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놀랐다.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배운 이든 못 배운 이든, 부자든 가난한 이든, 권세가 있는 이든 보잘것없는 사람이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었다. 시각 장애인이 보게 되고, 고열로 죽어가던 아이가 살아났다.삼십팔 년간 자리에 누워 있던 병자가 소생되어 자리를 들고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였다. 한두 번 이런 일이 있었다면 우연이라 하거나 어쩌다 일어난 기적이라고 하겠지만 연달아 이런 일들이 벌어지자 많은 사람이 소동하였고, 그분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분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 외딴곳으로 가시자, 수많은 사람이 이 동네 저 동네에서 나와 그분을 따랐다. 그들은 이분께서 다음에 또 무슨 일을 행하실지 궁금해하였다. 다른 이들의 난제가 해결되는 것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듣자 자신의 문제도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외딴곳에 오자 먹을 것이 문제가 되었다. 족히 만여 명이 그분을 따랐는데, 도착한 곳은 외딴곳이고 이미 저녁이 되어 가니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의 음식을 구할 것인가? 것이라고는 한 아이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모두들 코웃음을 치며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분은 사람들을 무리 지어 앉게 하셨다. 사람들은 오십 명, 백 명씩 무리 지어 앉았다. 저 멀리 있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다. 이때 그분은 그 아이의 보리떡과 물고기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셨다.
우리는 얼마나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특히 도시에 살며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한 지 수년이 흘렀을지도 모른다. 한번 하늘을 우러러보라. 그냥 힐끗 보지 말고, 넓은 들로 나아가, 산 등성이에 올라 하늘을 한동안 우러러보라. 우리 마음에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네발 달린 짐승들처럼 땅만 보고 살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게 지어졌다.
하늘을 우러러보신 후 그분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다. 무엇에 감사하신 것일까? 1805년 독일에서 출생한 죠지 뮐러는 청소년 시기를 방탕하게 보냈다. 거짓말과 도박과 술로 세상을 살다가 20세에 회심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여러 과정을 거쳐 고아원을 운영하게 된 그는 갈데없는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는데, 정부의 도움을 받거나 기부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고아원을 운영하였다. 아이들을 한 번도 굶긴 적이 없고 평생 5만 번 기도를 드렸는데 한 번도 응답받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를 기도의 사람이라고 부를 만하였는데,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아이들에게 줄 음식이 다 떨어졌다고 원생이 뮐러에게 이야기하였는데도 뮐러는 아이들을 평소처럼 식탁에 앉히고 접시를 나누어 준 후감사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그런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빵집 주인이 빵을 가져온 것이었다. 사실 마을 빵집에 불이 났었는데, 불을 끄며 가게에 있던 빵들을 밖에 내어 놓았었고, 뮐러의 고아원이 생각난 주인이 그 빵들을 가져온 것이었다. 빈 접시를 놓고 감사하면서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가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분께서 무엇에 대해 감사하셨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시고 그 다섯 개의 떡을 떼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떡이 계속 떼어지는 것이었다. 떼어도 남아 있고 또 떼어도 남아 있고, 물고기도 마찬가지였다. 다 나누어주고 보니 남자만 오천명이 먹었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 바구니 가득하였다. 자리에 앉아 보리떡과 물고기를 받아먹던 사람들 가운데 술렁임이 일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이 음식들이 다 어디서 온 것인가? 떡을 떼어 준 분 가까이에서 이 모든 일이 된 것을 본 사람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저 끝까지 일어 난 일들이 전달되었다. '이분이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야. 이분을 우리의 왕으로 세워야 한다. 로마의 모든 압제로부터 우릴 능히 구원해 주시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 일은 이천여 년 전 유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다음 날 이분을 왕으로 삼으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그분을 찾아 헤매었다. 그러다 드디어 찾아내어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는 뜻밖의 말씀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없어지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십시오.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여러분에게 줄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중에서)
이번에는 전날과 같이 보리떡이나 생선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계속 떡 이야기를 하기는 하시는 데, 하늘에서 내려온 떡, 살아 있는 떡, 참 떡에 관해 말씀하시고 급기야 나의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셔서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 말씀은 어렵습니다.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며 하나씩 둘씩 떠나갔다. 많은 사람이 떠나가 버렸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까지'란 말은 우리라는 사람이 시간의 제한을 벗어 버리는 날, 육신의 짐을 벗게 되는 날, 영원 안에 들어갈 때에, 우리에게 있는, 살아 있는 열매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분은 그들이 표적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셨다. 전 날 다섯 개의 보리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로 먹이신 것은 하나의 표적(싸인)이었다. 무언가를 상징하고 내포하는 또 다른 차원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생각은 이 땅의 물질적 필요에만 제한되어 있었다.
영원의 세계가 다가올 때, 우리 존재에 영원에 걸맞은 무언가가 있느냐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관건적인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