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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케치

- 스위스 견문록

by 이성우 변호사



여행기야 워낙 많이들 쓰시니 저는 나름대로 각 나라의 조각 내지 미술품 등을 주제로 그 나라에 대한 견문록을 풀어 써 보겠습니다.

사진은 루체른에 있는 '빈사(瀕死)의 사자상'(스위스 사람이 아니라 덴마크 사람이 기획하고 루체른 출신 석공이 한 조각이라고 함)입니다. 말 그대로 다 죽어가는 사자라는 뜻인데 원어를 찾아보니, 그냥 'Löwendenkmal', 'Lion of Lucerne, Lion Monument' 사자 기념상 정도입니다.

참고로 동방견문록도 이탈리아에서는 Il Milione(굳이 번역하자면 '일만가지 기묘한 이야기'라고 함)인데 빈사의 사자상처럼 일본에서 쓴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암튼 10여년 방문했을 때는 그냥 저런 사자상이 있나 보다(바뀐 게 있다면 옆에 공중 화장실이 새로 생겼음) 했는데, 저게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찾아 보니,
사자는 프랑스 혁명 때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 루이 16세를 지켜던 스위스 용병을 뜻하고 사자가 앞 다리로 깔고 있는 방패의 문양은 '부르봉 왕조'의 것이라고 합니다.
암튼 스위스 용병들은 프랑스 근위병들이 다 도망간 상태에서도 루이 16세의 후퇴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용맹히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것은 스위스의 예전 주된 산업은 각 나라 왕조의 용병산업(목숨을 담보로 하니 비쌌겠지요..)이었으며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고용주에 대한 철저한 충성 내지 신의(좀 더 정확하게는 계약에 대한 충실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루이 16세는 아시다시피 왕실의 돈을 흥청망청 쓰다보니 스위스 전주들에게도 돈을 빌렸다고 합니다. 다만 자신이 돈을 빌렸다는 것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러니 스위스에서 고객의 정보를 비밀로 하는 은행 산업이 그 때부터 발달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이주한 위그노들이 시계 제작 기술을 스위스 장인들에게 전수해 주었기에 시계산업도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이러니 유럽 전역에 스위스는 험한 산만이 있는 시골 깡촌나라에서 점점 고급, 신용 등이 국가의 이미지가 덧붙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거기다 19세기 관광업이 붐을 일으키면서 융프라우 등에 수십 년간의 터널을 파고, 톱니바퀴로 된 기차를 만들어 알프스를 전 유럽의 관광지로 만든, 그 것도 아주 비싼 산업으로 만든 것이 스위스를 부자 나라로 한단계 더 도약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위 터널 등은 스위스 사람들이 아니라 주로 이탈리아 북부 사람들이 와서 갖은 고생하였다고 함.

마지막으로 스위스 물가가 왜 비싸냐.. 찾아보니 스위스는 주마다 최저임금이 다 다르긴 한데, 최저가 한화도 최저 '5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물가가 비쌀 수 밖에...

스위스는 다녀보니,
1. '야 이 스위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오감은 AI로는 절대 대체할 수 없구나' 라는 생각에 극한 부러움이 들었고

2. 이런 관광업만으로 나라가 굴러갈 것 같은데, 여기는 극이과 나라로 기술산업을 국가가 완전 밀어준다고 하며 공대들이 그렇게 유명하다고.. 그러니 보니 아인스타인도 취리히 공대를 다녔네요..

3. 갑자기 뜬금없이 개마고원이 생각났습니다. 개마고원을 가본 적은 없지만 거기 고원 지대는 만년설은 없을까 하는 오만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 한반도였으면 더 좋았겠다 라는 생각

난데 없이 '꿈에도 소원은 통일'

4. 마지막으로 요들송(요란한 요들은 듣지 못함)을 부르는 스위스 합창단? 분들의 모습인데 왜 다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을까요? 산 밑에서도 산 정상에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추측건대, '손 시러버서'가 아닐까 합니다.

내 마음대로 다른 나라도 To be contined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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