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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06. 2021

나도 때로는 배우이고 싶다

<슬기로운 의사생활>과 현실 도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는 여전한 인기를 자랑 중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아도 비교적 사실적인 에피소드들이 배우들의 맛깔난 연기와 버무려져 명품 드라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가끔 볼 때면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굉장히 현실에 가까운 수술 장면, 감정선을 건드리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들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데도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그래 저건 드라마일 뿐이야’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등장인물들이 ‘의학적으로’ 너무 완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난주에도 합병증으로 재수술을 했다. 15센티미터에 달하는 직장암이 골반을 가득 채우고 있던 환자였다. 환자와 보호자는 가능하면 장루를 만들지 않기를 원했지만 수술이 워낙 어렵게 진행되었고 항문에다가 대장을 직접 연결한 데다가 부분 폐색으로 장정결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터라 회장루(ileostomy)를 만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술 후 사흘째 우려했던 문합부 누출이 발생하였고, 설상가상으로 누출된 대변이 골반벽을 자극하여 출혈까지 발생하는 바람에 긴급하게 재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비어 있는 수술방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고, 세 시간을 기다려 겨우 시작한 응급 수술에서는 출혈 부위를 찾은 후에도 지혈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다 보니 욕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끝까지 드러내고야 말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이전의 다른 의학드라마에 비한다면 비교할 수 없이 사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등장하는 주요 외과계 – 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 의사들이 하나같이 수술에 성공하고 환자들은 잘 회복하는 해피 엔딩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실의 의료는 절대 그럴 수 없다. 인간이 하는 일이 마냥 다 잘 될 수는 없다. 수술을 아무리 잘하는 의사라도 합병증은 생기기 마련이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평소의 유머러스함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수술에 성공하는 의사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수술의 신일 터이고, 외과 의사의 눈으로 본다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수술의 신이 주인공인 판타지일 뿐이다.


하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면 드라마가 안 되겠지.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판타지여야 하니까. 흙수저가 재벌 2세와 결혼해야 드라마가 잘 되는 법이니까.




진료를 보다 보면 내가 잘 훈련된 한 명의 연극배우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다. 나는 의사 역할을 맡은 배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 직장암 수술 후에 대변 조절이 안 된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나가고 나면 수술에 대한 걱정으로 온갖 푸념을 시작하는 신경증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가 들어오는 한 편의 연극. 이 한 편의 연극이 끝나고 나면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나 의사 역할을 하고 있는 배우가 아닌 일상으로 돌아갈 것 같다는, 그랬으면 좋겠다는 느낌. 일종의 이인증(depersonalization, 주변 환경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지거나 그와 분리된 듯한 느낌) 같은 것일까.


의과대학 학생들은 누구라도 표준화 환자 교육을 받는다. 특정 상황에 맞는 환자 역할을 맡은 배우를 직접 문진하고 진찰해 보는 실습이다. 이런 교육은 내가 학생일 즈음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새는 의사 면허시험에 표준화 환자 진료가 포함되어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표준화 환자 실습과 관련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몇몇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응급의학과 교수님께서 천식 발작을 일으킨 환자 역할을 하셨을 때다. (물론 우리는 어떤 상황인지를 전혀  모른 채 실습을 시작했다.) 너무 실감 나게 연기를 하셔서 당장 어떻게 해 주지 않으면 정말로 환자의(교수님의)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터라 의사 역할을 맡았던 나와 친구들 셋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누군가 한 명이 ‘에피네프린 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꺼내길래 그게 무슨 약인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에피네프린 한 앰플을 정맥 주사(하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결국 환자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참고로 에피네프린은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아나필락시스 쇼크 때에나 쓰는, 무서운 약물이다.)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은,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실제 응급의학과 교수님은 에피네프린을 맞지 않았고 (그랬다면 심장 발작으로 정말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고른 숨을 내쉬며 우리를 한심하게 쳐다보셨다. 단지 우리가 환자를 죽일뻔한 멍청이들이 되었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나의 삶은 리셋이 불가능하다. 모든 환자가 바람대로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외과 수술이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 낼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합병증이 생길 때면 환자와 보호자의 원망을 듣는 것은 물론 때로는 환자 보호자에게 삿대질을 당하거나 멱살을 잡히기도 한다. 이들이 그저 배우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눈앞의 환자가 사실은 수술받고 합병증이 생겨 누워 있는 환자 역할을 하는 배우라면. 환자 옆에서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한 성격 하는 환자의 아들 역할을 맡은 배우일 뿐이라면. 이 연극이 끝나고 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지만 그들은 현실 그 자체고 나에게는 이들로부터 도망쳐 돌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현실이 없다.


가끔은 내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등장하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수술 까짓 거 완벽하게 끝내고 나와서 막 장난치고 밴드 연습하고 그러는 연기, 정말 완전 잘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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