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가정이 호주에 둥지를 틀어 일이 년에 한두 번씩은 들리게 되는데, 지난번 방문 때 큰아이 부부가 다 휴가를 내지 못할 사정이 있어 체재 기간 동안 우리 부부만 짧은 여행을 하기로 하였다. 갈 곳을 휴양지인 모턴 섬(Moreton island)의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로 정하였는데, 저녁에 야생 돌고래들이 몰려오고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다는 것이 장소 선정에 크게 작용하였다.
페리 선착장에 대기 중, 하늘에 해무리와 함께 여객기가 지나가고 있다.
일정은 브리즈번의 홀트 스트리트에 위치한 탕갈루마 아일랜드 리조트의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모턴 섬으로 향하는 페리를 타는 것으로 시작하였는데, 일을 나가는 아이의 스케줄에 맞추어 제일 첫 배를 타고 이르게 출발하기로 였다. 비교적 쌀쌀한 아침이었는데 하늘엔 해무리가 펼쳐졌고 그 가운데를 여객기가 지나가며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을 달래 주었다. 이윽고 이삼백 명 탈만한 페리에 승선하였다. 브리즈번 강을 따라 서서히 나아가다 바다에 들어서는데 바다라 해도 내해여서 비교적 평온하였다. 넓은 호수 같다고나 할까. 모턴 섬과 스트러드브로코 섬(Stradbroke island)이 거대한 자연 방파제가 되어주어 만을 형성하게 된 탓인지 모르겠다. 잔잔한 바다를 가로질러가는데 선상에서 바람을 맞으며 우리 부부는 아이들 같이 즐거워하였다.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 1:21)
사람들은 고래를 보러 나가기를 좋아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만나러 멀리까지 간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일상에서는 친한 친구나 부모님이나 자녀나 일가친척이나 맘에 항상 있는 은사나 이런 분들을 만나러 가는 일은 있지만, 그것도 배를 타고 만나러 가고자 마음먹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고래들이 한동안 머무르는 연안에는 항상 'whale watching' 관광 프로그램들이 있기 마련이고, 세계여행 방송을 통해 보면 큰 고래를 만난 사람들이 다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하고 감동이라고 말하곤 한다. 대부분 동물들은 동물원에 가두어 두고 언제든지 원하면 보러 갈 수 있지만 이 큰 동물은 그것이 불가능하니 더욱더 감흥이 있는 것일까? 고래 보러 가는 것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우리 부부는 이번 여행에서 가기로 한 휴양지에 마침 그 시점이 고래들이 한동안 남반구의 겨울(우리나라로 치면 여름)을 나는 시기여서 고래를 볼 수 있다 하여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표는 호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큰아이 내외가 벌써 끊어 놓은 상태였다.
배가 모턴 섬으로 도착하고 짐을 숙소에 갔다 놓은 후 타고 온 배로 고래를 보러 나가게 되었다. 이번에 배는 내해가 아닌 태평양을 향해 모턴 섬을 돌아 나와 동쪽으로 향하여 나갔는데 바다가 지금까지 본 그 바다가 아니었다. 외해에 인접해서인지 눈 앞에 보이는 전체 화면이 일렁거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배가 비교적 큰 탓인지 이전 뱃멀미경험이 있던 내게도 그다지 어지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다가 지금까지 내가 보아 온 바다와는 확연히 달랐다. 아, 이래서 근대 해양 민족들이 바다를 향해 나아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웅장한 산맥과 산들을 바라보는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으로 웅장한 스케일의 수평선이 춤을 추는 듯했다.
솟구처 오르는 혹등 고래, 사람들이 환호하였다.
의외로 꼬리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유는모르겠지만
한 마리의 고래를 발견했는데 이 고래는 몇 번을 수면 위로 치솟았으나 그리 활발하지 않자, 선장은 또다른 고래를 찾아 좀 더 멀리 나갔다. 정오에 가까워진 바다는 배가 선회하다 역광이 될 때마다 은빛으로 빛났다. 그때 또 다른 혹등고래 한 마리가 솟구쳐 올라오며 사람들이 환호를 발하기 시작했다. 고래가 올라올 때마다 난리가 났다. 어린아이부터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얼굴은 신기함과 반가움과 기쁨으로, 환호성을 발하며 서로 시야를 가리더라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열심히 고래를 바라보며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고래를 배경으로 또 셀카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이 사실이라도 아는 듯 고래는 수 없이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르며 물보라를 만들어 내곤 하였는데, 계속 우리가 따라가자 마지막에는 고래가 지친 듯 옆으로 누워 한쪽 지느러미로 마치 바이바이를 하듯 흔들어 댔다. 마치 '이젠 고마 해라' 하듯 말이다.
이젠 그만 안녕, 인사하는 고래
난생처음으로 고래를 지척에서 보았다. 집채만 한 고래가 물 위로 솟아 올라 거대한 물 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에 몸을 던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왜 사람들이 고래, 고래 하며 배를 타고 기어코 고래를 보러 가려 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 같은 나라는 아직도 포경을 하며 상업적으로 고래를 잡으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거대한 바다의 포유류에 환호를 하고 조금이라도 다가가 소통을 하고 싶어 하며 고래 보호에 앞장서기도 한다. 이러한 한바탕의 소동은 말은 통하지 않지만 생명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소통하고자 하는 우리 존재에 깔려 있는 본성에서 나오는 공명이라 여기며, 그때 그 감흥을 되새겨 본다.
PS: 고래가 내는 소리를 들었으면 너무 좋았겠지만, 그러려면 특수 장비가 있어야 했겠기에 아쉬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