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장에는 십 여권의 앨범이 정리되어 있다. 모두 아들의 사진이다. 뱃속의 초음파 사진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순간들이 깨알 같은 메모와 함께 정리되어 있다. 그 이후는 아들이 더 이상 나의 연출을 따라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것도 함께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의 모습을 앨범 속에 저장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본인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스스로 가슴속에 저장하고, 원할 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생각에 나도 손을 놓았다.
나는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 네가 처음 태어났을 때 머리칼이 이렇게 많았고, 신생아실에서 너의 울음소리가 제일 컸단다. 한 살 때는 이렇게 포동포동해서 앉혀 놓으면 자꾸만 굴러가려고 했었지. 네가 세 살 때는 얼마나 예쁘고 귀여웠던지 만나는 사람들 마다 웃어주고 만져주려고 했었단다.' 어쩌면 이것은 집착이나 보상심리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앨범에는 어린 시절이 없다. 마치 내가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고 태어난 것 같다. 내 앨범의 첫 페이지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앨범의 뚜껑을 열면 첫 장보다 먼저 자리한 나만의 페이지가 있다. 칼라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찍힌 몇 장의 스냅사진. 그것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그 시간을 함께 나눈 이도 그 장면을 촬영 해준 이도 없다. 오로지 나만 승차하고 나만 여행할 수 있는 타임머신이다. 어린 시절로 여행할 수 있는 길이 이 몇 장의 스냅사진뿐이라는 것이 가끔 슬퍼지기도 한다.
스냅사진 하나.
다섯 살쯤 되었을까? 손가락으로 꼽아 헤아려 보면 그때쯤 되었을 것 같다. 논두렁 밭두렁을 쏘다니며 놀다가 어스름해지는 기운을 느끼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의 등 뒤에는 막내 동생이 업혀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신작로 길을 따라 떠났다. 나에게는 뒤돌아 보는 눈빛마저 마주친 기억이 없다. 그렇게 스냅사진 한 장이 찍히고 나는 선 채로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스냅사진 둘.
초 겨울인 것 같다. 손을 호호 불며 집 앞 냇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다.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시간이면 나는 초가지붕 밑의 방이며 마루를 깨끗이 청소하고 밥상을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그날도 반쯤 벗겨진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걸레를 빨고 있었다. 저 멀리서 고운 한복 차림의 한 여인이 걸어왔다. 내 앞으로 자꾸만 가까워져 왔다. 가슴이 이상했다.
'엄마다!'
분명 낯익은 얼굴과 생소하지 않은 느낌이었으므로 나는 그녀가 엄마인 줄 이미 알아차렸다.
"란이구나! 아이고 손 시리겠다."
고운 한복을 입은 그녀가 나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난 내 손이 너무 부끄러웠다. 거칠게 갈라진 손. 그 손을
그녀에게 힘 없이 붙잡힌 채 죄 없는 발 끝만 바라보며 슬쩍슬쩍 땅을 후벼 파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어색한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런 순간이 조금이라도 더 연장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까? 그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렇게 스냅사진 한 장이 또 찍혔다.
세월이 흘러 엄마는 읍내에 살만한 기반을 일구셨고, 나는 6학년 때 엄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스냅사진 셋.
학교에 육성회비를 가져가야 하는 날이다. 나는 동생과 나란히 문 앞에 서서 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일 가져가라"
"안돼! 오늘까지 가져가야 해!"
"엄마 지금 바빠. 내일 가져 가!"
" 안돼. 선생님한테 혼난단 말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해 버리는 엄마와 떼쓰는 동생의 앙칼진 표현이 부딪히는 가운데, 나는 그냥 눈물을 떨구고 돌아서서 학교로 간다. 나중에 보면 동생은 땅바닥에 주저앉아서라도 결국 받아내고야 만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떼를 써 본 기억이 없다. 무리하게 요구해 본 적도 없다. 그래서 엄마와 나 사이에는 싸울 일도 혼날 일도 없었다. 무언가를 기대할 일도 서로를 아프게 할 일도 없었다. 그냥 존재하는 것으로 기억된다.
몇 년 후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춘천으로 유학을 떠났고, 그 후로는 엄마와 사진을 찍을 일이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로의 여행은 별로 유쾌하지가 않다. 다른 아이들처럼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그중에는 나도 소중한 딸임을 증명하는 장면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남겨진 사진은 이 몇 장의 스냅이 전부이다. 더 많은 타임머신이 있었더라면 엄마의 가슴속으로 깊은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1996년 늦여름 장마로 문산 시내가 잠기던 날, 나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뚫고 앨범과 책을 챙겨서 아파트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