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이렇게 센스가 없니? 거기서 그렇게 하면 어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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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장에서는 센스가 있는데 병동에서는 그런 센스가 안 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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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수술에 대한 센스가 있어서 잘하는 거 같아요."
오늘 우연히 '눈치'라는 우리말이 영어로 'Nunchi'라고 검색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얼른 검색해 보았다.
'눈치란 한국인에게 비상하게 발달한,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순간적으로 간파하는 미묘한 기술을 말한다.'라고 대략 정리하고 있는 거 같다. Nunchi라는 단어의 뜻을 보고 있자니 외과의사들이 말하는 '센스'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센스'는 영어로 'sense'로 분별력, 감각이라는 뜻이다. 위에 외과의사들이 이야기하는 말에서 센스를 눈치로 바꿔보면 '너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니?', '수술장에서는 눈치가 있는데 병동에서는 그런 눈치가 없니?', '그 친구는 수술에 대한 눈치가 있어서 잘하는 거 같아요.' 정도가 될 거 같다. 거의 우리가 하는 뜻하고자 하는 바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수술이라고 하는 건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흐름이 끊기거나 흐름에 방해를 받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수술이라고 하는 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달리 흐름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수술은 수술 집도의가 집중해서 하게 되고 수술 중 변수를 줄이는 것은 수술 보조의가 주로 맡아서 하게 된다. 집도의가 진행하는 수술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보조의는 수술을 방해할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조절한다. 그래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집도의의 수술 순서에 대해서 보조의는 완전히 숙지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조의는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시야와 여유가 생기고 다른 변수들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집도의의 수술에 허둥지둥 가까스로 따라가게 되면 집도의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수술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집도의의 수술이 진행되면 집도의는 오직 수술 부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수술 부위를 잘 보일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 간호사가 수술 기구를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 등이 해야 할 일이다. 수술이 진행되면 보조의는 부산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수술장에서 발휘되는 '센스'가 중요하다. 앞서 이야기했던 '눈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인턴샘, 이거 잡아봐. 세게 당기면 안 돼. 찢어진다."
"OO야, 놔봐. 장이 흘러내리 잖아. 다시 잡아!!"
"드베키 준비해 주세요."
이런 말들을 쏟아내면서 손은 실의 매듭을 지으면서 시야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보조의의 손은 항상 부산스럽고 쉼 없이 말을 하고 있다. 집도의는 내가 펼쳐놓은 수술 부위에서 말없이 수술할 수 있도록 한다. 수술은 절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모두가 수술받는 환자의 완벽한 수술을 위해 한 팀이 되어야지만 문제없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히 험한 소리도 많이 듣는다. 심한 경우 수술장에서 쫓겨나기도 하면서 울음을 삼키고 조금씩 커나간다. 물론 그렇게 험악한 분위기가 아니었으면 조금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결국 모든 수술에 적응이 되고 여유가 생길 무렵이면 눈치를 보는 단계를 넘어선 배려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주변의 상황을 조절할 수 있고 집도의의 기분을 맞추면서 주변 사람들이 같이 편하게 수술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서는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들 이야기하는 '이제는 하산을 할 때가 되었구먼'의 경지가 된다.
이제는 내가 집도의다. 내가 맡은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해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말없이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도와준다. 수술을 망치고자 들어오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가급적 수술장에서 다그치지 않으려 한다. 모든 것이 너무 고마운 일이다. 모든 일들이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다고 한다면 나의 수술도 완생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완성된 수술의 경지는 무엇일까?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를 살리고자 철저히 준비된 의료진이 한마음으로 깨끗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 과정에서 어떠한 말도 필요 없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수술이 진행되는 경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수술 후 회복된 환자를 보며 다 같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황이면 더 좋을 것이다. 수술장에서의 눈치가 항상 나쁜 의미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눈치는 배려가 될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수술장에서는 나를 향한 눈치 싸움이 계속될 것이고 그런 과정을 거쳐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