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이고 싶었고 그래서 외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사람의 생사를 다룬다는 것이 언제나 뜻대로 되지만은 않다 보니 내가 수술했던 환자들 중 일부 상태가 중한 환자들은 세상을 떠나곤 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세상을 떠나려는 환자들을 붙잡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괴로웠다. 무력함을 견디기 힘들었고, 그들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마지막을 좀처럼 함께 하지 못했다. 나의 몫은 항상 마지막으로 향하는 즈음까지였다. 마지막 순간 그들 곁을 지켜주고 수습하는 역할은 전공의들의 몫으로 돌렸다. 나에게는 그들의 마지막을, 나의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늘 비겁했다.
전공의 1년차 때였다. 수술 후 문제없이 회복하던 환자가 수술 일주일째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더니 미처 의료진이 손을 쓸 새도 없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 중환자실에서 밤낮없이 환자에게 매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황망한 죽음이었다. P교수님은 시시각각 상태가 나빠지는 환자를 보며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셨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 Klatskin type IV여서 원래 수술이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right posterior duct가 common hepatic duct에서 분지 되는 variation이 있어서 기적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었잖아. 그건 이 환자는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이다. 수술도 잘 되었는데 이렇게 돌아가시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떻게든 살려내야만 한다."
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도 환자는 별이 되었고, P교수님은 끝내 눈물을 훔치며 자리를 뜨셨다. 늘 크게만 보였던 교수님의 넓은 등이 그날따라 유난히 작아 보였다. 담당 주치의였던 내가 사망선고와 사망진단서 작성을 비롯한 제반 처리를 끝내고 나자 어떻게든 살리려 노력했던 중환자실 사투의 현장은 고인이 되어 버린 환자와 함께 흔적도 없이 치워져 버렸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며칠 후, 회진 때 P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제는 A환자의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 네?"
"A환자 보내드리고 왔다고."
온화하고 인정이 많으신 교수님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장례식장까지 가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의문 부호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향해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환자 아내가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더라. 손을 맞잡고 죄송하다고,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아니라고, 고맙다고, 여기까지 와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 다녀온 거야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환자가 살아 돌아오겠니? 그저 내 마음이 약간은 편해질까 싶어 다녀온 건데 조금도 편해지지를 않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P교수님의 눈가가 또다시 촉촉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깊이 한숨을 내쉬는 교수님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과연 저렇게 슬픔과 좌절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까? 나를 향한 원망을 쏟아낼지도 모르는 유족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을까?
어느 날 회진을 끝내고 나오려는데 병동 전담간호사가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교수님, 저 환자 아무래도 K환자 아내인 것 같아요."
"K환자요?"
"거 왜 있잖아요. 작년에 aspiration pneumonia 생겨서 한참 고생하다가 결국 expire 하셨던."
기억이 날듯 말듯 했다. 물론 K환자가 기억이 나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가물가물했다. 잠깐씩 만난 보호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기에는 만나는 환자와 보호자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어떤 환자였는지, 어떤 수술을 했는지, 무슨 합병증이 생겼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셨는지는 기억이 생생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 생김새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기 마련이었다.
"설마요. 남편이 여기서 수술받고 돌아가셨는데 같은 교수한테 또 수술받으러 오는 건 이상하잖아요."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맞는 거 같아요 교수님."
그런가 하고 다시 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혹시 K환자 아내 아니시냐'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다. 궁금증을 숨긴 채 여느 환자와 다름없이 치료했고 환자는 별일 없이 회복되어 퇴원했다.
2주 뒤 외래에서 환자를 다시 만났다. 아들과 함께였다. 식사도 잘하고 별다른 불편감이 없으시다고 했다. 비교적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로 치료가 완료되었고 항암치료는 필요 없으니 정기적으로 검사만 하자고 설명하고 1년 뒤에 CT와 내시경 검사를 하고 오시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교수님."
인사를 하고 일어서는 환자의 눈이 젖어 있었다. 조기 대장암으로 수술받고 잘 회복되어 항암도 필요 없는 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슬픈 표정이었다.
...... K환자의 아내가 맞구나.
진료실 문을 열고 나가는 환자를 따라나서다 말고 환자의 아들이 쭈뼛거리며 다시 들어왔다.
"저, 교수님. 사실은 저희 아버지가 K환자입니다. 작년에 수술해 주셨던. 기억하시나요?"
"네, 기억하고 말고요. 그런데......"
당신 아버지가 이 병원에서 수술받고 돌아가셨는데 왜 나를 또 찾아왔는지, 우리 병원에 대장항문외과 전문의가 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나한테 왔는지, 나를 어떻게 믿고 또 왔는지를 묻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들이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꼭 교수님께 다시 가겠다고 하셨어요. 아버지 수술을 잘해 주셨다고, 매일매일 환자를 대하는 진심이 느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회복을 못한 건 아버지의 운명이지 교수님 탓이 아니라고요. 수술 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요."
살려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고, 내 능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떻게 다시 나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셨느냐고, 두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나는 어떤 말도 이을 수가 없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내가 돌아가신 환자의 유족들을 다시 만난 것은 K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여전히 비겁하지만, 내 환자의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아주 약간의 용기는 생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