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 화요일 오후 나는 헤어숍 2층에 앉아 있었다. 흰 머리카락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올라온 채 덥수룩해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머리는 단정하게 잘라 주시고요, 붉은색을 조금 넣어서 무거워 보이지 않게 염색해주세요”
나는 사각형의 커다란 전면 거울에 비친 벚꽃을 보며 헤어 디자이너에게 말했다.
헤어숍은 집에서부터 2km 이상 직선으로 뻗어 있는 4차선 도로변에 있다. 한쪽 벽면이 허리 즈음의 높이에서부터 통 창으로 이루어져 있어, 거리가 시원하게 헤어숍 안으로 들어온다. 통 창 너머로 벚꽃 잎들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꽃들은 2층의 시선 바로 앞에서 흔들리며 꽃잎을 떨어내는 중이었다.
“꼭, 비가 오더라고요. 벚꽃이 피면 비가 와요. 그런데 이번에는 꽃이 아직 많네요. 꽃구경 한창 하려고 폼 잡으면 꼭 비가 오더니.”
내가 거울 속 벚꽃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헤어숍의 지점장은 내 머리를 만지며 말을 걸었다. 고객에 대한 예의인 듯싶다. 그녀와의 수다는 꽃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렇죠? 벚꽃이 피면 꼭 비가 오죠? 왜 그런 줄 아세요? 저렇게 몽환적이고 나른한 아름다움은 오래 보면 안 돼요. 사람들이 헤어나지 못하거든요. 그래서 비가 내리는 거죠. 사람들을 너무 오랫동안 유혹하면 봄이 주는 생동감을 모르거든요. 그 대신 벚꽃 잎은 시들지 않아요. 짧은 생명을 보상이라도 하듯 시들지 않고 춤을 추며 날아가는 거죠. 끝내 아름다워요.”
엊그제 비가 내렸다. 제법 많은 양의 비였다. 벚꽃이 절정을 이루고 2~3일 후면 비가 내린다. 거리가 분홍빛 꿈에 젖어 들라치면 어느새 져버리고 마는 아쉬움을 주더니, 거리는 아직 몽글거리는 꿈들이 한창이다.
봄을 여는 꽃들은 대부분 작고 여리다. 홀로 피면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군락을 이루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꽃. 제비꽃. 냉이꽃 등. 작고 여린 것들은 여럿이 모여야 하나가 된다. 특히 벚꽃은 나뭇가지가 꽃인 듯 핀다. 마치 새색시가 머리에 분홍색 가채를 올린 듯하다.
벚꽃은 세상이 한창 푸르게 솟아오를 때 사람들을 나른한 꿈속으로 끌어들인다. 은밀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 은밀함은 색깔에 묻어난다.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등 다른 꽃들은 자신의 색을 감추지 않는다. 그런데 벚꽃의 분홍은 은밀하다. 꽃잎은 ‘나 분홍색이에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분홍인 듯 아닌 듯 색의 기운만 서려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함성처럼 분홍으로 터져 나온다.
벚꽃은 현실적이지 않다. 색과 모양도 그렇지만, 피어나고 지는 순간도 그렇다. 팝콘이 튀어 오르듯 눈 깜짝할 사이에 피어서 산화하듯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벚꽃을 볼 때마다 ‘몽환’이라고 부른다.
“아~! 그래서 빨리 지는구나.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
지점장과 보조 디자이너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신기해하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나는 내친김에 봄 꽃 이야기를 하나 더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목련 아시죠? 봄을 여는 꽃 중에 목련처럼 크고 우아한 꽃은 없어요. 마치 봄의 시간을 선포하는 깃발을 꽂는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떨어진 꽃 잎 위에는 검붉은 피멍이 들어 있죠. 봄의 시작을 선포했지만 다 누리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 아픔 같아요.
목련은 원래 조금 늦게 피어났어야 하는데 제 아름다움을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튀어나온 거예요. 장미. 작약. 백합. 해바라기. 접시꽃 등 크고 아름다운 꽃들은 초여름부터 피기 시작해요. 목련은 세상을 열고 바꾸는 힘이 작고 여린 생명의 집합이란 사실을 모르고 마음이 급했던 거예요"
“그래서 목련 꽃잎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떨어지는구나. 떨어진 꽃잎이 추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책을 많이 읽으시나 보다.”
내 머리를 만지는 두 여자의 지나친 감탄과 칭찬에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너무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을 현실로 되돌려야만 했다. 나는 그저 상상을 말로 엮었을 뿐이다. 두 여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리는 말에 있지 않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너무 감탄하지 마세요. 제가 지금 막 지어낸 이야기에요.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아니지만 책 속의 진리란 것이 그런 것 같더라고요. 작가의 느낌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으며 회자되면 진리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것 같아요.”
두 여자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진짜인 줄 알았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해 주려고 했단 말예요.”
두 여자에게 진리는 책 속에 있었다. 권위에서 오는 모양이다. 50대 아줌마의 힘없는 수다는 벚꽃처럼 흩날리며 땅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아직 거리에 꿈이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로 지친 마음이 봄의 물기를 머금지 못하나 보다. 위안과 치유의 시간이 더 필요한 사람들에게 벚꽃은 제 갈 길을 늦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