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누구에겐가 평가를 받게 된다. 아내에겐 남편에 대한 평가가 있게 되고 남편에겐 아내에 대한 평가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잘 살게 되면 부부가 사랑을 넘어서 서로를 존경하게 될 수도 있다. 평점 카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기록해두고 연말에 성과급 주듯 하는 것도 아니다. 각 사람이 주관적이듯 가지각색으로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 그런데 빗방울이 모여 작은 시내를 이루고 시내가 강으로 흘러 큰 흐름을 만들듯 시간이 지나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 대한 하나의 평가를 내리게 되는데 이것이 평판이다.
한 번은 우연히 필리핀에서 은퇴의 삶을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실제로 취재한 내용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중 전원주택 같은 집에 살며 텃밭에서 남편이 키운 온갖 채소로 먹거리도 자급하며 사는 모습을 취재하던 중에 부부가 식사 하는 장면이 있었다. 남편이 '우리가 재배한 배추로 김치 담가 먹으니 더 맛있다, 그렇지?' 하니 그 아내 되시는 분이 '닥치고 먹기나 해 자꾸 뭐라 하면 밥 안차려 줘'라고 답하였다. 오랜 기억을 되살려 적은 글이니 정확한 표현은 아니나, 대략 그 맥락은 이와 같은 말이었다. 남편 되시는 분이 맛이 없네 하며 투정하였다면 그려려니 할 답이었지만, 맛있다고 칭찬하는 남편에게는 놀라운 답이었기에 순간 황당하다고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젊은 날 그 남편 되시는 분이 아내에게 좋은 평판을 얻지 못하셨구나 하는 추측을 하는 것으로 나름 정리하였다.
H는 뛰어난 사람이다. 삼국지에 제갈공명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통(봉추)의 반열엔 있는 듯 하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관점을 자주 제시하곤 하여 직원들이 업무에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뛰어난 식견으로 업무에 대해 잘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해준다. 그런데 한동안 그와 같이 일을 하면서 그에겐 많은 상처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과거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했을 때 회사가 말은 무슨 일을 벌일 것 같이 했지만, 막상 일이 진행되고 보면 그에게 모든 짐이 돌아가고 회사는 한발 뒤로 빠져 있었던 경험들이 그에겐 상처들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CEO가 오고, 새로운 간부진들로 바뀌고 그러나 그런 패턴은 바뀌지 않았고 여러 번 반복되어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그 에겐 그 모든 것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최근에 그를 만난 사람들은 무슨 새로운 사안을 갖고 상의를 해도, 많은 불만과 불평을 이야기하고 사안마다 부정적 언사가 돌아오는 것을 내게 토로하곤 한다. 그를 볼 때 마음이 아프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그 마음은 노인이 되었다. 그 마음의 상처들은 목재를 자연스럽게 할 옹이들이 아니라 상흔들이 되었다. 모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재판장 자리에 스스로 앉아 있으나, 무엇을 해보라면 하나도 하려는 것이 없다. 아까운 인재가 이렇게 묻혀가고 마는 것일까? 이제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을 듣기 힘들지고 있다.
진짜 실력은 광고를 통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퍼진다. 회사의 직원 고가 평가의 점수가 사람들 사이에 두루 퍼져있는 평판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고가 평정 점수보다 평판이 어떤 사람의 직장 내 운명을 결정한다. 일시적으론 기록이 우세하겠지만. 눈에 보이는 기록되는 것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참되게 잘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좋은 평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 보다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내재적으로 그 분야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파악하고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들은 소재일 뿐이다. 이 자체가 참된 실력은 아니다. 이를 토대로 한 지혜가 있어야 한다. 사물을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두 곳의 연구원에 각각 수석 연구원과 선임 연구위원으로 재직할 당시, 후배 연구자들에게 항상 '관점이 없이 하는 연구는 연구가 아니다. 그것은 영혼이 없는 사람과 같다.'라는 말로 관점을 가지라고 요청하곤 하였다. 관점은 지혜가 있어야 갖게 된다.
You must be afraid of the Lord, even before you begin to learn anything. People who are fools do not listen to wise words. They refuse to learn them
실력이 필수적인 조건이고 다음은 진실함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사회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내 일을 잘함으로써 누가 어떤 혜택을 받게 되는지 고려해보면 내 일에 대한 사명감을 스스로 가질 수 있고, 나의 일은 더 의미가 있게 되고, 대하는 사안마다 진지하게 된다. 내가 하는 업무의 특성상 많은 전문가적 의견을 묻곤 한다. 그때 나는 몇 줄의 말로 내 의견을 써주기만 하면 나의 의무는 끝이다. 그러나 나는 상대가 성의 없이 물어와도 격조 있게 답하려고 스스로 힘쓰고 있다. A4용지로 서너 페이지 되게,답하려는 사안에 대해 문헌적 근거를 인용하여 최종적으로 내 의견을 달아서 인을 쳐서 pdf파일로 보내주곤 한다.
그다음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대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정 할 수 없거나, 내 분야가 정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장 잘 모르더라도 찾아서라도 도와주어야 한다. 이 일을 응하는 것이 내 고가 평정에 어떤 점수를 더할지 고려해 본 적이 없다. 보이는 평점을 기대하고 일하지 말라.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 마음에 내가 어떻게 기억될지를 고려하라.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Be humble with dignity." 우린 겸손해지길 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위엄, 자존감 없는 겸손은 자칫 비굴함이 될 수 있다. 또한 겸손함을 잃은 위엄은 거만으로 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겸손과 위엄은 균형을 맞추어야 아름다움이 된다. 이런 사람은 그 빛을 감출 수 없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여러분을 위하여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여러분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율법이며 신언서입니다. (마태복음 7:12)
마지막으로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여겨지기 원하면 먼저 우리가 그렇게 상대를 대하여야 한다. 자신이 존중받기를 바라면서 다른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깔본다면 그들도 당신을 그렇게 대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위치로 인해 당장은 그렇게 하지 못할지라도 결국에 가서는 그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