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언제나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
주말 아침에 올라온 인터넷 신문 기사를 보면서 문뜩 그곳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하여 매미의 성입니다. 올빼미의 성과 같은 영화에나 나올 듯한 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난공불락의 큰 성이 아닌 그냥 일반인이 평범하게 쌓은 城(성)입니다. 유명한 곳이 아닌데 처음에 그냥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용이한 곳이며 풍경이 좋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성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세간의 이목을 주목할 수 있었던 주요 이유는 그 성지기인 2003년 여름에 몰아친 태풍 매미가 강타한 쓸려내려 간 바닷가 경작지를 복구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해의 매미가 우리나라에 입힌 피해는 실로 막급했습니다. 남해안의 최남단 거제도 맨 아랫 동래가 파도에 타격을 입으면서 쓸려 내려간 곳을 이 땅의 주인이 백순삼씨가 돌멩이와 시멘트를 가지고 틈틈이 주말마다 쌓아 올린 성입니다.
인부와 장비만 있으면 한 달 정도이면 만들어지고도 남을 듯한 성터(?)에 사람들은 왜 모여드는 것일까요? 여기에 스토리가 있고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스토리가 아닌 17년 간만 들어진 구조물 사이로 이야기를 동시에 쌓아 올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방문한 곳은 대전에서 자동차로 3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곳입니다.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지나서 거제 신대교를 건너서 거제도의 남단으로 갑니다. 남단에 남쪽에서 밀려오는 바닷가의 파도가 돌멩이들을 동글동글하게 몽돌로 만들어 쓸려 오는 바닷가입니다. 이미 해안가 도로로 내려가기 위해 매미 주차장에서 차량을 맞이 합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에는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 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지를 말해줍니다.사람들은 입소문으로 번 저나 가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여 코로나 19가 아니면 이미 주말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갈는지도 모릅니다. 마침 손님이 많이 오는 시간을 맞춘 듯 할머니들이 고구마를 캐서 수확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석에서 거래를 하는 듯 고구마 한 박스 가격과 맛을 이야기하는 소리를 귓가로 들리어왔습니다. 스토리 한 가지로만 이 동네 아니 거제도 전체가 먹고살 수 있는 프로젝트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의 책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2016년에 다녀온 스위스 산악철도를 처음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교육방송의 세계기행을 보고 산악열차의 원리를 보고 나 자신이 그 기차를 타고 싶은 생각을 평소에도 해왔고 드디어 가족과 함께 그 여행의 일환으로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산아래에서 꼭대기까지 가는 왕복표가 우리 돈으로 20만 원에 육박합니다. 비용에 한번 놀라고 그다음으로 만 18세 이하는 모두 무료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 의문이 풀리는 시점은 다름 아닌 티켓을 발급하고 한글로 설명서를 읽고 놀랐습니다.
이 산악 열차를 설계한 시기가 1896년 7월에 착수하여 1912년 8월에 착공 16년 만에 유럽 최고의 고도 철도역인 해발 3454미터에 개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설계한 사람은 당시 스위스 산업계의 거물인 아돌프 구에르 첼러였습니다. 이 사람은 알프스를 산책하던 도중에 이 구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철도의 왕이라고 불리는 그는 이이거와 묀히의 암벽을 통과하는 터널을 뚫어 융프라요흐 정상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건설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 후손을 위해 척박한 산으로만 덮인 알프스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물려줄 것이라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이었습니다.
17년간을 돌멩이와 시멘트 그리고 여기저기 한그루씩 심기시작한 나무가 자라서 푸르름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한땀 한땀을 정성들여서 시멘트를 바르고 그리고 그위에 블록이나 큰 돌덩어리를 쌓아 올리고 마치 성처럼 구멍도 한두개씩 뚷어주면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미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부분들이 보입니다. 이왕이면 바람이나 파도를 막기위해서도 좋겠지만 미관상이나 재미로도 더할나위 없이 좋게 만들어 보겠다는 성의 설계자이신 백순삼씨의 재치가 엿보입니다. 지난해 여기를 찾은 사람들은 40만명이라고 합니다.
여기를 사람들이 찾는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 한길을 17년간이나 했다는 사실에서 많은 용기를 얻기 때문이라고 하고 '사람들이 이러한 꿈을 꾸고 가는 것이 좋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경북 영덕이 태생이며 1981년 대우해양조선에 입사해서 2014년에 정년 퇴임했다고 합니다. 퇴직후 부산에 살고 있으며 부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여기까지 오는데 2시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처음에 퇴직후 주말농장겸 농사라도 지어볼려고 여기부지 540평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런 농장을 가꿔가던 도중 중대형 태풍 매미로 인하여 땅은 물론이거니와 흙은 모두 다 휩쓸려 가고 바위만 있던 자리를 다시 복구하였다고 합니다.
한두해에 걸쳐서 만들기를 포기할 듯 보였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짓고 있는 모습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분을 뵙지는 못했지만 성위의 공터에 갓 가져다 놓은 콘크리트를 위한 모래와 큰 돌덩어리들이 축조에 쓰일 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를 보기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보여 들고 있으며 자치단체에서도 점차 관광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왔습니다. 하루, 이틀 하다가 지치면 그만두고 제방이나 보강공사를 업자를 불러서 할 법도 하지만 자신의 땅이 태풍으로 유실되고 휩쓸여 간 곳을 자신의 힘으로 복구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유럽 중세 성을 방불케하는 건물을 디자인 한장 없이 쌓아 올려졌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망루와 망루사이의 통로도 만들고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한 옆길도 만들고 자세히 보면 구조물 사이에 전기를 시공하기 위한 조그마한 파이프도 보입니다. 성루에서 먼 바다를 보면 거제도와 부산의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도 보입니다.
웨딩사진 촬영지나 풍경사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몰려 와도 입장료를 받지않는 성주의 인심이 느끼집니다. 그분의 부탁은 이 성을 아껴주시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소박한 부탁한가지 입니다. 성주의 성쌓기는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올해도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들의 소식이 여기저기 나옵니다. 수상자의 10년내의 평균연령이 69세라고 합니다. 수상자들이 관찰력, 창의력, 분석력은 대단하기도 하겠지만 수상의 결과를 살펴보면 모든 이들이 그 분야를 그만두거나 다른 일들로 전환할 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랜 동안 인내력과 도전정신을 가지고 온 것이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애플창업자인 스티프잡스도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비난과 실패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이끌어 내면서 애플을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내용을 2005년 스탠포드 졸업식에서 언제나 배고파하며, 우직하게 (Stay hungry, Stay foolish)걸어가기를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우리사회도 실패를 비난하거나 탓하기보다는 그들이 그것을 딪고 일어나서 오랜 동안 그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용인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줘 주어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시련이나 실패는 시간이 지난 후에 이런 매미성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줄 것입니다.
이곳은 매미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조도 가는 쪽의 항구인데 성포인데 친구횟집에서 회를 먹고 나오면 이런 해지는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