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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Sep 19. 2020

삶의 비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인가? 공허하지 않고 무의미하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은 삶을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인생의 여정을 걸으며 평온하고 행복할 뿐만 아니라 삶을 마무리할 때에도 평온함 가운데 두려움 없이, 찾아온 죽음에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을까? 부부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부모 품을 떠나가 이륙하는 항공기처럼 자신의 삶을 살려할 때, 어떻게 우울하지 않고 여전히 소망이 넘치고 자신의 삶이 허무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을까? 어려운 환경 속이 물밀듯 밀려오는 삶의 과정에서 화내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성질내지 않고 사는 것이 어렵긴 하지만, 거기에 더하여 그런 환경에서 깊은 속에서부터 기쁨과 누림을 여전히 가질 수 있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그런 삶을 잘 살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성경과 이런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와 약간의 체험을 갖고 그 비결을 탐구해보도록 하자.  


 예수께서는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여러분은 가지들입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떠나서는 여러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 5)


 이 구절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가지들이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믿는 이 가 아니시라면, 아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관념을 가져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매우 독립적이고 우주 가운데 혼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가지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무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즉 우리 존재가 예수님과 하나인 그 가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근본, 뿌리, 몸통이신 하나님을 떠나면 인생을 참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기적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여기서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것은 학력, 재력, 권력 등의 이 땅에 물질적인 영역의 열매들을 언급하기보다 영원 안에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우리의 존재로부터 나오는 참된 열매들을 언급하는 것이리라. 삶의 기쁨, 평안함, 사랑, 누림, 자존감, 인생을 마감할 때 두렵지 않은 어떤 가진 것을 가졌다는 느낌,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삶을 살며 정말 갖고 싶은 것들, 우리 인생이 꽃이라면 꽃이 진 후 맺힌 것, 그것이 열매이다. 이 열매를 맺는 비결을 요한복음 15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비결을 말이다. 그것은 주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예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겠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예수님을 떠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참된 비결의 비밀이다.


 성 오거스틴, 마르틴 루터, 죠지 뮐러, 워치만 니 이분들의 전기와 그분들의 삶에 대한 글들을 읽어 보면 일반적인 사람들이 살지 못했던 삶을 산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적인 별들과 같은 앞선 신실한 믿는 이들이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앞선 글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몇 분의 사례에서 본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통해 볼 때,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그분 안에 거할 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다지  기쁘지  않던 삶이 기쁘게 느껴지고, 참을 수 없는 성질과 괴팍한 기질들에서 구원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래전 의학 도서관에 자주 들릴 일이 있었다. 그때 사서분이 내게 크리스천이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답하였는데,  친숙한 사람이 아니면 묻기 쉬운 질문이 아니어서, 그럼 사서님도 믿는 분이냐고 되물으니 아니라 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성경을 같이 읽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시겠냐고 제안하였더니 친한 친구와 함께 같이 하시겠다 하여, 그 이후로 매주  한 번씩 성경을 읽고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를 구타하는 데, 그 여인이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냐고 물었다. 그 정도가 심하였는데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발로 밥상을 차 버리고 젓가락으로 살기등등하게 찔러버리려 하여 아내 되시는 분이 도망가기도 하였고, 주먹으로 때려 얼굴이 멍이 들어 선글라스를 끼고 직장에 가야 하는 일이 여러 차례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에는 당장 그 남자와 이혼해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목구멍에까지 올라왔으나, 주님께 기도해보고 답변을 드리겠다고 하였다.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는데 주께 하듯 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이 계속 떠올랐다. 다음번 모임에서 그분께 비록 남편이 그리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남편을 머리로 주셨으니 순종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내 마음속에 있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후 성경 추구 모임에서 그 사서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전에 언급했던 매 맞던 아내가 바로 자기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최근 들어 자기를 때리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어서 한 말이 남편이 한두 마디 해도 말대꾸를 하지 않게 되던데요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과거 남편이 한두 마디 하면 두세 마디로 답변하고 남편이 서너 마디 하면 일곱 여덟 마디로 말대꾸하곤 하였는데, 사리와 논리에 딸리는 남편이 그다음에는 주먹질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너무 괴로워  당시 슬래브 집 옥상에 올라 밤이 맞도록 괴로워 주님께 기도하고 주 예수님을 불렀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한두 마디 해도 말대꾸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되었고 그런 이후로 남편이 자기를 때릴 일이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럴 뿐 아니라 이전에 하나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던 남편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어떤 형태이든 우리가 붙어 있고, 그분께 우리 존재 깊은 속에서부터 돌이키고, 그분을 붙들 때, 이전에 없었던 삶의 평강과 기쁨과, 우리가 얻어 온 모든 것들이 의미가 살아나게 되고 살맛이 있게 된다는 것이, 이런 삶을 살아 본, 오늘 당신 곁을 지나치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산 진리의 말들이다. 철학과 진리와 고매한 사상은 딸 수 없는 별님들과 달님들이 아니라, 오늘 밥상에 오른 음식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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