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난생처음으로 타인의 박사학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우리 과 전공의 선생의 석사학위 심사는 했던 적이 있지만 박사학위 심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소화기내과 J교수님께서 특별히 부탁한다고 연락을 주셔서 내가 그럴만한 깜냥이 되는지 미처 고민해 보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승낙해 버렸었다. 나도 박사학위가 있으니 심사 자격이야 되겠지만 내가 정말로 다른 이의 박사학위를 심사할 만한 학식을 갖추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박사학위 심사를 맡아 주신 교수님들의 면면을 생각해 보면 나는 그 발끝의 때에도 못 미치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서울의대 박사 대학원 원서를 넣고 난 이후에 전남대병원으로 이직이 결정되었는데 대학원은 덜컥 합격해 버려서 광주에서 서울까지 통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해야 하는 필수 학점을 채우려면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서울에 가야 했는데 처음 1년은 호남선 KTX도 완전 개통이 안 된 상태라 수업이 끝나고 세 시간이 넘도록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 자정이 넘었었다.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지 그때는 정말 그런 고역이 없었다. 그래도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사 대학원인데 포기하기에는 아까워서 기를 쓰고 다녔다. 지금은 보편화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화상강의가 거의 없었는데 어느 학기엔가 전공필수 과목 하나를 화상강의로 개설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은 학위 심사 이전에 연구계획서 심사 단계가 한 번 더 있었다. 말 그대로 내가 이런 연구를 하겠다는 계획을 심사받는 것인데, 실은 이 단계가 실제 학위 심사보다 더 어렵다는 얘기가 많아서 박사학위를 줄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연구계획서 단계에서 가차 없이 탈락시켜 버린다고들 하였다.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 것이 있을까 싶지만 아무에게나 함부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는 서울대학교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면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내 박사학위 심사위원으로는 내 스승님들과 함께 타과 심사위원으로 소화기내과 김주성 교수님께서 참여해 주셨다. 그래, 맞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 주치의이신 바로 그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내 크론병을 진단하고 치료해 주셨던 내 주치의이시기도 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으니 부드럽게 넘어가 주시지 않을까 속으로 기대하였는데, 광주에서 고생해서 다니고 있으니 적당히 넘어가 주라는 심사위원장님의 은근한 압박에도 김주성 교수님께서는 전혀 굴하지 않고 6개월 후 재심사 판정을 내려 주시었다. 아, 그때의 좌절감이란!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나는 '대통령 주치의가 인정한' 의학박사가 되었다. 내 박사학위 논문에는 영광스럽게도 훗날 대통령 주치의가 되실 교수님과, 보라매병원 원장님이 되실 교수님과, 대한대장항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실 교수님들의 서명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제 와서 보니 새삼 너무나 대단하신 분들께 박사학위 심사를 받았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박사학위 최종 심사가 마무리되던 날은 정말 이제 끝났다는 후련함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인생의 한 고비를 또 넘었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박사 학위를 받는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부모님께서 너무 뛸 듯이 기뻐하셔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각하니 자식이 박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인지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박사 학위를 딴 것이 부모님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박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부모님 은혜에 조금은 보답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내가 심사한 오'박사님' 학위논문은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고 고생해서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기꺼이 오박사님의 박사학위를 인준한다는 서명을 해 드렸다. 오박사님, 제가 박사학위 인준을 받았던 교수님들과 달리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합니다.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저도 좀 더 대단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훗날 오박사님도 나는 이런 대단한 사람에게 박사학위 심사를 받았다고 자랑할 거리가 하나 생기지 않겠어요? 박사학위 받으신 것 너무너무 축하드리고 앞으로 박사님의 앞날에 무운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내년에 명교수님 연수 가고 안 계시면 제가 자꾸 전화해서 귀찮게 해 드릴지도 몰라요. 모른 척하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