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 올림
머나먼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께.
약 10년 남짓 함께했던 여정을 돌아보며 편지를 적어봐요.
할아버지께서 떠난 지도 어느새 7년이 지났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기억의 파편들이
모두 바스러지기 전에
적어두고 싶어요.
1.
할아버지께서는 기차역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걸
창문 너머로 지켜보며 눈을 비볐던 기억이 난다.
항상 새벽같이 오셔서, 잠투정을 했었는데.
멋진 제복을 입고 일하시는 것을 사진으로만 본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할아버지는 마치 알람시계처럼 정확하시고 부지런하셨다.
그리고 누구보다 건강하셨다.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이곳저곳 구경시켜주실 만큼.
너무나도 건강하셨다. 키도 크시고 항상 곧은 자세로 앉아계시는 것을 보며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격하실 것 같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게 웃어주시고 안아주시던
그 모습이 이제는 점차 흐려져간다.
하지만 웃는 얼굴이 엄마랑 너무 닮아서, 애써 떠올려본다.
2.
할아버지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내로 태어나 '형님들 먼저' 모시느라 그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대신 손주들을 앉혀놓고 이것저것 가르치셨다.
한자 쓰기, 젓가락질하기, 글씨 쓰기 등등
특히 젓가락질은 기억에 남는다.
바둑돌을 하나하나 집어 옆에 접시에 옮겨놓으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열심히 가르쳐주셨는데, 전 왜 아직도 젓가락질이 시원찮을까요?
아마 지금 보셨다면, 바둑돌 훈련 또 하라고 하셨을지도.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는 나날이 궁금한 게 많아지셨다.
점점 발전하는 세상에 놀라시며 컴퓨터를 배우고 싶어 하셨고
영어를 궁금해하셨고, 내가 배우던 중국어 학습지도 슬쩍 들춰보셨다.
한창 사춘기였던 나는 그저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어색해져
'할아버지 저 이거 배워요~.'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사실 할아버지가 내 학습지를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걸 보았다.
할아버지 저 지금은 중국어 자격증도 따고, 관련학과에 가서 한자도 열심히 배워요.
아셨다면 기특하다고 칭찬해주셨을 텐데,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막 자랑하고 싶은데.
어디로 전화를 걸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3.
여름날의 추억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이면 할아버지 댁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시원한 모시옷을 맞춰 입으시곤
점심내기 화투를 치셨다. 할아버지가 내기에서 지시곤 칼국수를 사주셨다.
할머니는 이겼지만 시원한 냉면을 말아주셨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문을 열어놓으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목침을 베고 누워 계신다.
나는 할머니가 먹으라고 쪄주신 옥수수를 먹으며 할아버지 곁에 앉아 있다.
그 고요하면서도 평화롭던 시간이 생생하다.
그리고 나는 그 해 새로 산 디카를 들고 방문했다.
초등학생의 손으로 잘 다룰 줄도 모르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를 바라보고 여러 장을 찍어두었다.
그땐 그저 재미난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언제쯤 마음이 아물어 웃으며 쳐다볼 수 있을까.
4.
할아버지는 가끔 재미난 행동을 하셨다.
흔들의자에 앉아 조그마한 라디오에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계신다.
'할아버지 무슨 노래 들으세요?' 하고 묻는 나에게 대답하신다.
'사실 아무것도 안 듣는데 그냥 귀에 끼워놨어.'
내 눈엔 아무리 그래도 진지하고 근엄하신 할아버지였는데
이런 순간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 날은 백제문화단지에 놀러 가 의복 입어보기 부스를 방문했다.
나는 당연히 남동생만 입을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왕의 의복을 찾아 입으시는 것이다.
모자를 약간 삐뚤게 쓰셨지만,
나는 또 디카를 들어 웃으며 사진을 찍어드렸다.
할아버지도 이 순간이 즐거우셨을 거라 믿는다.
5.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데 왜 그 순간의 대화가 기억이 안 날까?
옥상에 올라가 돗자리를 펴고
할아버지와 달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함께 대자로 누워 지나가는 비행기도 보았다.
분명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서 너무 서글퍼진다.
6.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데리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
특히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항상 정확한 포즈를 요구하셨다.
양쪽으로 모자를 나눠 쓰고 살짝 쪼그려 앉기.
정확한 위치에 서서 브이 하기. 등등
엄마의 어릴 적 사진들을 보면, 우리 남매와 비슷한 구도의 사진들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할아버지의 작품이겠지.
사진,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픈 지점이 있다.
병의 존재를 알기 직전 할아버지와 다녀온 여행에서였다.
나는 이때 한창 사춘기였다. 사진 찍기도 어색하고 그냥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게 되고
그저 디카를 들고 풍경만을 찍었다.
풍경을 찍다가 가끔 할아버지와 남동생을 찍어주었다.
할아버지가 나와도 같이 찍자고 여러 번 이야기하셨는데
끝끝내 고개를 저으며 사진사 역할을 자처했다.
이 순간이 아직도 너무 후회된다.
아무리 사진이 없어도 남는 기억들이 있다지만
사진조차 없어 남지 않은 기억들 때문에 아프다.
7.
할아버지는 서울에 와서 궁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고 하셨다.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등등.
어린 나는 '할아버지 제가 가이드해드릴게요'하며 자신만만했더랬지.
당연히 해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컸을 때, 당연히 할아버지도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래서 난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궁을 돌아다니고 사진을 남긴다.
할아버지가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나 보면
깜짝 놀라실 텐데, 배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셨을 텐데
할아버지의 시간을 더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워요.
(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가셨던 그 미륵사지 석탑, 드디어 완공된 거 아세요? 할머니 모시고 다녀왔어요.)
8.
할아버지 마지막 순간에 저는 철이 참 없는 나이였어요.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항상 후회해요.
아마 후회한다는 걸 아신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도닥여주실 걸 알면서도
계속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요.
앞머리를 자르러 간다는 손주 말에, 아픈 몸으로도 같이 가자며 번쩍 일어나셨는데
저는 그때 왠지 할아버지와 단둘이 가는 게 어색해
사촌동생의 손을 붙잡고 다녀왔어요.
만약 할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다면 무슨 이야길 해주셨을까요?
그래도 다행히 엄마가 할아버지께 편지를 쓰라고 해서
몇 자 적었던 기억이 나요.
'할아버지 아프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계셔야 해요.'
어린 글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셨겠죠.
편지를 받아 들고 방문 사이로 우시는 모습을 보았어요.
항상 곧은 자세로 든든하게 저를 반겨주시던 그 모습과 정반대였지요.
9.
그렇게 할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할아버지를 뵈러 가기로 약속한 그 날이 오기 전에, 멀리 떠나버리셨다.
마지막 인사를 채 하기도 전에 말이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던 그 날이 생생하다.
영정 사진은 내가 제일 좋아하던 멋진 제복을 입으신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
할아버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안 계신 할아버지 댁은 너무 허전해요.
할아버지가 키우시던 꽃들이 자리를 비우고
흔들의자의 주인이 사라지고 라디오는 서랍 깊숙이 들어갔어요.
그래도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러 저는 댁으로 향해요.
요즘 세상이 코로나라는 역병으로 난리라,
할머니와는 영상통화를 해요.
할아버지도 스마트폰을 사용하셨다면 재밌게 배우셨을 텐데.
할아버지와 카카오톡을 했다면 무슨 이모티콘과 사진을 보내주셨을까요?
괜히 궁금해지네요.
아 그리고 저는 이제 1년 후면 졸업해요.
할머니께 학사모를 꼭 씌워드리려고요.
할아버지도 마음으로 축하해주실 것이라 믿어요.
P.S.
너무나 보고 싶은
할아버지
저는 이 편지를 끝으로
그만 슬퍼할게요.
사랑해요.
긴 여정 중 저와 잠시나마 함께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또 이 기억을 안고 오래 세상을 여행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