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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Sep 05. 2020

단골

 아내와 나에게 은퇴의 나이에 가까워지면서, 이는 자녀들의 교육을 다 마쳤다는 이야기이고, 또 다른 말로는 함께 산책을 하거나 근교를 돌아다닐 여유가 생겼다는 말인데, 한 곳 두 곳 단골집들이 더해져가고 있다. 단골집 1호는 광릉수목원에 있는 숲 속 카페이고, 2호는 포천 소흘읍 뜨락이란 떡갈비집이다. 3호는 가평 잣향기 푸른 숲에 갔다 오는 길에 늘 들리는 고향 순두부집이다. 더 최근에는 물의 정원을 걷다 길 끝에서 만난 장칼국수 집도 더해졌다.  


 자주 들리지 않으면 당연히 단골이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다 단골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가 호주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였다는 데 호주의 역사 깊은 커피 취향과 바리스타들의 실력과 고객들과의 문화적 관계라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커피를 내주는 사람과 커피 마시는 사람들 간에 교감과 대화의 문화를 스타벅스는 대체할 수 없었다는 것인데, 다른 표현으로 하면 단골을 만들기에 결함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같은 곳을 매일 들린다 해도 그곳 주인장과의 교감이 없다면 단골이라 하기 힘들지 않을까?


광릉 수목원 육림호 옆 카페,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운치가 더한다.

 광릉 수목원은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이므로 토요일 매번 예약하고 아침 개장 때부터 가서 숲 속을 걷다가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귀가하곤 한다. 그러면 하루가 아직도 살아 있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어 좋다. 때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 운치가 있어진다. 숲 육림호 근처에 자리 잡은 카페에 들러 향기로운 카푸치노 한잔과 적외선 그릴로 맛있게 구워진 군고마 하나를 부부가 함께 먹으며 창밖에 보이는 호수와 나무들을 보고 있자면 부호의 별장이 부럽지 않다. 카페 사장님은 이곳을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계속 기회를 기다리다 이곳에 카페를 맡게 되셨다고 한다. 매일 근무하는 곳일 텐데 우리가 아침 일찍 가게 될 때 걷다 보면 이 사장님이 주변을 감상하며 걷는 모습을 발견하곤 하니 참으로 이 수목원을 좋아하시는 분인가 보다. 자주 들리게 되면서 대화도 하게 되고 우리가 카페 문을 들어서면 반갑게 반겨주시기도 하신다. 고구마는 제일 크고 맛있는 것을 골라 주시고 때론 과자나 군 달걀도 슬쩍 주곤 하신다. 우리도 싸간 간식 거리를 드셔보시라 건내기도하면서. 단골이 되면 떡 하나라도 더 얻어먹게 되니, 이차적 이득도 따라온다. 이 이차적 이득은 다분히 인간적이고 사람 간의 교감에 따른 것이니 비난받을 것은 아니리라.

  수목원에서 나온 후 점심식사로 흔히 들리는 곳은 뜨락이라 하는 떡갈비 집이다. 최근 2년 전쯤 문을 연 정갈한 한식 음식점인데 맛도 좋고 지인들끼리 방에 앉아 창밖의 자연 풍경을 보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방들도 많아 자주 가곤 한다. 깨끗하고 주인장도 친절하고 가끔은 주인집 아이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젊은 분이 운영하는데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도 묻곤 한다. 얼마 전엔 식사 후 그 음식점 앞 뜨락에 낮아 잠시 쉬는데 젊은이가 운전하는 차가 음식점 앞 소화전을 차로 치고 가버려 물난리가 나게 되어, 주인장에게 신속히 조치하라 말하였는데 도망간 차주는 염두에 없고 소방서에 문의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잣향기 푸른 숲 근처 고향 순두부집은 주인장께서 야구선수이셨다. 잘 차려 놓은 집은 아니지만 인공 조미료나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버섯으로 간을 내며 두부도 직접 만들어 내신다.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그 인수만큼 새롭게 밥을 하시는 데 밥을 하신 다음 주걱으로 뒤척이지 않고 그대로 내어 주신다. 그렇게 해야 밥 맛이 산다는 주방장 아주머니의 말씀이시다. 밥이 반찬 없어도 먹을 만큼 맛있고, 두부전골도 담백하고, 듬뿍 들어간 잣 탓인지 고소하여 식사 후에도 전혀 속이 거북하지 않다. 수개월 전 누룽지 없냐고 물었던 것도 기억해주시는 주방장 아주머니의 총명함에 발걸음이 한 번이라도 더 가게 된다.

고향 순두부집, 직접 짠 들기름을 사용하고 버섯등 천연재료로 맛을 내 담백한 맛을 낸다.




 더러운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은 합당하지 않으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십시오. (에베소서5:4)


 이야기를 하다 보니 먹방처럼 되었는데, 음식점 소개하려는 의도로 이 글을 쓰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데 오가는, 깊고 매우 절친한 관계는 아니지만 스치는 듯 만날 관계일지라도, 서로 인사하고 말한 마디 건네면 단골이 되고 한동안 가지 않으면 주인장께서 궁금해하고 우린 미안해지는 이런 관계 맺음이 우리 삶에 살짝 활력을 더해 준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주인장에게 먼저 말을 건네면 처음에는 나더러 나이가 들더니 너스레를 떤다고 핀잔을 주던 아내도 단골집이 생기며 오가는 잔정에 맛을 들여 이제는 나보다 더 잘 소통하곤 한다.


 이번 주말 자주 다니던 식당에 가게 되거든, 음식이 늦다고, 반찬이 이모양이냐고 투덜 대는 대신, 참 맛있어 자주 오게 된다고 주인장께 칭찬 한마디 해보시라. 가는 감사의 말한마디에 오는 미소들이 더해져 사랑의 비빕밥이 우리 식탁에 올라와 하루 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무슨 보상이 있겠습니까? 세리(당시 로마정부의 세금징수하는 사람)들도 이같이 하지 않겠습니까? 또 여러분이 여러분의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여러분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 더 낫습니까? 이방인(믿지 않는 사람들)들도 이같이 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5: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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