 또 생성되어 혈중 H⁺ 농도가 출렁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 몸의 효소체계는 위험에 빠질 수 있는데 이를 폐를 통한 이산화 탄소의 배출, 신장에서의 H⁺ 배출, 중탄산염 버퍼 시스템이 작동하여 항상 일정 수준을 맞추고 있다. 이 균형이 급속도로 흐트러지면 우리 몸은 응급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과 수련의 시절 이촌동의 K병원에 파견 나갔을 때 일이었다. 젊은 여성 분이 급성 복통과 구토와 급속도로 악화되는 전신 상태로 응급실로 내원하였는데 언뜻 보면 급성 위염이나 위경련을 의심할 만한 상태였는데 환자의 상태는 좀 더 심해 보였다. 하여 몇 가지 피검사를 시행하였는데 놀랍게도 높은 혈당과 케톤체 양성, 그리고 대사성 산혈증을 보였다. 본인은 당뇨병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1형 당뇨병이 있었던 것이었다. 응급 조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버퍼 시스템 역시 시그모이드 곡선의 형태를 보이는 생리적 반응을 보이는데 워크로드가 증가하는 동안 pH를 안정화하고 퍼포먼스를 유지하지만, 완충 한계에 도달하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여 급속도로 악화된다. 그 여성분도 방송계에서 매우 활동적인 분으로 열심히 일하시다 급속도로 악화되어 응급실로 오게 된 것이었다. 자세히 알아보면 이미 전조 증세들이 있었을 터이나 견딜만하다고 생각하고, 바쁜 일과를 소화 하느라 무시하게 되니 그런 큰 일을 치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우리 몸의 생리학적 현상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균형 잡힌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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