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헨리 -"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혹시 삶의 배경 어딘가에서, 묵묵히 돌아가며 당신의 세상을 지탱해 준 '보이지 않는 힘'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미국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가 오 헨리(O. Henry, 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급격한 사회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평범한 이들의 희로애락을 가장 진솔하게 포착해낸 작가였습니다. 산업화의 거대한 바람이 미국 사회를 휩쓸고, 도시의 풍경이 급변하며 빈부 격차가 심화되던 격동의 시대, 오 헨리는 화려한 성공담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 담긴 진솔한 감정들을 따뜻하면서도 때로는 날카로운 아이러니로 그려냈습니다.
[레이크랜즈는 유행하는 여름 휴양지 목록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컴벌랜드 산맥의 낮은 지맥 위, 클린치 강의 작은 지류가 흐르는 곳에 자리합니다. 본래의 레이크랜즈는 집 스무 채 남짓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쓸쓸한 협궤 철도선변의 평온한 마을입니다. 철도가 소나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겁먹고 외로워진 나머지 레이크랜즈로 뛰어든 것인지, 아니면 레이크랜즈가 길을 잃고 철도변으로 바짝 붙어 객차가 자기를 집으로 데려다주길 기다린 것인지, 당신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왜 그곳이 ‘레이크랜즈’라 불리는지 궁금해집니다. 호수도 없고, 주위 땅도 말할 가치가 없을 만큼 척박하기 때문입니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그의 단편 「물레방아(원문 : '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는 이러한 오 헨리의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서 물레방아는 단순히 곡식을 빻는 기계적 장치를 넘어섭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받아 쉼 없이 돌아가며 공동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이 존재는, 부와 명예가 아닌 세대를 이어 흐르는 삶의 순환과 보이지 않는 희생을 상징합니다. 소설은 바로 이 물레방아의 이미지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시대를 초월한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늘 묵묵히 뒤에서 가족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모습은, 거친 물살을 받아 헌신적으로 움직이는 물레방아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이글 하우스에서 4분의 1마일 떨어진 곳에는, 만약 이글 하우스가 안내 책자를 냈다면 손님들에게 “관람 대상물”로 소개되었을 만한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더 이상 방앗간이 아닌, 아주 오래된 방앗간이었지요. 조사이어 랭킨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에서 바퀴 위로 물을 흘려 돌리는 물레바퀴가 달린 유일한 교회요, 그리고 세상에서 의자와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유일한 방앗간”이었습니다. 이글 하우스의 손님들은 매 안식일마다 그 오래된 방앗간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들었는데, 설교자는 정화된 그리스도인을 경험과 고난이라는 두 맷돌 사이에서 쓰임새 있게 빻아져 체로 친 밀가루에 비유하곤 했습니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 원문 일부 중]
흔히 '사랑'이라 하면, 따뜻한 포옹이나 다정한 속삭임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은 사뭇 다른 질감으로 존재합니다. 오 헨리의 작품 속에서든, 급변하는 시대의 가장으로서든, 또는 오늘날 일상 속에서든, 아버지의 사랑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늘 뒷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눈에 띄지 않게 흐르면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물살처럼, 언제나 자녀를 향해 굳건히 흐르고 있습니다.
[방앗간 주인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그의 어린 딸 아글라이아였다. 금발의 꼬마에게는 참으로 담대한 이름이었지만, 산골 사람들은 울림 있고 위엄 있는 이름을 사랑한다. 어머니가 어디선가 책에서 그 이름을 보았고, 그리하여 이름은 정해졌다. 그런데 아기였던 시절의 아글라이아는 일상적으로 그 이름을 스스로 거부하고, 끝내 자신을 “덤스”라고 불렀다. 방앗간 주인과 아내는 그 신비한 이름의 유래를 알아내려고 자주 달래 보았지만 소득이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의 가설에 이르렀다. 오두막 뒤 작은 정원에는 로도덴드론 꽃밭이 있었는데, 아이는 그 꽃을 유난히 좋아하고 관심을 보였다. 어쩌면 “덤스”라는 소리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 당당한 꽃 이름과 어떤 친연성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낯선 도시의 공장에서, 혹은 고단한 농촌의 삶 속에서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물레방아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마을의 양식을 만들어내듯, 아버지의 묵묵한 희생은 가족의 삶이라는 수레바퀴가 쉼 없이 굴러가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방식이었고, 그의 언어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합니다. 시편 103편 13절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은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본질적인 자비와 연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며,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비견될 정도의 숭고한 감정임을 일깨웁니다.
더 나아가, 이사야 49장 15절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고 전합니다. 비록 어머니의 사랑을 예로 들었지만, 이는 결코 잊혀지거나 변치 않는 헌신적인 사랑의 깊이를 설명합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내가 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건넬 여유나 표현 방식을 알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새벽같이 일터로 향하던 발걸음,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도 무심히 건네던 한마디, 그리고 누구보다 조용히 가족의 미래를 염려하던 깊은 눈빛 속에는, 그 어떤 말보다 큰 사랑이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은 마치 시편의 고백처럼 깊은 긍휼함과 영원히 변치 않는 약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글라이아가 네 살이었을 때, 그녀와 아버지는 매일 오후 방앗간에서 작은 연극을 했어요. 날씨가 허락하는 한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죠. 저녁 식사가 준비되면 엄마는 아글라이아의 머리를 빗겨주고 깨끗한 앞치마를 입혀 방앗간으로 보내 아빠를 집으로 데려오게 했어요. 방앗간 주인이 그녀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는 밀가루 먼지로 온통 하얗게 된 채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그 지방에 익숙한 오래된 방앗간 노래를 불렀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물레방아는 돌고, 곡식은 빻아지고, 밀가루 묻은 방앗간 주인은 즐겁네. 하루 종일 노래하고, 일은 놀이 같으니, 그의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그러면 아글라이아는 웃으며 그에게 달려가 “아빠, 덤스 좀 데려다줘요!” 하고 불렀고, 방앗간 주인은 그녀를 어깨에 올려놓고 방앗간 노래를 부르며 저녁 식사하러 집으로 향했어요. 매일 저녁 이런 일이 일어났답니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오 헨리의 소설들은 미소를 짓게 하면서도, 이내 마음 한켠을 깊이 울립니다. 그는 물레방아라는 일상 속 사물의 이미지를 통해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삶은 때로는 고단하고, 진정한 헌신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무언의 희생과 끈질긴 인내 없이는 그 어떤 공동체도, 가족도 온전히 설 수 없다는 것"을, 마태복음 7장 9-11절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심지어 불완전한 사람일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 하는 아버지의 본능적인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해해요," 미스 체스터가 말했어요. "그 의심 때문에 견디기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렇게 명랑하시고 다른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려 하시네요. 착한 아브람 신부님!" "착한 로즈 아가씨!" 방앗간 주인이 미소 지으며 흉내 냈어요. "누가 아가씨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할까요?"('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미스 체스터는 문득 변덕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힌 것 같았어요. "오, 아브람 신부님," 그녀는 외쳤어요. "만약 제가 아버님의 딸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얼마나 낭만적일까요? 그리고 저를 딸로 맞이하고 싶지 않으세요?" "정말 그렇습니다," 방앗간 주인이 진심으로 말했어요. "아글라이아가 살아있었더라면, 아가씨처럼 이렇게 훌륭한 숙녀로 자라나는 것보다 더 바랄 게 없었을 겁니다. 혹시 아가씨가 아글라이아는 아닐까요?" 그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기분에 맞장구치며 말을 이었어요."('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또한 빌립보서 4장 19절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며, 아버지가 자녀의 필요를 채우는 행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과 닮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레방아가 돌아가야 마을이 굶주리지 않듯,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물살이 있었기에 자녀들은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었으며, 이는 자녀의 삶에 좋은 것을 주려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의 풍경 속에도 늘 '물레방아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새벽마다 들리던 아버지의 텁텁한 기침 소리, 늘 닳아 해진 구두와 땀에 젖은 셔츠,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늙어버린 듯한 그들의 굽은 어깨. 이 모든 것들은 오 헨리의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격변하는 시대를 거쳐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잠언 3장 11-12절은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때로는 훈계와 가르침으로 다가왔던 아버지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엄격하고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모든 꾸지람과 징계 속에는 자녀의 바른 성장을 바라는 깊고도 진실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잠언 22장 6절의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처럼, 아버지는 자녀에게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삶의 지혜와 방향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역할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는 마치 물레방아가 거친 물살을 견뎌야만 곡식을 빻을 수 있듯이, 아버지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감내하며 자녀에게 삶의 바른 길을 제시하려 했던 무언의 헌신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는 자신의 청춘을 바쳐 물레방아처럼 쉼 없이 일했고, 또 어떤 아버지는 말없는 무게로 삶의 풍파를 감내하며 자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은 화려한 성공담과 드라마틱한 영웅의 서사를 기억하려 하지만, 사실 가장 위대한 이야기는 바로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흐르고 또 흘러갔던 물살 같은 사랑 아닐까요? 오 헨리의 「물레방아」는 단순한 기계적 장치 이상의 숭고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아버지의 사랑이자, 나아가 모든 '보이지 않는 헌신'의 강력한 은유입니다.
[그리고 그때 또 다른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위쪽 갤러리에는 밀가루 포대들이 길게 줄지어 쌓여 있었죠. 아마 쥐가 그중 하나를 건드렸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깊은 오르간 소리의 진동이 갤러리 바닥의 틈새로 밀가루 줄기를 쏟아내, 아브람 신부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먼지로 뒤덮었어요. 그러자 그 늙은 방앗간 주인이 복도로 들어서서 팔을 흔들며 방앗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물레방아는 돌고, 곡식은 빻아지고, 밀가루 묻은 방앗간 주인은 즐겁네."—그러고 나서 기적의 나머지 부분이 일어났습니다.
미스 체스터는 밀가루처럼 새하얀 얼굴로 예배석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있었고, 그녀의 크게 뜨인 눈은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한 모습으로 아브람 신부님을 응시하고 있었어요.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그녀는 그에게 팔을 뻗었어요. 입술이 움직였고, 그녀는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습니다.
"아빠, 덤스 좀 데려다줘요!"
피비 아가씨는 오르간의 낮은 건반에서 손을 뗐어요. 하지만 그녀의 연주는 완벽하게 제 역할을 다했죠. 그녀가 울린 그 음은 닫혀 있던 기억의 문을 부쉈고, 아브람 신부님은 잃어버렸던 아글라이아를 품에 꼭 안았습니다.('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 원문 일부 중]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져 쉽게 잊히는 일상의 배경음처럼,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은 "사랑하는 자들아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말하며 모든 진정한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힙니다. 로마서 8장 38-39절 또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고백하며, 그 사랑의 변치 않는 견고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긍휼함,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 그리고 자녀를 올바르게 이끌려는 헌신은 단순한 인간적인 감정을 넘어, 근원적인 사랑의 일부이자 반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그 힘.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살아가며 꼭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메시지입니다. 누군가의 물레방아 덕분에 이 삶을 영위하고 있고, 언젠가 그 물살이 멈추는 날, 비로소 깨달을 것입니다. 그토록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견고한 것이었는지를. 오 헨리는「물레방아」를 통해 묻습니다. 당신 곁에서 지금도 묵묵히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또 누군가의 삶을 지탱해 줄 든든한 물레방아가 되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라고...
By.James
줄거리 요약
테네시 주 Lakelands라는 작은 마을에는 오래된 물레방아 방앗간이 있었는데, 후에 한 부유한 인물 Abram Strong이 교회로 개조해주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물레방아 교회”라고 불렀다. 젊은 시절, Abram Strong은 바로 그 방앗간의 방앗간 주인이었고, 아내와 함께 귀여운 딸 **Aglaia(애칭: Dums)**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아이는 4살 되던 해에 갑자기 실종되고, 끝내 찾지 못한 채 부부는 떠나게 된다. 세월이 흐른 뒤 Abram Strong은 큰 도시에서 성공한 제분업자가 되었지만, 딸을 잃은 상실은 남아 있었다. 그는 딸의 이름을 딴 ‘Aglaia 밀가루’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재난 지역에 무상으로 나누어 주며 선행을 이어갔다.
매년 Lakelands를 찾아오는 그는 “Father Abram”이라 불리며 존경받았다. 어느 해, 휴가차 온 젊은 여성 Rose Chester와 친해지게 되는데, 그녀는 고아와 다름없는 힘든 과거를 가졌고, 본명조차 가짜였다. 어느 날 Rose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고, Abram Strong 앞에서 흐느끼던 중—
교회 천장에서 밀가루가 흩날리며 아버지의 옛 노래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불렀던 말 그대로 외친다. “Da-da, come take Dums home!”
즉, Rose Chester가 바로 잃어버린 딸 Aglaia였던 것이다.
오 헨리 특유의 반전 결말이 드러나는 순간: 고아처럼 살아온 Rose가 사실은 Father Abram의 잃었던 딸이라는 사실. 방앗간이 교회로 바뀐 것처럼, 고통과 상실이 시간이 흘러 결국 축복과 은혜로 바뀌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Aglaia 밀가루”가 이웃을 살리고, 결국 잃어버린 딸과의 재회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삶의 슬픔조차도 선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참고>
"The Church with an Overshot-Wheel”라는 작품이 American Literature 에서 원문 텍스트 제공
오 헨리의 여러 단편을 모아 놓은 Project Gutenberg의 전집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열람할 수 있습니다.
https://www.gutenberg.org/ebooks/2851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제 글이 만족하셨나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제 나름대로 책과 정보를 찾아 다시 정리해 이렇게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솔직한 제 생각이나 이야기를 여러분께 제공하고자 하오니 많이 격려해 주시고 구독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