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 제주 여행 I
비행기를 놓치다
휴식이 필요한 때였다. 설연휴전후를 이용하여 제주도로 향했다. 첫날 김포공항을 향한 아침 길은 예상보다 더디 걸렸다. 20분을 남겨 놓고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막 마감하였다는 직원의 안타까워하는 응답이 귓가에 웅웅 거렸다. 그날과 다음날 까지도 모든 항공사의 모든 항공편이 전석 매진.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나의 잘못으로 비행기를 타지 못한 일은.
이렇게 우릴 당혹스럽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번 제주도 여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비행기 편을 예약하고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이 대기순번을 기다려 결국 우리 가족은 각각 흩어져 출발하여 1시간 넘게 예정보다 늦게 그래도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아이가 정하는 여행
제주시에 맛있는 빵을 파는 곳으로 이름이 난 세컨드밀 빵집에서 다음날 한라산 등반 시 먹을 점심 샌드위치를 사고 방금 나온 식빵을 샀다. 작년 8월 가게를 연 모양인데 벌써 맛집으로 소문이 났는지 우리 집 아이는 이 집에 가야 한다고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이젠 아이들이 하자는 것을 해야 맛있는 것을 얻어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괜히 툴툴거리지 말고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점심을 먹은 후였지만 갓 나온 식빵이 담백하고 고소하고 다소 탄탄해서 함께 시킨 커피와 먹기 좋았다. 조금만 맛보려 했지만 빵집을 나설 때 비닐봉지엔 초라해져 불쌍해 보이는 식빵 조각만 남았을 뿐이었다.
점심 식사 후 한라 수목원을 거닐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우렁찬 수탉의 울음소리가 반겨 주었다. 내어 놓고 누군가 키우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동백꽃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경인 지역에선 볼 수 없는 굵직한 대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도 있고, 광이 오름을 오르며 가볍게 산책할 곳도 있었는데 수목원은 무료로 개방되었고 주차비만 받고 있었다.
수목원 산책 후 용담포구 인근 카페에서 할 일을 하고 있는 아이를 기다리며 인근 바닷가 길을 걸었는데 비행기들이 손에 잡힐 듯 착륙하느라 지나가고 있었다. 제주 공항 착륙 하늘 길인가 보다. 드론을 날리는 것이 금지된 곳이라 이를 관리하시는 분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일이 다 마친 후 며칠 해 먹을 거릴 대형 마트에서 사서 펜션에 도착하는 것으로 첫날의 '우당탕퉁탕' 일정은 저물어 갔다.
한라산 속밭 대피소까지
둘째 날 우린 미리 예약이 필요한, 성판악 탐방 안내소에서 오르는 한라산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등반이라 하니 거창해 보이지만 우린 이 코스의 2/5 지점인 속밭 대피소까지 갔다 오기로 하였다. 가는데 4.1Km를 왕복하는 것이니 대략 8km를 걷는 길이어서 우리 체력엔 이 정도가 적절해 보였다. 우리 집 아이는 다니는 대학원 교실에서 얼마 전에 정상까지 다녀왔지만 우리에겐 버거워 보였다. 완만한 오르막이라 그래도 험하지 않지만 돌들이 깔린 길이라 걷기 불편한데 오를 때에는 눈이 녹지 않아 아이 말로는 오히려 편하다고 하였다. 준비해 간 아이젠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
오르는 길 주위엔 굴거리나무와 조릿대, 서어나무들이 보였고 중간에는 울창한 삼나무 숲도 보였다. 동절기에는 11:30에 입산이 통제가 되는데 우린 10시경에 오르기 시작하여서 그런지 산에 오르는 동안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몇몇 사람들이 지나칠 뿐이었다. 나중에 속밭 대피소에서 보니 그 이상 올라갔다 내려온, 몹시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산에는 녹지 않은 눈이,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파란 것이 나무들 사이사이 보이며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니 완만히 지속적으로 오르는 길이 지루할 듯하다가 청량감으로 다시 신선해 지곤 하길 반복하는데 어느덧 오늘의 목표 속밭 대피소까지 왔다. 그곳엔 세면 시설이 아예 없는 화장실과 대피 시설 그리고 야외 의자들이 있었고, 햇빛이 따사로워 우린 야외 벤치에서 전날 세컨드 밀 빵집에서 사 가지고 간 샌드위치와 끓여 온 뜨거운 물에 탄 코코아 한잔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것이 호사가 아니고 무엇일까?
야외 벤치는 나이 드신 분들, 온 가족이 오신 분들, 군대에서 휴가 나온듯한 젊은이들, 간간이 들리는 말로 미루어 보건대 이탈리아와 히말라야 등 여러 곳을 두루두루 다녀오신 것 같은 근육질의 나이 지긋한 여성분 등 다양한 분들이 점심식사를 하며 삼삼오오 앉아 즐거운 소음을 내고 있었다. 속밭 대피소의 맑은 공기는 사람들의 소리가 오가며 봄을 재촉하는 따뜻한 햇빛과 함께 아지랑이처럼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따뜻해진 날씨로 인해 눈이 녹아 질척거렸고 녹은 눈에 드러난 돌들이 하산길을 불편하게 하였다.
블루베리 요구르트 스무디
탐방로 입구까지 내려온 우리는 일몰을 보러 서쪽 바닷가로 가기로 하였다. 시간이 좀 있어 바닷가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일몰 명소 수월봉에 가려고 하였는데 들린 카페에 아내가 마시고 싶어 하는 음료인 블루베리 요구르트 스무디가 없어 우린 다른 곳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아내의 까다로움에 평소처럼 그냥 마시지 말던가 무난한 허브차를 마시지 오늘따라 자신이 마실 것을 주장하는 것이 탐탁하지 않게 생각되었으나 내색은 하지 못하였다. 아이는 나보다 더 인내심과 배려심이 많아 다시 스마트폰으로 여러 곳을 찾아보더니 아내가 원하는 음료를 제공하는 곳을 드디어 발견하였다.
도착한 곳은 지질 지형이 특이한 곳인 모양이었는데 올레길 12코스의 일부구간인 곳이었다. 바다 건너로 차귀도와 와도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수월봉도 보였다. 그곳에 주차하고 하이헬로블루카페로 갔다.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서 전망이 좋았고 아내가 원하는 음료도 있었고 카페 주인장도 상냥하고 친절한 분이었다. 주문한 커피를 마시고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다 시간이 아직 남아 나는 해변가 길을 걷고 싶었다.
돌고래를 보았다
가족은 카페에 남아 있고 바람이 다소 세게 부는 해변가로 옷깃을 여미며 걸어갔다. 바다가로 난 길 한쪽으론 벼랑 같은 산기슭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다소 기이한 지질적 구조가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바다 저 멀리서 돌고래로 보이는 물체들이 바다 수면을 오르내리며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바람의 깃털이 바다 수면을 스치며 지나고 남방 큰 돌고래 십여 마리가 왼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라 가족들에게 전화로 돌고래가 오고 있다고 빨리 내려오라고 하고 바닷가 쪽으로 나 있는 전망장소로 달려갔다 그곳에 몇몇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체면이고 뭐고 "돌고래다!"라고 여러 번 외쳤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나의 외치는 소리에 놀라 다 바닷가 전망 장소로 몰려왔다.
작년 2월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해안로에 돌고래를 보러 갔다가 찬 바닷바람만 실컷 맞고 왔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이번 제주 여행에서 돌고래를 볼 것은 아예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돌고래를 본 것이다. 그것도 십여 마리가 넘는 돌고래들이 왼쪽 바다에서 와 차귀도 앞쪽으로 왔다 와도 쪽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황홀해하며 이 바다 생물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카페로 돌아와 보니 카페 주인장이 어제도 돌고래가 지나갔다며 가끔 돌고래들이 지나가는데 바로 지금 시간대라고 하였다. 해지기 전 일몰이 다가올 때 말이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는데 카페 주인니 아까 그 돌고래들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였다. 카페 안에서도 돌고래들이 지나가는 것이 정말로 보였다. 우린 다시 바닷가로 달려 나갔다. 우린 드디어 제주도에서 돌고래를 보았다.
돌고래는 매일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한번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인데 오늘은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간다는 주인장의 말에 우린 돌고래들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두 번이나 보여 주다니. 다음 날 그리고 그 이후 또 한두 번 더 같은 곳을 방문하였지만 그날 이후 돌고래를 더 보진 못하였다. 매일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작년 한번 보러 갔다 보지 못해 실망한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제주도를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이번 여행의 시작에서 제주도를 갈 수 있을지 조차 모를 상황에서 돌고래를 보기까지 되씹어 보니 다음과 같은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의 발걸음은 여호와께 달려 있으니
사람이 어찌 자기 길을 알 수 있겠는가?
A man's steps are ordered by Jehovah;
How then can man understand his own way? 잠언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