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내 손으로 가슴 압박을 하여 환자를 살려냈던 인턴 시절의 어느 날, 처음으로 담당 환자를 잃고 비상계단에서 소리 죽여 울었던 전공의 1년차 4월의 어느 봄날, 삶의 끈을 놓으려는 환자를 어떻게든 붙들어 놓으려 중환자실에서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 돌이켜 보면 나는 의사 면허를 딴 이후로 어느 한 순간도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환자들을 돌려세우는 것이 내가 늘 해 오던 일이었고, 대부분은 성공적이었지만 결국 실패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 환자들도 상당수였다. 그렇게 숱한 죽음을 보아 왔으면서도 가까운 이의 죽음은 새삼스레 낯설었다. 죽음은 익숙했지만 익숙하지 않았고, 가까우면서도 멀리에 있었다. 죽음은 새털처럼 가벼웠고 또 한없이 무거웠다.
할머님은 화장(火葬) 후 북한산 삼천사(三千寺)에 모셨다. 고인의 넋을 기리는 스님의 낭랑한 독경 소리가 맑은 목탁 소리와 어우러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분명 좋은 곳에서 마음 편히 쉬고 계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