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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Nov 20. 2022

누구를 탓하리

자정을 넘긴 시각. 가을밤의 스산한 적막을 뚫고 병원으로 나선다. 이 시간에 응급수술이라니. 사람이 아픈 것이 때와 장소를 가릴 수야 있겠냐만 하필 토요일 늦은 밤을 골라서 응급실에 올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하물며, 한 달 전부터 아팠고 나흘 전에 응급실에 왔다가 응급수술이 필요하다는 의료진의 만류를 뿌리치고 퇴원해 버린 고집쟁이 할아버지라면 더더욱이나. 수술 안 받겠다고 마음대로 집에 갈 때는 언제고 대체 이 시간에 다시 온 이유가 뭐냐고 애먼 전공의에게 성질을 냈더니, 주말에 서울에서 내려온 환자의 둘째 아들의 설득에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나 어쨌다나 자기도 기가 찬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상황은 당연히 나흘 전보다 나빠졌고, 암으로 인해 막혀 버린 할아버지의 대장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꼭 토요일 밤 열한 시에 올 필요는 없었잖아요 할아버지. 아까 낮에 아직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두 시나 세 시쯤에 오셨으면 참 좋았을 것을.


"바이탈도 스테이블하고 랩도 괜찮은데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든 한밤의 응급수술은 피해 보고 싶은 전공의 선생의 간절함이 전화기 너머로 생생히 전해진다. 비단 우리 전공의만 그런 마음이겠는가. 내가 응급수술을 결정하게 되면 이 밤을 같이 새우게 될 마취과 당직 선생님, 수술장 당직 간호사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도 수술을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괜찮겠지 싶은 건 절대 안 괜찮고, 설마 하는 일은 늘 일어난다.


"밤 사이에 터져서 빤빼(panperitonitis, 범발성 복막염) 되면 누가 책임지죠?"

"... 응급수술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이건 환자 탓도 아니고 다른 어느 누구 탓도 아니다. 내 탓이다. 내가 바이탈 뽕에 취해 외과를 선택했고, 하필이면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격까지 지랄 맞아서 아침까지 겨우 몇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어코 자정에 응급수술을 열어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내가 누구를 탓해.


내가 누구를 탓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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