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같은 남자를 만났다

by 서윤시



오랫동안 이름만 알던 사람이 있었다. 성은 모르고 정말 이름 정도만. 언제부터였는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우리를 묶어낸 것은 아마도 취향이었다. 비슷한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것. 종종 같은 전시를 보러 가는 것.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으나, 이미 그는 나의 세계에 아주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실은 그의 이야기를 가끔 한 번씩 친구들에게 한 적이 있었다. 나를 제일 잘 아는 동기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베스트셀러네" 그렇다. 우리가 좋아한 책들은 꽤 많이 팔린 책이었다. 물론 우리의 책들을 인생 책으로 뽑는 사람도 많지만, 내 주변에 하루키와 양귀자.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을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운명론자라는 것이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만큼은.. 꽤 운명적이지 않은가.



운명이라는 단어는 곧 잘 설렘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3년간 내가 그를 보면서 느낀 건 설렘은 아니었다. 간혹 가다 호기심과 설렘 사이에서 주저하는 때가 있긴 했지만, 정말 그뿐이었다. 내가 사랑에 회의적이라거나 그 사람이 덜 매력적이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는 정말 매력적이었고, 그래서 너무 귀하게만 느껴졌다.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서울에서 별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 오랜만에 발견한 그를, 혼자 그려보고 이어보며 어느새 그는 나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상대의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는 그가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공유하는 것이 친구라면, 우리는 분명 친구였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이렇게 3년 간의 얇고 튼튼한 우정이 이어졌고, 드디어 지난주에 처음 그를 만났다. (자꾸만 우정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 사이에 아주 많은 대화가 오간 것 같지만, 우리의 대화는 분기에 한 번 정도였다. 그러니 이건 오직 나의 실체 없는 우정이었다.)



이쯤 되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궁금할 것만 같다. 우리는 3년 동안 네이버 블로그의 이웃이었다. 대기업이 주는 혜택을 생에 처음으로 실감하는 날들이었다. 그는 글을 쓰고 싶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텅 빈 이웃 목록을 어떻게 채우지 싶어 당시에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을 검색했다고 했다. 그 책이 바로 양귀자의 <모순>이었고, 한창 안진진에 매력에 빠져 있던 나의 글을 그가 본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웃이 되었고 간간히 서로의 소식을 글로 접할 수 있었다. 둘 다 여행과 책.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난 자연스럽게 그의 글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가 너무 궁금했지만, 한편으로 난 이렇게 닿을 수 없는 우리의 관계성을 꽤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번주의 만남은 아주 충동적인 것이 맞았다. 저번주 주말 밤, 난 쓰고 있던 시나리오를 거의 다 써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잠깐 킨 블로그에는 그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마무리되어간다는 후련함은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주곤 하는데, 하필 그 새벽에. 그런 의지가 불쑥 올라왔다. 그의 글 말미에 적혀 있던, 서울에 온다는 그의 계획은 나의 의지를 실현시키기에 아주 적합한 타이밍이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울 꼭대기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주일이 넘게 지난 오늘, 갑작스럽게 그에 대해 적기 시작한 이유는 그가 남긴 선물 때문이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 그가 넘겨준 책을 매일 읽고 있다. (새로 산 책이 아니라, 그가 미국에서 힘들 때 읽었던 책이라서 정말 '넘겨준' 것이었다.) 그가 책에 그어 놓은 밑줄을 따라 읽다 보니 어느새 또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그를 남긴다. 괘씸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와 실제로 만난 그가 어땠는지는 더 말해주고 싶지 않다. 아주 훌륭한 밤이었다는 것 정도로만, 그날을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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