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두 번 친정을 다녀올 때마다 손에는 먹거리가 한 보따리 들려 있다. 우리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취떡과 종이쪽처럼 얇게 부쳐낸 하얀 메밀전, 명태전과 꼬치, 가래떡 그리고 넘쳐나는 과일을 몇 개씩 나누어 담아 보따리가 묵직하다. 그리고 보따리 위에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얹혀 있는, 가풍처럼 내려오는 먹거리가 하나 더 있다. 손두부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의 두 개 반 정도 되는 큼지막한 두부가 투명 비닐과 검정 비닐봉지로 이중 포장되어 살포시 얹혀 있다.
엄마는 늘 집에서 두부를 만들었다.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일을 굳이 벌인다. 식구들이 모이기 이틀 전에 날을 잡아 종일 두부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맛도 맛이지만 집에서 늘 하던 일이라 손을 놓기가 아쉬운 듯하다.
엄마는 붉은 고무다라에 노란 콩 한 말을 쏟아부으며 늘 같은 말을 한다.
“이만하면 먹을 수 있겠지?”
알알이 실한 콩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손을 집어넣어 휘젓고는 미련이 남는지 다시 집어 들어 손바닥 위의 콩을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돌려 보곤 한다.
잔치를 치르고도 남을 것 같은데도 2남 5녀의 대 식구이다 보니 충분히 먹고 나누어 줄 수 있을지를 가늠한다. 가난했던 시절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음식을 할 때마다 동네잔치를 할 만큼 푸짐하게 준비한다.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결혼 전에는 엄마의 음식 만드는 일을 거들 기회가 몇 번 있었다.
밤새 불려 놓은 콩을 맷돌 위의 작은 입구로 밀어 넣고 어처구니를 돌린다. 맷돌 돌아가는 소리가 묵직하게 들려온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것은 순수한 맷돌 소리가 아니다. 콩이 부서지는 소리도 아니다. 두 개의 소리가 어처구니의 회전을 따라 전혀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낸다. 맷돌이 돌기 시작하면, 옆구리에서 하얀 눈물이 쏟아진다. 콩의 본질은 아직 다 부서지지 않았다. 덩어리들은 눈물 사이에서 무겁게 흘러내린다.
걸쭉하게 갈아진 콩을 면 보자기에 싸서 액체만 걸러낸다. 조금의 입자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엄마의 젖처럼 뽀얀 콩물이 고무다라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 엄마의 손바닥에서 동글 거리던 콩의 형체는 완전하게 제거되었다. 이제 콩은 다른 본질로 태어날 준비를 마쳤다.
하얀 콩물을 까만 솥단지 안에 넣고 불을 때면 거품을 뱉어내며 끓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장작불을 조절하는 것이다. 아궁이에서 불붙은 장작을 끄집어내어 작은 불들로 열기만 유지해줄 뿐이다. 콩물이 두부로 변하기 위해서는 살살 달래줄 필요가 있다.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조건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콩물이 두어 차례 끓어 오르면 간수를 조금씩 떨어뜨린다. 기억으로는 이 과정을 두세 번 반복한 것 같다.
간수를 떨어뜨리면 몽글몽글 덩어리들이 하얀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엄마는 기다란 나무 주걱으로 그것들을 휘저어 버린다. 그러나 그 손길은 무척 조심스럽다. 엄마는 땀방울을 떨어뜨리며 솥단지 안에 눈길을 고정한다. 그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시선은 솥단지 안의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데, 엄마의 눈에는 두부가 들어 있지 않았다. 비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담은 것도 아닌,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또 휘젓는다. 엄마가 애써 휘저을수록 꿈들은 더 많이 피어오르고 까만 솥단지 안에는 하얀 구름으로 가득하다.
그것들을 면 보자기 안에 쏟아붓고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모아 사각 틀을 만든다. 맷돌이 올라가 그것을 짓누른다. 콩을 갈 때 뽀얗게 흐르던 눈물도 투명하게 변했다. 한 개가 더 포개어지면 더는 짜낼 눈물도 없이 딱딱해진다. 이제 몽글거림도 없다. 입안으로 들어갈 순서만 기다린다.
엄마는 두부 만드는 일을 소명처럼 여겼다. 자식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오롯이 두부 만드는 일에 몰두하며 자신을 잊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엄마는 두부를 만들지 않는다. 더 만들 수가 없다. 자식을 먹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갈고 짜내며 억누를 꿈도 없다. 엄마는 이제 늙었다. 늙어서 못하는 것인지 더 이상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늙어 버렸는지 알 수 없다.
엄마의 두부는 가슴 속 이야기들을 갈아서 만든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