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무 Sep 04. 2020

살아가기

 삼십여 년 전 전임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만성 B형 간염 상태에서 호흡기 질환이 발생한 한 청년이 환자로 내게 다닌 적이 있었다. 지금은 B형 간염을 억제하는 많은 항바이러스 제제들이 나와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의학적으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하였지만 그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었다. 나이가 젊은 인생 후배이기에 애틋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라고 말해 주었다. 한남동 골목길을 걷다 쉬었다 하며 이야기해주었는데 그 친구는 많은 이론과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하나님에 대하여 논쟁을 하였다. 내 눈에는 시간문제이지 이 젊은 친구는 얼마 되지 않아 간경화에 걸릴 것이고, 이어서 간암이 발생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간부전증에 빠지게 되어 생애를 마감할 것이 눈에 선한데, 이 친구는 하나님과 논쟁 중이었다.


 어떤 분이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마치 큰 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경우 당장은 살아있는 듯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말라비틀어져 훗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태어날 때 등잔에 가득 찬 기름을 갖고 태어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그 기름을 쓰다가 다하게 되면 검은 그을음을 내며 꺼질 호롱불처럼 우리 인생이 그렇다는 것이다.


 노원 을지병원에 호흡기 내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한 번은 오후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40대 후반쯤 되었을 한 여성분이 외래로 오셨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하신 아담하신 분이셨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오셨다는 것이었다. 그분이 가져온 흉부 방사선 촬영 사진을 관찰대에 걸어 보고 깜짝 놀랐다. 좁쌀만 한 흰 음영이 전 폐야에  쫙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환자분을 보고 두 번째 놀랐다. 폐 사진과 대조적으로 너무나 멀쩡하셨기 때문이었다. 방사선 소견만 보면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속립성 결핵이었고 두 번째로는 암이 혈액을 타고 폐에 전이가 된 것이 었는데, 전자라면 환자가 이렇게 멀쩡할 수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들어 당장 입원하시라 하고 금식한 상태로 오셨기 때문에 그날 오후 곧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하였다. 추가적인 검사를 다 한 후 최종 결론은 원발병소 미상의 혈행성 전이 폐암이었다. 남편분이랑 먼저 상의를 드렸다. 충격을 받은 남편분은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의 아내는 또순이처럼 살아왔고 당시 여교사로서 동년배 다른 교사들 다 제치고 교무주임을 할 정도로 학교일에 열정을 갖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사람인데, 눈이 커서 겁이 많다는 것이었다. 딸이 둘인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병에 대해 당장 본인에게 말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당분간 환자에게 정확한 병명은 말해주지 않기로 하였는데, 결국에는 항암제를 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다. 암 종양 전문의에게 환자를 보내드려야 했고 나로서는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었는데, 보내드리기 전에 "주 예수님을 당신의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세요. 이렇게 말해보세요. '주 예수님, 당신을 저의 구원의 주로 받아들입니다.'라고."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나 주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부르시라고 권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한 분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시고, 그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요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10-12)


 그 여교사는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셨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이후 종양 내과로 환자분이 전과되었고 한두 달이 지났다. 암 종양 교수인 K교수가 찾아와서 가장 가능성 있는 원발 부위 암에 맞추어 항암제 치료를 꾸준히 하였으나 반응이 없고 점차 악화되어 자신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고, 환자분이 호흡곤란이 점차 심해지시고 있어서 상의하러 오신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내가 환자분을 맡기로 하였다. 폐의 상태를 보니 하얀 음영이 더 짙어져 정상적인 폐의 부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산소를 공급해주며 오전 오후 회진 가서 환자분을 격려해주고 두 손을 꼭 잡아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거의 운명하실 때가 가까이 왔을 때 회진을 갔는데 두 딸이 울고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엄마는 괞찮아, 엄마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서 편안해. 염려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딸아이들을 위로하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훗날 교육계 계신 분의 말씀을 들어 보니 병문안 왔던 동료 교사들이 처음에는 '무슨 말로 위로하나, 이 겁쟁이 선생님을' 하며 왔다가 다들 평안한 가운데 있는 이 교사를 보고 놀라고 오히려 위로를 받고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 지역의 교계에는 놀라운 일로 여겨져 회자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인생의 여정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태어날 때 자신의 의지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릴 지으신 창조주께 자신을 의탁하고 이 귀한 생명을 한 방울 남을 때까지 진실되게, 진지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사는 것이다. 이 오솔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고.....

 

이전 08화 그날 이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