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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Nov 07. 2020

족장시대

누가 주류인가?

 내과 전문의 시험을 준비할 때였다. 해마다 수련 병원들에선 전문의 시험을 치를 그룹의 족장들이 선출되고, 이 족장들은 타 병원의 족장들과 예상 시험 문제들을 놓고 서로 정보를 교환해왔었다. 이론뿐 아니라 환자 증례를 통한 문제 해결 능력에 관한 시험을 통과해야 하므로 각 병원마다 교육적 가치가 있는 증례들에 대해 서로 문제를 만들어 교환하여 전문의 시험에 대비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병원에서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증례들을 공부할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제2의 교육기회가 주어지는 셈이었다. 각 수련 병원 단위의 수련의들이 한 부족을 이루는데, 나는 우리 병원 내과 수련의 '부족'의 ‘족장’으로 떠밀리다시피 선출되었다.


 내가 수련받던 대학병원은 다른 병원들에 비해 비교적 신생 병원이었기에 전국 단위의 모임에서 공식적인 교류만 할 뿐이었는데, 후에 알고 보니 서울의 몇몇  대학 병원들과 지방의 주된 병원들 간에는 이미 형성된 나름대로의 비공식적인 긴밀한 교류 관계가  있었다. 그 중에 서울의 H대학병원의 족장 K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자신들에게  공식적인 교류 외에 막강한 연대 관계가 있는 병원들 간 정보 교류가 있다는 것이었고, 자기 대학 출신의 수련의가 나의 부족에 속해 있어 특별히 내게 그 연대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조건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상 문제들을 먼저 자기에게 먼저 다 제공하여 주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나중에 시험 얼마 전에 한번 보여만 주겠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그 연대 관계에 있어 주류이고 우린 비주류이니 차이를 두는 것에 대해 매우 당당해하면서, 그것도 자신의 대학 출신을 봐서 특별히 잘 봐주는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는 지금 U대학병원의 내과계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유수한 교수가 되었다. 나는 우리 부족원들과 상의한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나로서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불공정 제안을 하는 그의 태도도 여간 괘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신생 부족인 우리 부족은 어디 기댈 데도 없었고, 이 제안 외에 내게 다른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우리 부족원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될 터인데 어떻게 하나 하며 고민이 되었다. 그날 하루 종일 고민하며 하나님께 이 문제를 말씀드리기도 하였다. 그 당시 결혼하면서 성경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지 1년째 되었던 때였고 믿음도 그리 있지 못했을 때였지만 내가 기댈 곳이라고는 하나님뿐이었다.


  아무리 고려해봐도 H대 병원 족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굴욕적이었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되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고려해 볼 때에도 마음에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원들을 다 모아 놓고 부족회의를 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이러저러한 제안이 왔고 다른 대안은 없으나 나로서는 그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으니 그 제안을 부족원들이 받아들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족장으로 세워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런데 부족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매우 간단히 결론을 내주었다. “괜찮다. 네가 마음에 정한 대로 해라. 우린 너의 결정을 따른다. 계속 족장 역할을 해달라.” 부족원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나로서는 한편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공식적인 전국 내과 수련의들의 정보 교환을 위한 문제 풀링(pooling)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일부 동료들이 슈도(pseudo) 문제를 내자고 하였다. 슈도라는 단어는 의학 용어에서 가짜라는 말을 의미한다. 즉 진짜 같아 보이는 가짜 문제를 제출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병원들도 대부분 그렇게 한다고 하면서 진짜 문제를 남겨 놓아야 차후에 교환할 진짜 문제들이 남아 있을 것이란 이유였다. 남들은 다 가짜 문제를 내는데 우리만 진짜를 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이었는데, 나는 이 제안도 마음이 불편하였다. 나는 남들이 어떻게 하든지 우린 진짜를 제공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으며, 감사하게도 동료들이 동의해주어 그리하였다.


 전국이 족장들이 다 모여 문제를 풀링 하였고 서로의 연락처 리스트도 만들어 공유하였다. 돌아와 공부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S대학 출신의 N병원 수련의였는데 서울의 몇몇 병원들과 지방의 병원들이 연대하여 따로 자기들끼리 진짜 문제들을 공유하고 있으니 이에 반하는 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나머지 병원 족장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관심도 별로 없다며 열변을 토하였다. 일단 나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서로 그 연대에 들지 않은 서울의 병원들에 연락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연락을 받은 대부분의 족장들은 시큰둥하며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차 이론 시험이 끝났을 때 기묘하게도 우리가 제출한 문제 풀링과 관련된 유사한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가짜 문제들을 제출한 병원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제야 이러한 비공식 연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서울의 여러 병원 족장들이 알게 되면서 그들에게 강력한 항의를 하였나 보다. 이차 시험을 앞두고 삼남지방의 전체 대표 장이 공식 사과를 하였다. 진정성 있는 문제들을 제시한 우리 병원으로 인해 가짜들이 드러나게 된 이었다.


 이런 한바탕의 난리를 접한 것은 그것이 처음이었고 그 후 전문의로서 생활하며 이런 문제를 더 접하진 않았다. 대부분 전문의는 자신과 환자와의 관계가 중요하지 주류 비주류 문제가 크게 대두될 일은 없었다. 병원장 등 주요 보직 자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 이후 임상 현장을 떠나 정부 산하 기구들에 근무하면서 여러 배경을 가진 동료들과 조직생활을 하면서 또 이런 분위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강한 성격을 지닌 몇몇 동료들이 동료들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좌지우지하려는 모습들을 종종 대하곤 하였다. 말은 대놓고 하지 않지만 자신이 주류니 자신의 라인에 들라는 무언의 메시지들이 오갔다. 그러나 그런 위세가 오래갈 것 같지만 수년이 지나면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어느 새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친척들 관계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척 중 국내에 저명한 문인이 계신데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네가 복잡한가족 관계로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 우리의 교류 네트워크로 들어와라. 그래서 맘 편하게 관계 형성을 해라'는 취지의 말씀이셨다. 그분과의 연대 관계는 차원이 다른 연대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초일류의 연대 관계임을 객관적으로 보면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 었을 것이다. 그분께서 보시기에 나는 비주류이고 변방에 속한 불쌍해 보이는 보잘것없는 친척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그분의 교류 관계에 들어가서 생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생활 환경의 변화가 될 것이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이 일에서도 불편했다. 외적으로 그동안 쌓아 올린 명성과 사회적 지위로 보면 그분은 분명 초일류이셨다. 그런데 내 맘은 불편하였다.


 오, 주님! 주님은 대대로 저희의 거처(居處)가 되어 주셨습니다.

산들이 생기기 전,

주님께서 땅과 세상을 내시기 전,

참으로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흙으로 돌아가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들아, 돌아가거라."

주님 보시기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하룻밤의 한때 같습니다. (시편 90:1-4)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소위 사회적 '주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내 주위에 나를 보위하고 따르는 혹은 내가 따르고 보위하는 한 무리의 세력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세상 살면서 적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주류로써 다가왔다가 지나쳐갔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따르거나 붙잡고 싶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영원토록 가치가 있는 것을 그들은 소유하지 않았다. 당장은 그들이 대단해 보이고 위세가 당당하고 무언가 소유한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그들의 마지막은 초라할 뿐이었다.


누가 주류인가?

끼리끼리 모여 다니며 유대 관계를 만드는 사람인가?

그 분야에 오랜 경력을 가진 사람인가?

목소리가 큰 사람인가?

명성을 얻고 사회적 지위가 확고하게 된 사람인가?

아니면 참된 것을 찾아 본질에 충실한 진실된 사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이 붙잡고 있는 줄의 끝은 썩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줄의 끝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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