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를 소개합니다.

by 헤이리그로스

나의 인생에 주어진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이름이다. 나는 이선영이다. 그리고 난 남자다. 이렇게 남자라고 말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자일 것이라 착각을 한다. 왠만하면 한명정도는 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를 만날만도 한데 40대를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남자 이름으로는 쓰기에 쉽지 않다... 여자이름으로는 정말 많다. 예전에 우스겟 소리로 여고 운동장에서 선영아~!! 하고 크게 부르면 4~5명은 창문을 열어 볼 꺼라고~~ 나는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많은데, 예전에 하이텔 통신 시절(응답하라 1994 시절쯤 ㅋ) 채팅방에 로그인을 하면 잠시 후 남자들로 부터 대화 요청 메세지가 제법(?) 온다. 여자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처음에는 남자라고 대꾸를 해줬지만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 무시했다. 또 대학교를 입학하고 OT를 갔는데 내가 여자인줄 알고 우리 과 홍일점인 여자 동기랑(공대 아름이와 동급) 단둘이 방이 되는 역사(?)를 이루기도 했다. 다행이도(?) 그 친구가 OT에 참석하지 않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ㅋ, 내 이름만 알고 처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남자여서 깜짝 놀랐다며, "여자분이신줄 알았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오늘도 들었다..ㅋ 덕분에 첫 만남에 웃음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고 내 이름도 잘 기억한다. 다만 가끔 통신사나 카드사에 일이 있어 전화를 해서 내 이름을 말하면 내 목소리만 듣고 이름이 이선형씨라구요? 아~ 이성영씨? 애써 남자이름을 찾는다..


두번째는 파주다. 나는 파주에서 태어났다. 파주는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준 곳이다.내가 어렸을 때는 파주시의 슬로건은 통일의 길목(지금은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시)이라고 할정도로 휴전선에 가까운 곳이다보니, 북한과 관련 된 일이 많았다. 하지만 슬로건과는 반대로 어릴때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이승복이 나오는 반공 영화를 초등학교 내내 봤으며, 전쟁 대비 대피 훈련을 자주 했으며, 밤에는 북한 확성기 방송이 들렸으며(제법 소리가 크다) 견학과 소풍을 가도 땅굴, 임진각, 판문점으로 갔다. 거기다가 주변에 군부대도 많아 군인이 훈련을 받을 때면 우리집에 군인들이 밥이며 김치를 얻으러 수시로 왔다. 우리 아버지는 농사꾼이셔서 봄과 가을에는 군인들이 지원도 많이 나왔다. 당연히 대학을 빼고는 전부 파주에서 다녔으며, 아내도 파주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던 고등학교 후배..나의 첫사랑이다(진짜다), 그리고 독특하게 파주시는 말라리아 우범지역이라 헌혈을 할려고 해도 헌혈차에서 우선 거부를 한다. 대신 혈청헌혈은 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정말 그런 것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에 재미있는 이야깃 거리를 던질 수 있다. 지금도 파주에 살고 있다. 결혼하고 귀소본능이 발동하여 다시 파주로 복귀해서 헤이리마을 근처 작은 타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예전과 달리 파주에는 이제 분단의 역사 현장 뿐만아니라(지금은 코로나로 못오지만 그전만해도 전세계 마지막 분단국인 한국의 판문점은 외국인 관광명소이다) 헤이리 마을처럼 예술인 마을과 출판단지 그리고 다양한 아울렛, 그리고 최근에는 대형 카페들이 많이 생겨 볼거리가 제법 많은 문화 예술 동네다.


세번째는 로봇이다. 나는 로봇으로 먹고 산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른 뜻이 있어 군대를 제대하고 장수 끝에 대학교를 다시 갔고 거기서 우연히 로봇 동아리를 보고 로봇? 재미있겠는데 라는 생각에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가 나이가 많은 장수생(당시 1학년임에도 26살이었다)이라 퇴자를 맞았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나이때문에 기피 대상이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 오기로 가입을 계속 시도한 끝에 2년만에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다 무작정 오기로 들어오긴 했지만 솔직히 무언가 만드는 것에 소질은 없었다. 하지만 로봇은 남녀노소 누구랑도 얘기가 가능하고 특히 로봇을 공부하고 직업으로 삼고 있다고 하면 좀 다르게 본다. 뭐 이런 매력에 빠진것도 있지만 그보다 로봇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얘기하는 것이 즐거웠다. 몇몇 마음 맞는 대학생끼리 온라인 커뮤니티도 만들게 됐고, 제법 커져 전국을 다니며 운영진들과 대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하고 다닐 정도로 였다. 요론 재미에 빠져 2번째 대학교도 6년을 다니고 졸업했다. 졸업은 늦었고 토익시험은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6년 동안 경험은 나를 로봇 벤처기업, 정부 출연 연구소, 공공기관을 두루 경험할 수 있게 해줬고 지금은 다시 로봇 중소기업에서 배달 로봇을 상용화하는 것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나의 삶에 주어진 이선영, 파주, 그리고 로봇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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