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srkim Jun 14. 2024

터널 속 같았던 의대생활

미국 의사고시는 USMLE (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이라고 불리는데, 총 3차에 걸친 시험을 통해 치러진다. 물론 최근 그 형태가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대부분의 미국 의대생들은 2학년이 끝날 때 즈음 그 1차 시험 (Step 1이라고 불린다)을 치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통 Step 2는 의대 4학년 때 중반 즈음에 응시하고, Step 3는 보통 인턴이나 레지던시 과정 중에 마무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졸업한 이후 이 시험제도에 있어서 몇 가지 변화들이 있었는데, 아마 최근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Step1 시험이 더 이상 점수결과가 아닌 Pass/Fail제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의대를 다닐 때만 해도 Step1 점수는 의대 4학년들이 레지던시 과정을 지원하고 선별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였고, 그래서 의대 1학년과 2학년 들은 Step 1 시험을 수능 입시시험 치르듯 준비하고 걱정하며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2011년 초, 나는 이제 의대 2학년 중반이었다. 1학년 때와 뭐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난 언제나처럼 미국 안에서 의대생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계속 했고, 방황의 시간은 길어져만 갔던 것 같다. 하지만, 의대 수업진도의 빠른 페이스와, 방대한 의학지식의 양, 그리고 정말 무서우리만큼 똑똑했던 클래스 친구들까지, 난 정말 숨을 쉴 수 없는 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추웠던 시카고의 겨울은 덤.


사실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왜 이런 생활을, 이 공부를 미국에서 이렇게 해야 할까 라는 근본을 흔드는 질문들이었지만, 하루하루 나에게 주어지는 공부의 양과 그 압박감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공부라고 하면 학부생 때도 의대 (그리고 치대)를 준비하면서 누구보다 많이 해보았다고 자신감이 있었을 법도 한데, 정체성의 근본적인 뿌리를 흔드는 인생의 질문을 해대며, 외로움을 버티면서, 그 공부의 양과 페이스, 그리고 중압감을 이겨내기는 정말 뼈를 깎듯이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올라 탄 의대라는 기차는 이러한 나를 위해 천천히 가거나 멈추어 주지 않았다. 마치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컨베이어벨트처럼, 나는 어쩌다 보니 의대 2학년의 막바지, 이젠 3학년 진학의 코 앞까지 왔고, 그리고 Step 1 시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책과 랩탑 컴퓨터는 항상 붙잡고 있었지만, 졸음은 쏟아졌고, 집중이 잘 될 리가 없었다. 학교에서 보는 퀴즈나 시험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초라한 점수들로 돌아왔고, 이따금씩 치러보는 Step 1  모의고사들은 불합격 수준의 점수들이 쏟아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제까지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차라리 아무도 미국에서 의대는 가지 못할 거라고 비관했지만, 공부에 있어서만큼의 자신감과 목표의식은 뚜렷했던 학부생 때가 그립기도 했다. 아침에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러 침대에서 나오는 것이 싫었고, 수업을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공부의 양은 그만큼 더 많아져야 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더 공부해야 할 양들의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녹초가 된 내 몸이 먼저 따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펴놓고, 강의 슬라이드들을 펴놓고 책상에서 잠든 적도 많았다.


어느덧 그 해 6월 초 즈음. 이제 친구들 몇 명은 step1 시험을 마쳤다는 소식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USMLE는 컴퓨터로 각자 시험 날짜를 정하기 때문에 각자 시험 보는 날짜가 달랐다. 난 점점 더 불안해졌다. 과연 내가 이 시험을 잘 치르고 3학년 실습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아니 내가 미국 의대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는 있는 것일까? 내가 미국 의대에 온 것은 실수가 아니었을까? 정말 밑도 끝도 없는 걱정과 고민들이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구석으로 몰고 가는 듯했다.

그 당시에 다니던 학교 앞 나름 힙했던 카페. 아무리 힘들다 해도 카페가는 여유는 남아 있었던 건가 싶다


결국엔 머리가 터질듯한 몇 주의 시간을 보낸 뒤, 정말 긴 고민 끝에 나는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3학년 진학을 1년 미루기로 말이다. 휴학 아닌 휴학이랄까. 사실 꽤 많은 의대생들이 의대 중간에 짧게는 1-2년, 길게는 3-4년 정도 쉬면서 의대과정을 연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리서치나 다른 학위 프로그램 (석사 또는 박사)를 위해서 4년 의대 정규과정을 연장시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저렇게 바쁜 2학년 상황에서도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2학년 초반부터 정형외과 전공에 대한 꿈을 갖기 시작한 뒤, 어떤 정형외과 교수님과 연계가 되어서 실험실 리서치 프로젝트를 준비를 해오고 있었는데, 그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1년 동안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생겼던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허덕이던 내 의대 생활의 탈출구로 잡았던 것 같다. 물론 연구경험이 레지던시 지원할 때에 결국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내 몸과 마음을 다잡지 않고 이대로 3학년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 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학업도, 그리고 내 의사의 꿈과 진로도 말이다.


그리하여 내 친구들이 의대 3학년 실습을 시작할 때, 나는 정말 모든 의대생활을 멈추었고, 잠시 내려앉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곧 남들보다는 조금 늦게 step1 시험도 정말 잘 마무리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언제 그랬냐는 듯,  엄청난 암기의 내공을 쏟아부으면서 Step1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난 그렇게 의대생이 아닌 1년간 실험실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Step 1 공부하면서 붙여갔던 책상 앞 포스트잇들. 시험이 다가올수록 그 수는 늘어났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그 당시 최선의 결정을 했던 것이지 싶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 무엇을 어떻게 더 현명하게 다르게 할 수 있었을까?


난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현실의 내 모습은 내 욕심과 기대와는 다르게 초라해 보이던 그 시절.

누가 뭐라고 응원한들 나의 자존감은 낮아지기만 하던 그 날들.

나는 왜 타지에서 이런 힘든 공부를 자처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쏟아내던 원망들.

그리고 휘몰아치듯 몰려오던 외로움.


사실 이제는 10년도 더 지난 오래된 이야기인데. 이제는 그때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회상하면서, 그 경험들을 통해 내가 이렇게 멋지게 성장했다고 얘기할 법도 하지만..


사실 난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시절은 지금 돌이켜봐도,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남을 것 같다. 힘들고 어려웠던 날들.

작가의 이전글 심장 이식 수술 참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