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사람 Jan 16. 2021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관계 맺기 5

생활 교육을 위해

 (1) Wee센터 개인상담

  경력 20년이 넘은 교사지만 처음으로 맞닥뜨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혼자 해결해 나가기가 너무 벅찼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는데, 학기초 담임장학을 나온 장학사를 통해 Wee센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장 연락을 취하고 그간 교실에서 있던 일을 매일 기록한 학급일지와 학생 상담 기록지를 보내주었다. 학급일지와 상담 기록지를 읽은 Wee센터 담당자는 화들짝 놀라며 공문 시행도 없이 바로 학교에 달려와 주었고, 나와 2시간가량의 상담을 통해 바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개인상담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학부모에게 상담 동의서를 받아 20명 중 19명의 학생이 개인상담을 받았다. 상담 후 결과를 놓고 협의회를 한 후, 가장 시급한 4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10회기에 걸친 집중 개인상담을 하게 되었다. 단 1회의 개인상담에도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누군가에게 아무 부담 없이 비밀이 보장된 상태에서 털어놓고 매우 홀가분해했고, 상담 결과를 분석한 우리는 K, Y, J, S 네 명을 선정하여 집중 상담을 진행했다. 10회기 이후 Y와 J는 상담을 그만하길 원했고 K와 S 그리고 M과 G가 새로 개인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는데 특히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전적으로 들어준다는 것, 나의 고민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아이들은 매주 화요일에 시행되는 개인상담시간을 많이 기다렸고, 4명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우리도 상담을 받고 싶다고 말해 곤혹을 치렀다.     

 

 (2) 집단상담

  Wee센터에서 나오신 상담사분들은 개인상담을 진행해 주시고, 사안의 중대함과 심각성을 인지하여 관내 ‘*** 가족 심리 상담소’와 연계해 주셔서 집단상담도 동시에 진행하도록 해주셨다. 세 분의 상담사님이 우리 학급을 남학생 두 그룹, 여학생 한 그룹의 모두 세 그룹으로 나누어 2시간씩 5회기 모두 열 시간의 집단상담을 해 주셨다.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이 함께 진행되니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아이들이 나와 가족과 학급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졌다. 특히 막연하게 감지하고 있던 남학생 그룹에서 드러난 여성 혐오에 대한 감정은 엄마에 대한 원망에서 기인한 것이었고 그것이 우리 반 여학생들과 담임교사에게 욕설과 불친절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많이 속상했다. 이 과정에서 여학생들의 위로와 격려와 칭찬은 혐오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K학생이 속한 그룹에서 과자를 이용해 자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고 이 그림에 여학생들이 코멘트를 달아주는 활동을 했다.     

 ‘너 키 커서 좋겠다.’

 ‘네가 있어 든든해. 넌 우리 반의 울타리 같아.’

 ‘너 때문에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반 친구들 못 괴롭히는 것 같아. 고마워.’

 ‘너의 유머감각 때문에 재미있어.’     

  이 메시지를 받은 이후 K는 제법 의젓한 형, 오빠 노릇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곤 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지려는 것을 막아 준다던지, 힘을 쓰는 일이 있을 때 언제든 먼저 움직이고, 마지막 파티에서 치즈볼을 구워 먹을 때도 자신이 모두 다 구워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던지....

  집단상담시간을 통해 알게 된 학생들 간의 역학관계는 개인상담시간과 담임교사에게 귀한 자료로 쓰였고 아이들은 그룹별 활동시간을 통해 마음에 있는 말 솔직하게 하기, 상대방의 말 잘 듣기와 소통의 방법을 배웠다. 집단상담을 통해 상담의 효과와 전문가의 탁월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으며 학교에서 언제라도 이런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3) 1인 1역을 통한 책임감 기르기와 약속 지키기

  2학기를 준비하며 학교에 짐을 가져가 정리를 하고 교실을 청소하는데 교실이 너무 지저분했다. 책상은 온통 파이고 긁혀있었고, 바닥도 마찬가지였으며 분명히 수업 끝나고 청소를 했을 텐데 바닥에는 온갖 쓰레기가 즐비했다.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이 쓰레기를 자연스레 바닥이나 책꽂이 뒤 등에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고, 정리정돈이나 질서의식이 매우 희박함을 알게 되었다. 학급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이 있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으며, 청소를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학급의 기본 규칙을 정하면서 1인 1역을 강화했다. 필요한 역할을 20개로 균등하게 나누고, 희망에 따라 배정했다. 그럼에도 선호하는 역할이 있고,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역할도 있었다. 비선호 역할을 할 때는 다음번 역할 정하기에서 먼저 결정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고, 성실하게 역할을 잘 수행한 친구에게도 다음번 선택 시 우선권을 주었다. 평가는 오로지 선생님의 권한이었는데, 아이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했다. 교사도 예외 없이 교실 앞 정리정돈과 아침 빵 준비를 1인 1역으로 하였다. 모두가 학급을 위해 한 가지씩 역할을 맡았고 누군가가 역할을 회피했을 때 그 피해가 우리 반 모두에게 돌아가는 경험을 했다. 늘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 다니던 M조차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되었고, M이 처음으로 청소를 한 날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가끔씩 교실 대청소를 하는 날은 자발적으로 몇몇 친구들이 늦게까지 남아 도와주었고, 아침에 자발적으로 일찍 와 환기를 시키고 책상 줄을 맞추고, 따뜻한 코코아를 마실 수 있도록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놓기도 하였다. 1인 1역이 잘 되면서 학급의 다른 규칙들(아침에 휴대폰을 보관함에 넣는 일, 교과 전담시간에 줄 서서 가는 일, 급식시간에 질서를 지키는 일, 패딩을 사물함 위에 잘 정리하는 일등)도 잘 지키게 되었다. 특히 휴대폰 사용 문제는 처음에 너무 교사를 힘들게 하는 문제였고 휴대폰을 걷어 자물쇠로 잠그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는데 이제는 교실 앞에 그대로 두고 필요하면 허락을 받고 사용하였다가 다시 가져다 두는 정도로 자율성이 길러졌다. 청소와 규칙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4) 노력에 대한 보상

  평소 학생들의 노력이나 발전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하는 것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먹을 것을 사주는 것으로 아이들을 달래는 것은 아주 낮은 발달단계의 유아에게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우리 아이들이 깨 주었다. 교사가 어떤 방법을 적용하여 생활교육을 하는 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아직 교사와 학생의 일대일 관계가 탄탄하게 맺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급 친구들이 서로 돕고 격려할 수 있도록 학급 점수제를 시작했다. 선생님을 감동시킬 때마다 칠판에 자석이 붙고 20개가 되면 학급 파티를 한다는 조건이었다. 대신 선생님을 실망시키면 점수가 깎일 수 있다. 전담시간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아도 붙여주고, 1인 1역을 열심히 해도 붙여주고, 수업시간에 집중을 해도 붙여주고, 발표를 해도 붙여주고....  아이들에게 최대한 선생님은 너희들과 파티를 하고 싶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몇몇 친구들의 몸에 밴 일탈행동은 계속 점수를 깎아 도저히 파티가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7시 무렵.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학교 인근 파출소 순경이라고 한다. Y의 이름을 대며 아는 학생이냐고 한다. 순간 심장이 바닥까지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사고를 친 게냐...’ 


  “Y학생이 나무놀이터에서 현금 2만 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워서 친구들과 같이 파출소에 가지고 왔습니다.”

  “아!.....  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착한 행동 했으니 담임선생님께 전화 걸어 학급 점수를 꼭 올려달라는 말을 전해주길 부탁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귀엽기도 하고, 저희 어머니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시거든요..”     

  파출소 순경에게 고맙다고, 시간이 늦었으니 아이들 집에 돌아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모든 교사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씨앗을 마음에 가지고 있다.’ 고 연수에서 배웠다.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들은 좋은 학생이 되고 싶은 씨앗을 가지고 있고, 칭찬받고 싶은 욕구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 같다. 다음날 이 친구들의 선행을 크게 칭찬해 주고 학급 점수를 무려 5점이나 올려줬다. Y는 이날 아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급 점수 20점을 모았고, 라면 파티를 위해 어떤 라면을 먹고 싶은지를 주장하는 글로 써서 발표하여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오후의 라면 파티를 위해 점심시간에 미리 밥과 김치를 저장해 두고, 영화를 보며 재미있게 라면 파티를 했다. Y는 국물까지 싹싹 먹으며 “선생님, 개꿀맛이에요.”라고 말해 아이들을 웃게 했다. 보상은 받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큰 효과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학급 점수제가 몇 가지 문제점을 보여 개인 점수제로 전환하여 운영했다.

작가의 이전글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과 관계 맺기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