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어김없이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시간은 나를 익숙한 공간에 두고서 저만 흘러갔다. 그러더니 2022라는 숫자를 2023으로 바꿔버렸다. 그 숫자가 바뀜으로 나는 원래의 나이에 숫자 하나를 더 해야 한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공간은 그다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병원은 항상 환자들과 직원들이 오가고 병동에는 입원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 수술장도 그대로이다. 그 안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도 나와 같이 별 달리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한 해가 흘러가고 새해를 맞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흘러간 한 해를 생각하면 후회, 서운함, 아련함이 남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희망'이다. 그래서 새로운 한 해를 맞는 나의 마음이 설렌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의 첫 수술을 시작했다. 손을 씻으며 생각했다. 올 한 해도 나의 손을 거쳐가는 환자들이 별문제 없이 잘 나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밝은 분위기에서 수술을 시작했다. 수술장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도구와 익숙한 소리들이 언제나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온몸의 감각을 통해 확인하였다. 올 한 해에도 어렵고 위험한 수술도 있을 것이고 간단하고 비교적 쉬운 수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것도 내가 쥐고 있는 메스에 실려있는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덜어줄 수는 없다. 수술의 난이도와 관계없이 항상 같은 무게의 책임감이 있고 어떤 수술이건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언제나 첫 시작은 들뜨고 희망적이고 설레기 마련이다. 그 시작은 다시 시간이 흘러 정해놓은 365일의 시간이 흐르면 마지막이 된다. 그 마지막에 다 달았을 때 첫 시작의 들뜨고 희망적이고 설레었던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 씻겨나가 희석되기 마련이고 결국 후회,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남긴다. 하지만 후회와 아쉬움은 마셔버린 원두커피잔에 남은 커피가루처럼 남아 있을 테지만 아주 조금만 남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나의 첫 마음이 언제까지 깊은 잔향을 남기듯 오랫동안 나에게 남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