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범주는 네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존재의 육신이 사라진다 해도 영원토록 남을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세상이 지속되는 동안 누구엔가 유익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며, 세 번째는 큰 해도 없지만 큰 의미도 없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스스로에게 해롭고 사회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이다. 무의미하고 해로운 것들에 우리의 시간을 쓸 가치가 없으므로, 처음 두 가지 것에 좀 더 집중해 보자. 여기서 내가 언급하는 행위라는 것이 외적인 면 만을 지목하는 것 같아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의 존재로부터 살아나타 내어진 삶의 결과로써의 행동을 여기서 지칭하고 싶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학문은 두 번째 범주에 속한 것들이다. 두 번째 범주에 정진할 때 우린 스승이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고, 의사가 되어 누군가의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하며, 법관이 되어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엔지니어가 되어 사람들의 삶을 더 윤택해 주기도 하고, 훌륭한 농부가 되어 큰 비용이 들지 않더라도 영양가 있는 식품들을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해주게 된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그들은 일차 이득을 얻게 되고, 사회는 이러한 건강한 사회 활동이 보장되도록 법적, 행정적,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이것을 잘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이 두 번째 영역은 존중되어야 하고, 이 영역에 성실하고 이타적 행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 사회는 경의를 표할 필요가 있고 우리의 후대가 평범하지만 성실히 살아가는 이 사람들을 본받아 자신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설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최고의 성과, 0.1% 만이 해낼 수 있는 것만이 우리의 후대가 본받아야 할 것은 아니다. 자기 본분에 맞게 성실하게 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 모두가 우리 사회에 본받을 사람들이요, 이 시대의 영웅들이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영역의 일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수행하였다 해서 첫 번째 범주에 해당하는 것이 다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학 학술대회에 참석해 보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학자들이 뒷자리에 앉아 계신 모습을 간간히 보게 된다. 한 때 그분들은 학회의 주역으로 후학을 가르치기도 하고 새로운 학술적 내용들을 열정을 갖고 밝히고 도입했던 분들이었다. 그 이전엔 해결되지 못했던 질병이나 환자의 상태를 해결해주기도 하셨던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분들은 이제 그 주역의 자리들을 후학에게 넘겨주고 조용히 학회에 앉아 계신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교계나, 법조계나, 재계나 공학계나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찾아오게 될 때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박사학위, 자격증, 문학가가 남겨놓은 널리 회자되는 책들, 과거 난제를 해결해주었던 이론들, 남부럽지 않게 쌓아 놓은 재물들, 유명 건축가가 남긴 건물들, 이런 것들이 이제 육신의 생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중요하고 가치 있고 영원한 세계에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일까? 시간이라는 차원을 넘어서도 우리 존재를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질적 생명이 다하여도 우리가 여전히 자존감을 갖고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을까? 삶의 마지막에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준비할 시간들이 다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어떤 부자가 밭에서 풍성히 수확하게 되자, 속으로 '내가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라고 하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 두어야겠다. 그리고 내 혼에게 '혼아,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여라.'라고 말해야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에 너에게서 너의 혼을 도로 찾아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해 둔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16下-20)
아기가 태어날 때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난다. 그 손아귀의 힘이 얼마나 센지 어른도 그 손을 펴기가 쉽지 않다. 이 세상에 나온 아기마다 무언가 잡으려고 태어난 듯하다. 그 자그마한 아기의 손을 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군의관 시절 자기의 첫아기를 얻은 한 안과의사인 O선생님은 그 아기를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봐도 자기 부부가 이러한 아기를 갖게 되기까지 한 것이 너무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아기들이 하나 같이 조약돌 만한 그 작은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학생 때는 좋은 점수를, 청소년기에는 좋은 친구를, 취준생 시기엔 좋은 직업을, 사회인이 되어서는 좋은 배우자를, 가정을 가진 후에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져 보려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살아가고 있다. 행여 두 주먹을 느슨하게 하면 마음 자세도 흐트러져 실패하고 뒤로 처질까 봐 아옹다옹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육신의 생명이 다하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은 두 손이 풀리고 두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하고 잠들게 된다.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
첫 번째 범주의 행위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통해 산출될 수 있을까? 그 비결이 참된 인생을 사는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