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수호믈린스키처럼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교사 인생에서 만난 가장 강력한 아이들. 이 아이들과 한 학기 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내 마음에만 두기엔 너무 아까워 혹시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1. 9월 2일 세 번째 담임으로 첫 만남
1학기에 두세 번 만난 적은 있지만, 담임으로서는 처음 만난 월요일 아침. 9시 10분에 수업 시작인데 30분이 넘어서야 아이들이 모두 등교했다. 첫 시간 인사나누기 조차 불가능했는데, 친구들보다 두 살 많고 키 크고 덩치도 큰 K는 시작부터 “나 엄마 없어요...”를 계속 반복했고 Y는 계속 욕을 중얼거리다가 주변 친구들을 때리며 여기저기 큰 소리로 떠들고 교실을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새로운 담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우리 졸업식까지 잘해보자는 인사를 하고 2교시는 국악수업으로 외부강사 수업이니 줄을 서서 음악실로 가자고 했다. 음악실에 들어가는 순간 Y와 S 두 아이가 뒤엉켜 싸우고, 피아노를 치고, 온갖 악기로 소음을 만들기에 겨우 진정시켜 자리에 앉히고 싸우는 두 친구를 교실로 데려와 상담을 시도하였으나 욕을 하고 책상을 발로 차며 자신이 얼마나 화났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 국악강사가 이런 아이들은 처음 봤다며 도저히 수업을 못하겠다고 하여 두 아이를 데리고 음악실로 가서 겨우 앉히고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고 교실로 돌아왔다.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9월 1일 자로 부임한 키 큰 남자 교감선생님에 도움을 요청했다. 교감선생님도 우리 학급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들어서 알고 있기에 바로 달려와 주었다.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거짓말처럼 자기 자리에 바르게 앉아 집중을 했다. 놀라웠고 배신감에 온 몸이 떨렸다. 교감선생님은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침해할 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교육을 하였는데 역시나 10분의 집중시간이 지나니 여기저기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Y는 커터칼을 꺼내서 의자와 책상 모서리를 칼로 긁고 있었다. 교감선생님은 바로 칼을 뺏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3교시가 끝났다. 4교시는 체육 전담시간으로 아이들은 다녀오겠다거나 줄을 서거나 하는 행동 없이 모두 제멋대로 체육수업을 하러 갔다. 점심시간 역시 난장판이긴 하지만 자기들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 실컷 놀다가 5교시가 시작된 지 한참 만에 겨우 자리에 앉았다. 수업을 진행하려 하였으나 역시나 착석도 안 하고 제멋대로인 아이들에게 3교시와 왜 이렇게 다른지 질문했다.
“교감선생님이잖아요. 남자잖아요. 남자는 힘이 세잖아요.”
힘과 권위에는 굴복하는 것이 당연하단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발언이 쏟아졌다. 교과수업이 불가능하여 동화책을 읽어주고 공동체 놀이를 하려 둥글게 모여 앉았는데 한 여학생이 쭈뼛거린다. 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니 주변 아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진다. 아! 왕따까지 있었다. 여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안 하면 안 되냐고 하고 첫날인데 함께 해 보자고 설득하며 놀이를 진행하려 하였지만 불가능하였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하교를 했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P학생을 남겨놓고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냐고 하자 아무것도 도와주지 말고 자리만 아이들과 멀리 떨어뜨려 달라고 한다. 학교에서 급식도 먹지 않고, 어느 친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학습도 물론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생활교육을 위해 그동안 내가 배웠고 실천해서 효과를 보았던 모든 이론과 실천사례를 적용해 보았다. (PDC, 1,2,3 매직, **샘의 학급운영, 6학년 담임해도 괜찮아, 평화로운 학급을 위한 생활교육 등) 그러나 우리 반에서는 모든 이론이 힘을 잃었다. 규칙을 말하면 그런 건 누가 지키냐며 보란 듯 일부러 더 규칙을 어기고, 모래시계는 하루가 지나지 않아 모두 부서졌으며,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더 늘어났다. 뭔가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필요했다.
2. 친구는 화풀이 대상
욕설, 고성, 주먹질, 폭력, 가위, 송곳, 커터칼, 펜치
우리 교실에서 흔히 보였던 물건과 장면들이다. 하루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맺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심하고 찰진 욕을 계속 남발한다.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은 찌질이나 하는 짓이라고 여기는 건지 무조건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사소한 말다툼만 일어나도 서로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하며 싸운다. 다만 힘의 권력 구조에서 비슷한 레벨끼리만 싸운다. 상위의 아이가 때리면 그저 맞고 참는다.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아이들은 화가 나면 가장 약한 아이들에게 무차별 응징을 한다. 때로는 가위와 커터칼을 목에 대며 위협을 한다. 친구가 가진 음식을 빼앗아 먹기 위해 책상에 송곳을 꽂는다. 교사를 경악하게 만드는 장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아이들은 늘 있던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쳐다본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Y가 별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서 국통에 먹던 반찬을 쏟아부어도 아직 배식받지 못한 아이들은 스스로 급식실에 가서 더 받아올 뿐 한마디 불평이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분노와 화를 뱉어내고 그걸 서로 말없이 받아주고 있는 형국이었다.
3. 선생님도 힘들면 가요.
우리 학급은 내가 세 번째 담임이다. 우리 반을 가르치던 외부 강사들도 한 번만 수업하면 두 손 들고 못하겠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의 첫날도 딱 그만두고 싶었으니까. 9월 초에 아이들에게 “애들아 욕하지 말고, 자리에 앉자, 왜 이러니...” 등의 훈계를 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우리가 쫒아 보낸 선생님이 다섯 명이예요. 선생님도 힘들면 가요!”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중에 알았다. 그 말이
“선생님은 가지 말고 우리를 좀 붙잡아줘요!”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