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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srkim Jun 16. 2024

미국 의대 2.5학년 - 그 속내

실험실에서 연구하며 지낸 1년의 시간, 나는 의대생으로서의 모습을 버리려고 노력했다. 더 이상 허덕이며 수업 진도를 따라갈 필요도 없었고, 병원 실습을 준비하며 걱정할 일도 없었다. 꽤 반복적인 생활 패턴으로 아침에 출근하여 실험을 하다가 저녁이면 남들 퇴근할 시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단순한 과정의 반복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러한 일상이 너무 편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불과 1년 만에 다시 의대생의 본모습으로 돌아갈 것이었지만, 별로 미리부터 걱정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미리 걱정한들 무엇이 달라졌을까 싶은 마음이었는지, 아님 정말 그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1년이라는 시간은 꽤 짧은 시간인데도, 그 당시 참 길게 느껴졌었다. 매 순간순간, 그리고 계절의 바뀜도 다 기억에 남는다. 느린 페이스의 삶이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님 무언가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인지.


실험실 내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내 지도교수님은 중국분이셨는데, 꽤 큰 규모의 실험실을 운영하고 계셨고, 그 아래에는 많은 중국에서 연구 경험차 연수온 많은 중국계 의사들이 일하고 있었다. 사실 하루종일 영어보다 중국어를 더 많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뭐 어찌 됐건, 난 지도교수의 지도 아래 실험 경험도 쌓고, 페이퍼도 쓰고, 나름 꽤 그럭저럭 충실한 연구생활을 이어나갔던 듯싶다.


이러한 실험실 생활을 하는 동안, 의대동기들과의 교류도 끊겼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그들과 내가 함께하는 의대생활이란 화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의대3학년으로서 매우 바쁜 병원 실습생활을 하고 있었고, 내가 그들을 병원에서 마주칠 일은 그리 잦지 않았다. 그 반면에, 나는 오히려 이 시기에 의대가 아닌 다른 전공의 대학원생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아졌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 숨 가쁜 페이스와 무시무시한 내공의 미국 동기들 사이에서 허덕이던 의대생활과 달리, 꽤 컨트롤 가능한 일상, 그리고 자연스럽고 마음편안한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내에서의 교류. 무언가 내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시카고엔 좋은 재즈 클럽이 꽤 많았다. 뉴올리언스에서 재즈가 넘어와서 발달하기 시작한 재즈의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계속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방심하고 있을 때면,

무의식간 피할 수 없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헤집기도 했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될까?

다시 돌아간 뒤, 난 잘할 수 있을까?

다시 의대공부가 힘들어질 텐데, 그때에 나는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전공은 할 수 있을까?

난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엔 너무 역부족인가?


솔직히 1년간 의대 정규과정을 떠나 생활하면서,

이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난 하나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했다. 무엇하나 바뀐 것 같지 않은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면. 걱정이 앞섰다.

또 한편으론, 어쩌면 그냥 다시 부딪혀보는 게 유일한 해답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한번 겪어봤으니, 내공이 더 쌓였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쉽게 주저앉지 말자는 스스로의 다짐과 함께 말이다.


정말 자신감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내 모습이 스스로도 어렵고 힘들었다.

내가 살던 콘도에서 보이던 석양은 항상 예뻤다. 저기 저 멀리 모교 대학병원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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