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학적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사후 세계에 대한 체험을 이야기한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기원전 380년경 쓰인 프라톤의 국가(Republic)에 에르(Er)라는 군인이 전장에서 죽은 뒤 10여 일이 지나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시신이 회수되어 장례식을 치르려고 장작더미에 놓아두었는데 2일 후에 살아나서 그의 사후에 본 일을 이야기한 것이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1, 2). 1505년 축복받은 이들의 승천(Ascent of the blessed)이란 그림을 그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그림에서도 이러한 체험을 묘사하고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임사체험의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왔는데, 의학적으로는 1970년대 들어와 이러한 체험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수집하여 학술지에 보고하기 시작하였다. 유명 여배우 샤론 스톤도 2001년에 이러한 체험을 한 것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말한 바 있다(첨부 1). 척추외과 의사인 Mary C. Neal박사는 1999년 카약을 타다가 물살에 휩싸이며 사망하게 되었다 살아난 체험을 TED에서 공유하기도 하였다(첨부 2).
1975년에는 레이먼드 무디( Raymond Moody) 박사에 의해 임사체험( near-death experience)이라는 정식 학술적 명칭이 도입되면서 의학계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에 돌입하였으며,이제는임사체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성 논쟁은 종결되었다(3). 간단히 말하면 이러한 현상은 의학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현상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뿐이다. 몇 가지 의학 학술지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심정지 후 회복된 사람의 6-23% 정도가 이러한 경험을 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죽었다 살아난 사람 다섯 명 중 1명은 이러한 체험을 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죽었다 산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니 내 주변에 이런 체험을 직접 말해준 사람은 아직 없다.
인식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러한 임사체험에서의 상태는 각성(wakefullness)이 없고,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않는 즉 접속이 끊긴(disconnected) 상태에서의 내적 자각(internal awarenss) 상태로 여겨진다. 이와 유사한 이질적인 체험들을 한 사람이 많았으므로 버지니아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 부르스 그레이슨(Bruce Greyson) 박사는 임사체험을 정의하고자 임사체험 척도를 만들어, 16가지 문항에 2점씩 배정하여 총 32점 만점에 7점이 넘는 경우를 임사체험으로 하자고 제안하였다(4).
전형적인 임사체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다고 한다. 육체적인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유체이탈 현상(out-of-body experience: OBE), 평온하거나 기쁨에 찬 느낌, 갑자기 시간이나 생각이 빨라지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 우주와 조화되거나 하나라는 느낌, 터널을 지나는 느낌, 밝은 빛을 보거나 그 빛에 둘러싸이고, 고인이 된 친척들을 만난다든지, 자신의 과거 일생의 장면을 보게 되고, 일종의 경계 즉 돌아올 수 없는 한계까지 갔다가 의식이 몸으로 돌아오는 일련의 체험들이다(4, 5).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체이탈 현상 즉 죽은 몸에서 나와 생명이 없는 자신의 신체를 위에서 바라보는 현상은 환상이 아닌 정확하고 옳고 진실된 지각이라는 것을 밝혀 내었다. 환상은 있지 않은 것 틀린 것을 보는 것이지만, 그들이 본 것은 객관적인 사실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생을 파노라마 같이 보게 되는 것에 있어서는 자신의 관점 만이 아닌 관련된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보게 되었다고 종종 진술하였는데, 심폐소생술이 몇 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몇 시간 동안 자신이 본 내용을 말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5).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각을 시사해 주는 체험들이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을 한 사람 중에서 경계를 넘어선 영역을 보고 온 사람의 증언은 없다. 여러 민족에게서 전수되어 내려오는 다양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죽음의 강을 건너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인지 모르겠지만, 죽은 이가 거하는 곳까지 갔다 온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성경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잠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람의 육신은 흙에서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의 영혼은 음부라고 불리는 구역으로 가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곳에서죽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지 않은가? 한번 신약성경의 누가복음 16장을 펴서 19 절부터 31절까지 읽어 보자.
부자가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상님, 제발 나사로를 나의 아버지의 집에 보내 주십시오. 나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나사로가 그들에게 엄숙히 증언하여,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누가복음 16:28)
누가복음 12장 16절부터 21절까지에 나오는 부자와 연결하여 이 구절들을 고려해 보면, 어떤 부자는 하나님에 대해 부유하지 못한 채, 날마다 즐기며 호화롭게 지냈다. 그가 죽자 육신은 땅에 묻혔으나 그의 영혼은 음부의 고통받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여기서 음부라는 헬라어 단어는 ᾅδης(hades)라 불리는데, 세상을 떠난 영혼들이 거하는 곳으로써, 하늘에 있는 곳이 아니라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6). 이 음부라는 구역은 땅 속 깊은 곳에 있고, 믿고 죽은 사람이든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든 다 거기서 부활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 음부에는 두 구역 즉 낙원(사람들이 파라다이스라 부르는)이라고 불리는 유쾌한 구역과 심히고통받는 구역이 있다. 남 부러울 것이 없이 부유하게 그러나 하나님 없이 일생을 산 이 부자는 음부의 고통받는 구역에 와서야 이생에 남아 있는 친척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럴 방법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성경은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전해주는 이들이 이미 다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즉 이미 이생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말해져 왔으므로, 죽은 후 어느 곳으로 갈지를 결정할 기회는 매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가 죽으면 마치 사람이 자동차에서 내리듯 우리의 영혼이 육신에게서 나오게 되며, 육신이 죽는다 하여 우리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은 뒤에도 우리 영혼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가 일생을 어떻게 살았았느냐 하는 것이 죽은 후에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것이며,죽은 이들이 사후에 가는 곳에 잠시 머무를 뿐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