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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20. 2021

함박눈

1.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저녁이었다. 상현의 다섯 살배기 아들과 세 살배기 딸은 어디서 그렇게 에너지가 솟아 나오는지 상현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근한 상현이 늦은 저녁을 해치우고 설거지를 끝내자 마자 비행기가 되었다가 말이 되었다가 늑대도 되었다가 다시 비행기가 되었다가를 두 시간이나 반복한 끝에야 아이들은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시계는 어느 덧 열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종일 이어진 수술 끝에 아이들에게 시달린 상현은 녹초가 되었다. 아이들을 막 재우고 나온 상현이 피곤한 몸을 소파에 막 내던지려는 찰나, 연희가 조용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묶으라고 했지?”

앞뒤 맥락 없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현이 되물었다.

“뭐라고?”

“내가 진작에 묶으라고 했어 안 했어?”

연희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는 냉정하고 차가웠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느라 상현은 아내를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퇴근 후 내내 아내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연희가 이렇게 조용히 화를 내는 경우는 필시 두 가지 중 하나였다. 상현이 뭔가 잘못을 했거나, 아니면, 상현이 뭔가 대단히 큰 잘못을 했거나. 상현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딱히 잘못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 몰래 결제한 스마트워치 때문일까? 하지만 상현이 기억하는 한 연희는 상현의 소비에 대해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눈만 껌벅이며 멀뚱하게 서 있는 상현에게 연희는 아무 말 없이 두 줄이 선명한 임신테스트기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반사적으로 말을 내뱉고 나서 상현은 아차 싶었다. 연희가 들고 있는 물건의 정체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생들도 다 아는 것을 상현이 모를 리 없었다. 단지 연희가 갑자기 눈앞에 들이민, 성공적인 임신을 말하고 있는 두 줄짜리 테스트기 결과에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순간 연희의 표정이 분노에서 어처구니없음으로 바뀌었다.

“보면 몰라? 당신 의사잖아.”

연희의 대답에는 날이 서 있었다.

“아니, 그게 뭔지는 당연히 나도 알지. 그러니까 그게……정말이냐고.”

웅얼거리는 상현에게 연희가 쏘아 붙였다.

“대체 뭐가 알고 싶은 건데? 임신테스트기의 정확성에 대해서 나랑 토론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상현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뒤엉켰다. 대체 언제였을까? 둘째 출산 이후로는 격무와 육아에 치이다 보니 자연스레 성관계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어쩌다 갖게 된 잠자리에서도 연희는 혹시나 임신이 되지 않을까 온 정신을 곤두세우곤 했다. 안에다 싸기만 해봐. 지난 달 주말 절정의 순간에 비명처럼 내뱉던 연희의 외침이 떠올랐다. 느낌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끝내 콘돔 착용을 거부한 것이 화근이었다. 체외사정의 일 년간 피임 실패율이 이십 퍼센트 정도 된다고 했었던가. 아니다, 확률은 어디까지나 반반이다. 임신한다, 아니다, 반반. 상현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반반의 확률을 건 도박을 한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현이 아무 말이 없자 연희가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해 어떡하긴.”

지난 달 주말의 기억에서 아직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상현이 뚱하게 대답하자 연희가 기가 찬다는 듯 한숨을 짧게 내뱉고는 다시 물었다.

“낳을 거냐고.”

“일단 생각을 좀 해 봐야……”

“절대 안 돼.”

연희가 대뜸 상현의 말허리를 잘랐다. 전에 없던 단호함에 당황한 쪽은 상현이었다.

“그럼 지워?”

“그럼 낳자고?”

상현은 또다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상현을 노려 보던 연희가 입을 열었다.

“당신 의사잖아. 잘 아는 산부인과 선생님들 많을 거 아냐.”

한 점 망설임 없는 연희의 말에 상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 이게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이……”

“쉽게 생각한 거 아냐. 둘만 낳기로 이미 합의가 끝났잖아. 셋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자기도 동의했잖아. 묶기로 해 놓고 차일피일 미룬 건 당신이야. 왜 당신 때문에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데?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응?”

흥분한 연희의 말이 빨라졌다. S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연희는 작은 디자인 회사의 팀장을 맡고 있었다. 연애 시절 광고대행사에 다니던 연희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거 해서 얼마나 버느냐 도우미 아줌마 비용이다 뭐다 합치면 남는 것도 별로 없으니 괜히 고생만 하지 말고 그냥 집에서 쉬는 것이 어떠냐고 상현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상현이 근무지를 옮기게 되어 D시로 이사를 하면서 상현은 자연스레 연희가 일을 그만두게 될 것을 기대했지만 연희는 끝끝내 새 직장을 구해 이직에 성공했다. 재작년 여름 둘째 출산 무렵에는 큰 프로젝트를 하나 맡았다며 예정일 일주일 전까지 야근을 하다가 양수가 터져 구급차에 실려가 유도분만을 한 것으로도 모자라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한다며 분만한 지 일주일 만에 기어코 출근을 하기도 했었다. 연희는 그런 여자였다.

셋째를 갖지 않기로 한 것도 연희의 영향이 컸다. 외동아들인 상현은 형제자매들로 북적이는 이모네 집을 항상 부러워하며 자랐고, 결혼을 하면 아이는 꼭 셋 이상 낳겠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D시로 이사를 오면서 서울 처가와 멀어지게 되다 보니 육아는 오롯이 부부의 몫이 되었다. 비염과 천식으로 어린 시절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상현을 닮아서인지 맏아들은 잔병치레가 유난히도 많았고 둘째는 아토피가 심해 시도 때도 없이 칭얼댔다. 그 옛날 이모는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어떻게 키우신 것인지 상현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둘만으로도 상현과 연희에게 육아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셋째가 나오는 순간 둘 중 하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판이었고, 현실적으로 상현보다는 연희가 그 ‘둘 중 하나’가 될 확률이 높았다. 연희는 힘겹게 이어온 커리어를 내려 놓고 싶어하지 않았다.

상현은 뭐라도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침묵이 한동안 이어진 끝에야 상현은 주저하며 한 마디를 겨우 내뱉었다.

“그런데 그거 아직은 불법인데……”

“누가 몰라서 그래? 그러니까 잘 아는 산부인과 의사 연결해 달라는 거 아냐!”

이글거리는 연희의 눈길은 더 이상의 변명을 허용하지 않았다. 연희가 이렇게 화를 낼 때는 연희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상현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더 고민을 한 후에 다시 이야기해 봐야 하겠지만 그건 연희의 화가 가라앉은 후라도 늦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연희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알았어. 며칠만 기다려 봐.”

연희는 상현을 한참 쏘아 보다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상현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2.

“너니까 특별히 해 주는 거다.”

인철이 상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인철은 상현의 학창 시절 동아리 선배였다. 상현은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인철에게 부탁을 하게 된 것이 마뜩잖았지만 D시에 안면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라고는 인철밖에 없어 마땅히 다른 대안이 없었다.

“아유, 그럼요. 형님이니까 부탁드린 거죠.”

“사실, 요새 이쪽 업계 분위기가 별로거든. 시청 앞 사거리 J 산부인과 있지. 리모델링하고 나서 한참 잘 나갔잖아. 그런데 문 닫게 생겼어.”

“왜요?”

“형사고발 당했거든. 애 아빠라는 사람이 뒤늦게 나타나서는 허락도 안 받고 임신중절수술 했다고 온갖 행패를 부렸나 봐. 사실 원장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한 것이, 애 아빠와는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인지라 지금은 도저히 연락할 방법이 없다고 애 엄마가 거짓말을 했대. 미혼모가 되기는 싫다며 수술해 달라는데 의사가 무슨 수로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애 아빠는 수술에 동의하는지 안 하는지를 확인하냐? 알고 보니 사실혼 관계였는데 애 엄마가 남편 모르게 중절수술을 받았다가 뒤늦게 들통이 난 거래. 원장만 된통 걸린 거지. 민형사 소송 중인데, 원장이 그러고 있으니 병원이 제대로 돌아가겠어?”

인철이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나도 이제 분만은 완전히 접으려고. 돈 안 되지, 까딱 잘못하면 사고 나지, 사고라도 한 번 나 봐라, 나한테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삼십 퍼센트는 내가 물어 줘야 한다 이거야. 이게 말이냐 방구냐? 산부인과 의사들 다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돼? 매일매일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니까. 이 짓거리 계속 하다가는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 차라리 미용 쪽으로 전업 해야겠어.”

상현은 인철의 신세 한탄이 측은해 보였지만 누구를 동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산부인과나 외과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인철이 입술을 훔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요즘 필러 시술로 유명한 논현동 B클리닉 있잖아……”

말이 길어질 기미를 눈치채고 상현이 대뜸 말허리를 잘랐다.

“저기요 형, 한 이틀 입원해도 상관 없죠?”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 상현은 인철의 고민 상담까지 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응, 퇴원이야 뭐 언제든 가능하지. 좀 쉬고 싶으면 며칠 입원해도 되고.”

“그럼 하루만 쉬고 내일 퇴원할게요. 병실에 애 엄마 혼자 있어서 가 봐야겠어요.”

상현은 꾸벅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섰다. 자리를 피할 요량으로 핑계를 대긴 했지만 병실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연희의 성화에 담배를 끊은 지도 오 년이 되어 가지만 오늘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 하루만이다. 상현은 병원 앞 편의점에 들러 말보로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깊게 들이쉰 담배 연기 한 모금에 상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대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현은 앉은 자리에서 두 대를 내리 태운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오 년만의 니코틴은 상현의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연희의 수술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술은 삼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연희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거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국 환자를 살려내지 못했을 때 상현이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이었다. 그 말을 연희가 따라하고 있었다. 상현은 연희의 독백이 남편을 향한 변명인지 연희 본인에게 건네는 자기 합리화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연희의 중얼거림만이 간간이 반복되었고, 상현은 병실의 무거운 분위기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좀 답답하지 않아? 창문이라도 열자.”

상현이 일어서 창문으로 가까이 가자 연희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열지 마!”

머쓱해진 상현이 물었다.

“왜, 추워?”

“아니.”

“잠깐 환기만 시키자. 너무 답답하잖아.”

상현이 기어코 창문을 열려고 다가가자 연희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무서워.”

“응?”

“무섭다고.”

목적어가 없는 연희의 말이 상현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연희의 얼굴을 보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알았어, 미안해.”

무거운 공기에 어색함이 더해졌다.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그러지 말고 집에 가 있어. 어머님 혼자 애들 보고 계시잖아.”

“괜찮겠어?”

“바로 퇴원하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뭘. 걱정하지 말고 가.”

상현은 연희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상현이 아는 연희는, 진심이 아닌 말 속에 담긴 진짜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면 화를 내는 여자였다. 상현은 연희의 눈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쌍꺼풀진 두 눈이 오늘따라 푹 꺼져 생기가 없었다. 여기서 자고 내일 출근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이 어색한 분위기를 내일 아침까지 견뎌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다시 쑥 들어가 버렸다. 상현은 연희의 말이 진심이든 아니든 일단은 진심이라고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 그럼. 푹 쉬어. 내일 오후에 다시 올게.”

연희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며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연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도 같았지만 상현은 애써 외면하며 병실을 나섰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매섭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상현은 옷섶을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3.

“교수님, 응급의학과 2년차 안상중입니다.”

연희의 퇴원을 위해 산부인과로 향하던 상현에게 전화가 왔다. 상현은 D시 소재의 C대학병원에서 대장항문외과 조교수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방 거점병원의 역할을 하는 국립대병원이지만 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끊긴 지 이미 3년째였다. 그나마 한 명 있던 4년차 전공의마저 전문의 시험 공부를 핑계로 근무에서 빠져버리고 나니 지난 달부터 모든 응급실 콜이 주니어 스탭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이런 날마저 응급실 콜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상현은 부아가 났다.

“무슨 일이죠?”

“복막염 환자가 있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36세 여자 환자이고요……”

“오늘은 내가 당직이 아닙니다만.”

상현이 끼어들었다. 오늘 응급실 당직 순번이 간담췌외과 박현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상현이 당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디알이(DRE, digital rectal exam, 직장수지검사)상 손가락 끝에 매스(mass, 종괴)가 만져져서요. 박현규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교수님께 말씀드려 보라고……”

상현이 한숨을 푹푹 내쉬자 상대가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계속해 보세요.”

“36세 여자이고요, 하복부 전반적으로 복통을 심하게 호소하고 있고 압통과 반발통이 저명합니다. 바이탈(vital sign, 생체 징후)은 비교적 안정적인데 씨알피(CRP, C-reactive protein, C반응성 단백질. 혈청 내 CRP의 상승은 급성 염증의 지표이며 정상치는 0.3 mg/dL 이하)가 30까지 올랐습니다. 장 천공이 의심되기는 하는데요……”

“그래서 터진 거야 안 터진 거야? 씨티 안 찍었어요?”

상현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저……환자가 임산부입니다.”

헉. 순간적으로 상현의 호흡이 가빠졌다. 잠깐만, 서른여섯 살밖에 안 먹은 여자가, 직장암이라고? 거기다가 임신 중인데?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치고 들어온 충격적인 정보에 상현은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저 멀리 사거리에 노란색 신호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상현의 머릿속에도 노란 경고등이 켜졌다. 상현은 가까스로 차를 바깥쪽 차선에 정차시키고 비상등을 켰다. 서른여섯 임산부 직장암 환자라니. 서른여섯이면 연희와 동갑이었다.

“……몇 주인데요? 산부인과 진료는 봤어요?”

“18주이고요,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는 봤는데 태아는 이상이 없고 난소도 깨끗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음파에서 프리에어(free air, 장 천공시 보이는 영상 소견)가 있는 것 같다고……”

“아니 이 사람아, 초음파로 프리에어를 어떻게 알아요. 어서 씨티 찍으세요.”

“네? 저……환자가 임산부인데……”                                               

“그럼 엠알아이를 찍든가!”

상현이 버럭 내지른 소리에 놀랐는지 상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산부 복막염 환자가 내원한 것이 응급의학과 전공의 탓도 아닌데 공연히 화를 낸 것이 상현은 미안해졌다.

“우선 안티(antibiotics, 항생제) 쓰고 있어 봐요. 급한 일만 처리하고 금방 갈 테니까. 영상 검사는 내가 가서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상현은 전화를 끊고 또다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복막염, 임산부, 천공, 씨티, 직장암, 십팔 주, 당직. 정리되지 않은 단어들이 상현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굳이 정리하지 않아도 단어들을 조합하면 결론은 자명했다. 응급수술, 그리고 터미네이션(termination, 임신종결).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위험성때문에 임산부에게 씨티 검사는 금지되어 있지만 지금은 상황이 예외적이었다. 산모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기로에서 태아의 방사선 피폭은 둘째 문제였다. 선택은 냉정해야 한다는 것을 상현은 잘 알고 있었다. 상현이 씨티 촬영을 결정하고 병원으로 전화를 하려는 찰나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교수님, 아까 전화드렸던 응급의학과 전공의입니다.”

“얘기하세요.”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였고, 환자가 그냥 씨티를 찍겠다고 합니다.”

“……태아는 어떡하고요?”

“이미 아이가 둘 있어서, 그냥 지우겠다고 합니다.”

아이가 둘 있어서, 라니. 그냥 지우겠다고만 했으면 별 생각 없이 넘어갔을 것을, 사족처럼 덧붙인 그 한마디가 상현의 귀에 못내 거슬렸다. 이미 아이가 둘인 것이 십팔 주 된 태아를 지우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상현은 그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존재하지도 못할 뻔한 이 세상의 셋째들이 들으면 큰일날 소리였다. 심사가 뒤틀린 상현은 한 마디 보태려다가 차마 그럴 수 없어 입을 닫았다. 지난 몇 주간 그 인과관계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자신이 해서는 안될 말 같았다. 상현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래요, 그럼 씨티 얼른 찍으세요. 지금 가고 있는 중이니.”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전화는 끊어졌지만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말이 상현의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이미 두 아이가 있으니 셋째는 포기하겠다니, 이건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세상에는 말이 안 되는 일이 언제나 벌어지고 있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상현은 이틀 연속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4.

“삑, 삑, 삑……”

환자의 규칙적인 심장박동과 정상 산소포화도를 알리는 소리가 삼번 수술방에 울려 퍼졌다. 상현은 마취약에 취해 잠이 든 환자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앳된 얼굴이었다. 나이 서른여섯에 직장암이라니, 당신 인생도 참 고되기 짝이 없군요. 상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전공의 선생이 소독약을 바르고 있는 하복부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이미 자궁이 배꼽 부근까지 커져 있을 터였다. 

“시작합니다.”

시작한다고 말은 했지만 상현은 쉽사리 수술을 시작하지 못했다. 무섭다고 되뇌던 연희의 목소리가 문득 귓가에 떠올랐다. 어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던 말이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었다. 메스를 쥔 상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연희야, 나도 무섭다.’

입술을 앙다문 상현이 마침내 환자의 하복부에 절개를 가했다. 복벽을 가르는 메스의 촉감이 유달리 서늘했다.

“어, 생각보다 깨끗하네요 교수님.”

제1조수로 수술에 참여한 피에이(PA, physician assistant, 전담간호사) 간호사가 말했다. 웬만한 수술 보조는 전공의보다 훨씬 숙달된 팔 년 경력의 베테랑이었다. 분변 오염이 심한 복막염을 예상한 듯 수술 장갑을 두 개 겹쳐 끼고 들어왔는데 생각과는 다른 양상에 놀란 듯했다. 상현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한 복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의 자궁은 이미 성인 머리 크기만해져서 골반강 입구를 완전히 덮고 있었다. 이 정도로 커진 자궁을 직접 보는 것은 상현으로서도 드문 경험이었다. 상현이 자궁을 한 손으로 쥐고 들어 올렸다. 

‘이 안에 아기가 있단 말이지.’

수술 장갑 너머 자궁의 온기가 느껴졌다. 지난 십팔 주 동안 태아를 따뜻하게 감싸 주었던 아기집이다. 앞으로 이십 주는 더 역할을 했어야 할 아기집이다. 그 아기집을 오늘 부수어야 한다. 아기집을 찢고 아기를 꺼내야 한다. 아직은 아기집 바깥에서는 살 수 없는 아기를 기어이 꺼내야만 한다. 상현은 왼손을 타고 태아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때였다. 아기집 아래에 숨어 있던 분변이 아기집을 힘껏 들자 그제서야 복강 내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변은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경험이 많은 상현은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인테스티날 클램프(intestinal clamp, 장겸자).”

겸자로 대장을 물어 더 이상 분변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상현은 터져 나온 대변을 거즈로 닦아낸 후 복강 내를 세척하기 시작했다. 리차드슨 리트렉터(Richardson retractor, 견인 기구의 한 종류)를 손에 쥐고 당기고 있던 피에이 간호사가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엄마를 지켜 주었네요.”

그랬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아기집이 천공 부위를 막아 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분변이 터져 나와 복강 전체를 오염시켰을 테고, 범발성 복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급격하게 진행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독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을 테고, 환자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정도라도 안정적인 상태에서 수술할 수 있었던 것은 분변을 막아주고 있던 자궁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태아를 지켜 주던 아기집이, 거꾸로 엄마를 지켜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꿈틀. 순간 느껴진 태동에 상현은 소스라치게 놀라 자궁에서 손을 뗐다. 아니다, 아직 태동이 느껴질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상현은 손을 통해 전해진 움직임이 환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기는 분명 필사적이었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교수님,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은데.”

산부인과 함지웅 교수가 때마침 나타났다. 자궁이 너무 커져 있어 그대로 두고 직장암을 먼저 수술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상현이 수술을 시작하고 배를 열면 지웅이 이어 받아 임신 종결 수술을 먼저 하기로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지웅은 수술실 모니터로 상황을 살피다가 적절한 때에 맞추어 들어온 것이었다. 상현은 잠시 숨을 돌리고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수술복을 입은 채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스크럽(surgical scrub, 수술 전 손을 소독하는 행위)을 하고 들어오던 지웅이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딸만 둘이라던데, 들으셨어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멍하니 두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상현을 보며 지웅이 말을 이었다.

“아들 귀한 집안에서 어렵게 가진 셋째라고 하더라고요. 한 달 전 정기 검진에서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집안 식구들이 그렇게 기뻐했다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세상사 참 어렵네요. 그렇죠?”

넉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둔한 것인지, 제 손으로 임신 종결 수술을 하면서 저런 말을 잘도 주워 섬기는 지웅을 상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상현의 손끝에는 아직도 아까의 태동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상현은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은 아닐까? 임신을 유지한 채 수술을 마무리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씨티를 찍느라 고선량 방사선을 쬐긴 했지만 태아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항암치료를 연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현이 온갖 생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지웅의 손은 이미 자궁벽을 가르고 있었다. 아아, 이제는 정말 끝이다. 

“자, 이제 꺼냅니다.”

상현은 하마터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안 된다. 안 된단 말이다. 반드시 세상의 빛을 봐야 할 셋째란 말이다. 뱃속에서부터 필사적으로 엄마를 지켜준 효자란 말이다. 네가 무슨 권리로 그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 대체 무슨 권리로?

“아들 맞네요.”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웅이 속없이 덧붙인 한 마디가 절대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상현의 가슴을 후벼 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상현의 이성은,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본능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어느새 상현의 눈은 자궁에서 꺼내진 태아를 향해 있었다. 그건 분명히, 아기였다. 피 묻은 고깃덩어리처럼 보였지만, 분명히 아기였다. 겨우 손바닥 만했지만, 그것은 눈, 코, 입, 팔다리는 물론 양손과 양발 끝에 열 개씩의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모두 달린, 아기임이 분명했다. 다만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던 생명줄이 잘린 채 차갑게 식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 상현의 눈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교수님, 상당히 감성적이시네요. 하긴, 처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저희도 이런 수술을 자주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꾸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안타깝긴 하지만 뭐 별 수 있나요? 산모부터 살리고 봐야죠. 저는 이제 갑니다.”

자궁 봉합을 끝낸 지웅이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수술방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상현은 붉게 충혈된 지웅의 눈에서 어찌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보았다. 지웅의 과장된 행동은 태연함을 가장하지 않고는 버텨낼 수조차 없는 고통과 번뇌의 소산이었다. 그 넉살 좋은 지웅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사람이란 원래가 그런 존재였다.

이제부터는 상현의 차례였다. 셋째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살아난 엄마였다. 엄마가 무사히 회복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이제 상현의 손에 달려 있었다. 살려야 했다. 반드시 살려야만 했다. 상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의자에서 일어났다. 상현의 두 눈은 여전히 촉촉했지만 눈가로 흘러내린 눈물을 어느새 말라 있었다.

“보비(Bovie=monopolar electrocautery, 전기소작기의 별칭)!”

고요한 삼번 수술방에 상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5.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상현이 수술을 마무리하고 나오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버린 함박눈이었다. 창 너머 순백의 세상을 바라보던 상현의 눈이 다시 촉촉해졌다. 저 순수의 세상으로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저 눈밭을 뛰어다니면 나도 다시 하얘질 수 있을까? 때묻은 내가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아닐까? 상현은 자신이 차를 몰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온 세상이 잿빛으로 물드는 상상을 하다 몸서리를 쳤다.

아파트 현관에서 상현은 한참을 망설였다. 도저히 연희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깜빡. 깜빡. 비밀번호를 누를까 말까 망설이는 상현의 손길을 따라 센서등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작스레 현관문이 덜컥 열렸다. 쓰레기봉투를 손에 든 연희가 문을 나서려다가 우뚝 선 상현을 발견하고는 놀라 멈춰 섰다.

“깜짝이야. 안 들어오고 뭐 해?”

“연희야……”

상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연희야……”

한 줄기 눈물이 상현의 오른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일단 들어와.”

상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 울지 마.”

엄마 다리를 꼭 붙들고 숨어 있던 큰아들의 한 마디에 상현은 무너져 내렸다.

“미안해 연희야……미안해……”

“자기가 뭐가 미안해.”

흐느끼는 상현을 연희가 꼭 끌어안았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전부 다 내가 미안해.”

상현의 흐느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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