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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무 Sep 13. 2020

그날 이후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1년 차 생활을 거칠 무렵, 내 안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 본과 학생 때 내과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내과 의사가 되는 것이 내 안에 바람이 되었었다. 질병에 대한 병태생리를 꿰차시고 논리 정연하게 강의하는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바라던 내과 레지던트가 되고 일 년이 되어갈 시점에, 당시 레지던트 월급이 매우 박했지만 총각이었던 내게 부족함이 없었고, 유행하던 클래식 음악 듣기 열풍에 클래식 음악을 알지도 못하면서 인켈에서 나오는 프로 9이라는 오디오 세트를 할부로 구매하였고, 심지어 열심히 정진한다면 학교 병원에  내과 교수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규모는 작지만 인생에서 내가 얻어야 할 것들을 다 얻은 셈이었다. 이론적으로 보면 난 행복해져 있어야 했는데, 무언가 깊은 속에서 공허함이 밀려들어왔다. 의예과 2학년 때 하나님을 믿었지만 그 이후 교회 생활이 없었고, 날 관심했던 친구 L로부터도 더 연락이 없었다. 자연히 나는 점차 세속적이 되어갔고, 대부분 의대생들이 그랬듯이 시험이 끝나면 스트레스를 푼다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친구들과 마시고 춤추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믿지 않는 사람처럼 돼가고 있었다.


 나는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았는데, 참으로 모든 것이 허무한 것이요,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을 뿐이다.(전도서 1:14)


 그러나 내게는 부인할 수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존재였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세상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해서 한번 분명해진 사실에 대해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명동성당의 예비자 교리반에 가입하였다. 성당에 다니는 친구 몇이 있어 자연스럽게 가본 것이었는데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다. 성경 교사인  분이 물었다. "왜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기뻐할까요?" 아무도 답하는 사람 없이 적막하였다. 그때 내가 불쑥 답을 하였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사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니었다.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당시 태양일 탄신일을 대체하여 인위적으로 정한 날이었다. 어쨌든 이 변을 할 때 내 마음에 어떤 뭉클한 느낌이 있었다.


 그 무렵 부친의 지인 중 한 분이 소개해주어 선을 보게 되었다. 학생 때부터 선을 보고 데이트도 해보았지만 처음엔 좋다가도 이내 나하고 맞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헤어지곤 해서 나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지나가듯 결혼을 위해 기도하라는 말을 해주었었다. 어떻게 기도 했는지 기억도 없는데, 한두 마디 기도한 것은 분명하다. 상대는 소아과 레지던트 1년 차, 나와 동갑인 여의사였다. 한두 번 만나고 '아!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만났던 여자분들은 외모는 아름답고 이것저것 나름대로 삶을 즐기고 누리는 분들이었지만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지 고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전혀 관심이 없어했다. 이런 표현을 용서해달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그분들에게 이에 할당된 사고가 부재하였다. 그런데 선을 봐 만난 이 사람은 달랐다. 마치 나의 다른 편 한쪽을 만난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번 만난 후 결혼을 하지고 요청을 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당시 이태원에 난다랑에서 만났는데, 커피숍이 흔치 않았던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체인 커피숍이었다. 눈을 들어 그녀를 보니 졸고 있었다. 레지던트 1년 차는 하루 1~2간 자면 잘 자는 시기였으므로 충분히 이해하였고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며 웃곤 한다.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되었으니까.


 구미에 있는 병원에서 주말에 당직을 서느라 병원 당직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기를 드니 아버님이셨다. 아버님께서 전화를 주시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주시며 내가 상심할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저쪽 집에서 그만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을 전해왔다는 것이었다. 큰 실망감이 들면서 다른 한 면으로는 참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에게 전화를 하였다.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였는데 흔쾌히 허락하였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는데 버스 안에서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라는 당시 인기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그가 수련받고 있는 병원 앞 다방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부모님께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군요, 그럼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셔야지요" 하고 잠시 만남을 가진 후 그와 헤어졌다. "남자는 뒷모습을 모이는 것이 아니라 해요, 당신이 먼저 가세요"하고 어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말을 하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때가 바람이 많이 불던 겨울이었고, 그녀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옷자락을 흩날리며 멀어져 갔다. 그와 헤어진 바로 다음날 아버님은 선을 보라고 득달하셨다. 내가 마음이 상심할까 봐 이리저리 알아보신 모양이시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나가 앉아 있었는데 모녀가 나오셨다. 어머니 되시는 분이 현모양처란 생각이 들었다. 장모 되실 분이 저런 분이시면 나쁘진 않겠네 했지만 다시 만나자 할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구미로 다시 내려온 후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일주일간을 정하고 기도하기로 마음먹었는데 6일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7일째 되는 날에는 기도하지도 못하였다.


 7일째 되는 날, 이번에도 당직실에 쉬고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따르릉하고 전화벨이 울렸는데 그냥 그녀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전화기를 드니 정말로 그녀였다. 다짜고짜 "당신은 지금 내게 전화하는 의미를 모르실 겁니다."라고 말하였다. 훗날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황당하였다고 했다. 아마 어렵게 다시 만나자고 전화한 것이었는데 전화를 받자 말자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였으니 황당할 만도 하다. 나는 이것이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는 것에 대해 마음에 확증이 있었다. 선을 보아 만다던 커플이 여자 측에서 만나지 말자 해서 깨졌는데 다시 여자 측에서 전화로 다시 만나자고 할 수 있는 당시 문화가 아니지 않은가?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이었다. 나중 결혼의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결혼이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가족들 간의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어떤 난관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 안에 하나님께서 이 결혼을 맺어 주셨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년이 무엇으로 자기 길을 순수하게 지키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의하는 길 뿐입니다..... 주님의 말씀들이 제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제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 (시편 119:9, 103)


 그녀는 크리스천이었고 온 집안이 다 그랬다. 믿음이 있는지도 모를 나와의 결혼에 대해 집안에서의 심한 반대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큰 오빠가 강하게 지지해주셔서 마음이 다 변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미 하나님에 대한 강한 확증이 있었고 결혼을 통해 다시 한번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갖게 되어, 성경을 읽고 추구하자는 제안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날 이후 30년 넘게 성경을 꾸준히 읽고 추구하고 있는데 성경을 대할 때마다 참된 진리의 말씀이며 내게 달콤하고 생명의 풍성함을 준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이런 삶의 이전과 이후의 차이에 대해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부모님께서 멀리 떠나시면서 6학년짜리 초등학생에게 3학년짜리 동생을 맡기셨고, 형은 동생을 데리고 사는데, 살긴 사는데 사는 것이 아닌 삶, 라면 끓여 먹고 근근이 사는, 이 삶이 부모님이 돌아 오심으로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찾을 것을 찾았다고나 할까? 그래서 당신에게 말하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온 당신의 삶이 기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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