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해외학회 참석이다. 해마다 학회 참석으로 해외로 나들이를 가는 것이 대학에서 일을 하는 몇 안 되는 장점이었는데 코로나로 그마저도 못하게 되니 지난 몇 년간 좀처럼 refresh가 안되어 힘들었다. 그래서 정말 만사 다 제쳐두고 떠나왔다. (박교수 미안합니다.) 스탑오버를 빙자한 파리에서의 3일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의 학회 3일. 정말 소중한 일주일이다.
파리는 거의 20년 만이다. 아직 촌티도 다 벗지 못했던 (실은 아직도 그럴지도) 스물한 살 때 나는 동아리 친구들과 넷이서 한 달간 유럽을 떠돌았더랬다. 백 년만의 무더위라던 그해 여름은 정말 말도 못 하게 더웠지만, 우리는 또 그만큼 젊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여름이었다.
세 학기 동안 열심히 과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우리 넷은 돈이 없었고 어떻게든 모아둔 돈 안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려면 항공권과 숙소, 유레일패스, 그리고 각종 명소의 입장료만으로도 빠듯했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식비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침은 식빵, 점심 저녁은 패스트푸드로 한 달을 버텼다. 빅맥 세트가 결코 싸지는 않았는데 사이즈업을 하면 눈이 튀어나올 만큼 많은 양의 감자튀김과 콜라를 주었기 때문에 그 가격으로 그만큼의 칼로리를 섭취하기에는 또 그만한 것이 없었다. 질릴 법도 했지만 종일 돌아다니다 보면 너무 배가 고파서 질려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흡입하곤 했었다. 스물하나였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아끼고 아껴 한 달 동안 쓴 전체 비용은 고작 330만 원이었다. 어제오늘 쇼핑에 쓴 돈만 해도... 음... 비밀이다.
스무 살의 여행과 마흔 살의 여행이 같을 수는 없다. 마흔이 되어 다시 온 파리는 내 기억 속 스무 살의 파리와는 사뭇 달랐다. 마흔의 나는 아내와 함께 샹젤리제에서 쇼핑을 했고, 파인 다이닝에서 와인을 곁들여 프랑스 요리를 먹었고, 공항까지 택시를 탔다. 내 기억 속 샹젤리제 거리는 별 구경거리가 없는 지루한 동네였는데 이십 년 만에 다시 온 샹젤리제는 쇼핑의 천국이었다. 어딜 가나 길가에 늘어서 있는 빵집에서 아침마다 갓 구워져 나오는 바게트와 크로와상을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과 함께 맛보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에 온 가치가 충분했다. 스무 살의 나는 어찌 보면 파리의 진면목을 반의 반도 못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분명 스무 살에는 스무 살에만 보고 겪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2003년의 여름은 떠올리기만 해도 여전히 두근두근 설레고 젊은 에너지로 충만해진다. 그때의 한 달은 분명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이십 년 전 에스카르고 따위 좀 못 먹어 봤으면 또 어떤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젊음의 경험을 얻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