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자연, 창조의 의미

매제민 - 북대황

by James


“百里無人斷午煙,荒原一望杳無邊.” — 매제민(馬載民)의 북대황(北大荒)

“백 리에 사람 없어 오름 오누이의 밥짓는 연기조차 끊어지고, 황량한 벌판은 끝이 없어 아득히 펼쳐져 있도다.”



매제민의 '북대황'은 중국 동북 지방, 특히 북만주의 북대황(北大荒)이라 불리는 광활한 초원과 들판, 강과 숲, 유목과 방목의 삶이 살아 숨 쉬는 자연 속에서 자란 작가의 유년 기억을 중심으로 한 회상록적 에세이자 문학 작품입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 기억과 풍경, 땅과 삶의 리듬을 성찰하고, 문명과 개발이 그 오래된 생태와 전통 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자 합니다.


혹독한 추위와 척박한 땅, 그리고 그 위에 뿌리내려 살아가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소설 '북대황'은 바로 그러한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의 삶을 밀도 있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단순한 역사를 넘어선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유의 길로 이끌고, 작품 속 인물들의 고뇌와 선택, 그리고 그들이 마주했던 거대한 운명 앞에서 존재에 대한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황야의 불길이 검은 땅을 비추고, 쇠스랑이 흙바람을 일으킨다. 어제의 북대황은 오늘의 대곡창이 되었다.”

(중국 공식 사이트 12371.cn 인용)


수평선 저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진, 인간의 발자국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거대한 황야. 오직 바람만이 수천 년의 침묵을 깨며 지나가던 그곳은, 중국 북동부의 광활한 대지, 『북대황』이었습니다. 매제민 작가가 그려낸 이 잊혀진 땅은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혼돈의 세계를 마주한 창세기의 첫 장면, 곧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던’ 그 태초의 순간을 현대적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서사처럼, 황무지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신비로운 심연이 됩니다.


“거주할 곳이 없으면 나무를 베어 흙벽돌을 쌓아 움막을 짓고, 농기계가 없으면 줄을 지어 호흡을 맞추며 사람 힘으로 끌었다. 배고프면 한 줌의 콩을 집어먹고, 목마르면 도랑물을 마셨으며, 모기에 물리면 손으로 그냥 쳐냈다.”(중국 공식 사이트 12371.cn 인용)


'북대황'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광활하고 황량한 북쪽의 대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곳은 삶의 터전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이 매일 반복되는 공간이며,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발현되는 극적인 무대입니다. 작가는 이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조명하며, 그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북대황'에 묘사된 광활한 평원은 인간의 나약함을 압도하는 자연의 위엄을 상기시키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백 리를 가도 연기조차 피어오르지 않는 무인지경, 끝없이 펼쳐진 황야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구절처럼, 이 끝없는 대지 앞에 선 개척자들은 자연의 무한한 힘 앞에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지를 절감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로는 감히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질서 앞에서, 그들은 깊은 겸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성경이 거듭 강조하는 메시지와 맥을 같이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창세기 1:28~30)


땅을 정복하라' 또는 '다스리라'는 표현이 때로는 지배나 착취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성경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이는 책임감을 가지고 잘 가꾸고 보살피는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마치 정원사가 정원을 가꾸듯, 창조주가 만드신 세상을 아름답게 유지하고 번성시키는 '돌봄'의 의미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무모하게 '정복'하려기보다 '경작하고 돌보아' 생명을 일구는 과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애굽기 16:1~4)


다음으로, 혹독한 자연에 순응하며 땀과 인내로 생명을 일궈내는 과정"과 "황야에서 고통과 인내를 겪으며 생존을 위해 씨앗을 뿌리고, 척박한 땅에 길을 내고, 작은 공동체를 일궈낸" 모습과 관련된 구절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냈던 이야기들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 1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양식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심으로써 그들을 먹여 살리신 이야기입니다. 백성들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해 주셨고, 이 과정은 그들에게 안식일의 개념과 순종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내용 외에도 욥기에서 하나님은 “네가 어디 있었느냐?”며 피조물인 인간에게 질문하시고, 시편에서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4)라고 고백하며 피조물로서의 한계와 창조주의 위대함을 동시에 노래합니다. 이처럼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절대자의 섭리를 자연스레 깨닫게 하는 영적 통찰의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척 서사는 단순한 절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무한한 공허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마침내 새로운 창조적 소명을 발견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세기 1:28)고 명령하십니다. 이 ‘정복’(히브리어 ‘카바쉬’)은 단순한 지배나 파괴가 아닌, 질서를 세우고 가꾸어 번성하게 하는 ‘책임 있는 경작’과 ‘돌봄’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매제민 소설 "북대황" 내용 일부

(북대황인의 노래) “처음 너를 보았을 때, 사랑의 열기가 가슴 깊이 솟아올랐다. 광활한 벌판에 서서 외친다. 북대황이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극한의 고난 속에서 삶의 의지를 다지는 인물들의 외침: "이 얼어붙은 땅에서 기대할 것은 무엇인가. 서로의 온기인가, 아니면 저 위대한 하늘의 섭리인가. 나는 오늘을 살아냈으니, 내일도 기필코 이 두 발로 일어설 것이다"

"인간적 연약함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한 마음: "내 안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모든 것을 얼려 버릴 것 같을 때에도, 따뜻한 온기를 갈망하는 작은 불꽃 하나가 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불꽃이 타인을 향한 나의 마지막 자비이기를"

"공동체의 의미와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가르침: "개인이 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순간, 가장 큰 위험에 처한다.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지 않으면, 이 어둠 속에서 누구도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거칠고 황량한 땅을 무모하게 ‘정복’하려기보다, 혹독한 자연에 순응하며 동시에 땀과 인내로 땅을 ‘경작하고 돌보아’ 생명을 일구는 과정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창조적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황야에서 고통과 인내를 겪으며 생존을 위해 씨앗을 뿌리고, 척박한 땅에 길을 내고, 작은 공동체를 일궈냈습니다 이 소설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가치와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황량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나섭니다.


“이 땅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라는 개척자들의 질문은 물질적 소유를 넘어선 내면의 성숙과 삶의 근원적 목적을 향한 물음입니다. 이는 곧 성경이 말하는 ‘소명’으로 연결됩니다. 황야는 시험의 장소이자 동시에 깨달음과 영적 성장의 공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듯,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이겨내고 공생애를 시작했듯, 황야는 인간이 세상의 본질과 자신의 진정한 사명을 발견하는 영적 훈련의 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성경적 메시지와 깊이 있게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인물들이 겪는 고통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고난의 시대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찾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은 공동체 속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믿음'과 '소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나누고 연대하는 모습은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를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또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려 애쓰는 과정은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말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가르침처럼, 쉽지 않은 길이지만 궁극적인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고귀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개척자들이 직면했던 도전과 그들이 찾아낸 ‘돌봄’과 ‘소명’의 정신은 이 시대에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정복’해야 할 대상은 자연이나 타인이 아닌, 오히려 인간의 탐욕과 무지일 수 있습니다. 대신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모든 생명과 조화롭게 공존하고, 주어진 환경을 책임감 있게 ‘돌보며’, 혼돈 속에서 각자의 ‘소명’을 찾아 의미 있는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북대황'과 성경으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일 것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그 안에서 주어진 ‘믿음’과 ‘소명’을 발견하는 것. 성경의 창조 메시지는 이렇게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질문과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황무지 위에 피어난 작은 생명처럼, 광대한 우주 속에서 각자의 의미를 찾아 삶이라는 위대한 창조에 동참하는 것들 모두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거대한 자연 앞에서의 경외, 그리고 창조의 일부를 살아가는 기쁨과 희망의 메세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By.James




<참고>

Google Scholar(구글 학술검색) 웹사이트 접속 후 "Mei Jimin Beidahuang" 검색

Beidahuang : Am Imagined World(The Chinese State at The Borders)

https://www.google.com/search?tbm=bks&hl=ko&q=Mei+Jimin+Beidahuang#:~:text=The%20Chinese%20State,kr%20%E2%80%BA%20books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제 글이 만족하셨나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제 나름대로 책과 정보를 찾아 다시 정리해 이렇게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솔직한 제 생각이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제공하고자 하오니 많이 격려해 주시고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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