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바람의 권력
끝을 볼 수 없는 몽골의 초원을 넘나드는 바람의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바람의 영혼은 경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초원 위의 권력자다. 드넓은 대지의 생명을 관장한다.
자애로운 몸짓으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기도 하고, 땅의 바닥까지 내려와 존재의 유한한 의미를 무너뜨리고 꽃과 풀들이 춤추는 영혼으로 거듭나게 한다.
바람은 초원의 생명들이 꿈꿀 수 없는 강과 호수와 만년설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준다.
그러나 초원의 바람은 때로는 냉혹하다, 신의 가까이에 태어난 특권을 자만과 욕심으로 그르치지 않기를 바란다. 햇빛을 향한 다툼을 허락하지 않으며 드넓은 대지에서 키 높이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다. 바람은 초원의 생명들이 높은 곳에서 낮게 살아갈 그들의 숙명을 가르치며 초원이 제 본질에 충실하도록 조율한다.
바람의 권력도 누군가에게서 부여받은 것이며, 무엇인가로부터 통제당하고 있었다.
여행 셋째 날 욜 링암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계곡으로 들어오는 길은 지금까지의 길과는 사뭇 달랐다. 초원 대신 바위산이 길 옆으로 높이 서 있었고, 산 위에는 향나무들이 낮게 깔려 옆으로 자라며 그 뿌리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산 아래쪽으로는 여전히 한 뼘 높이의 풀과 들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키 높이의 자랑은 금지된 일이었다
우리는 말을 타고 얼음계곡까지 들어가기로 했다. 말들의 들판에서 말을 타고 초원을 내려다보며 넓은 대지의 주인이 되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여행객들은 걸어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발바닥의 세포까지 계곡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움을 느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계곡의 중간쯤 들어온 것 같았다. 어디선가 높고 깊은 선율이 들려왔다. ‘ 오이 오이~요’ 누군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에 무척 매료되었다.
그 소리는 무슨 주문을 거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가늘면서도 높고 깊은 소리였다. 소리의 형태만으로는 아주 여리고 외롭게 보였지만, 마치 긴 칼을 들고 춤을 추는 무희처럼 부드럽고 강인한 눈빛이 흐르는 소리였다.
처음엔 나의 말고삐를 잡고 안내하던 작은 키의 늙은 마부가 부는 휘파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의 주름진 입술은 옴짝달싹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휘파람의 주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 소리가 높고 깊은 계곡의 지형으로 인한 울림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곡 안쪽으로 들어가자 얼음으로 채워진 계곡이 나왔다. 몽골에서 기온이 가장 높은 7월의 한가운데에서 얼음 계곡을 만난 것이다. 계곡이 높고 깊어 얼음으로 차가워진 공기가 계곡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다시 주저앉아 얼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계곡의 온도는 늘 겨울이라고 한다.
초원을 관장하는 바람은 자신의 임무가 끝나면 이곳으로 와서 제 몸을 닦는다. 권력자로서 휘두르던 칼을 접고 얼음 계곡 안에 갇히게 된다. 바람이 다시 초원으로 날아갈 때까지 얼마의 인고를 버텨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지 위에서 휘둘렀던 칼날에 새긴 뭍 생명들의 메시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욜 링암은 바람의 감옥이다. 그의 권력은 대 자연의 섭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아마도 초원의 생명들은 자신의 생존을 자율적 방식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 같다. 자연의 일부로부터 통제당하고 또 대 자연의 연합을 통해 그 권력을 통제하기도 한다.
자유롭게만 느껴졌던 바람은 얼음계곡에 들어와 차가운 구속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며 그가 치러야 할 형벌은 자연의 일부에 구속되는 것이다.
나는 고비 사막 위에서 그의 운행일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