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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24. 2016

뜻대로 되면 여행이 아니지,

안동, '16.10.3-10.4

안동은 나의 큰댁이어서 늘 일년에 최소 두어번은 방문했지만, 안동찜닭도 간고등어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고 하회마을도 도산서원도 가본 적이 없이 그나마 명절때만 내려왔던 사촌언니가 친구들과 약속장소로 몇번 언급했던 맘모스 제과점만 얼핏 기억에 남아있는 곳이다. 
그런 안동엔 결혼후에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는데 그런 안동을 가을 핑계삼아 여행지로 선택하게 된 것은, 큰 아이때문이었다. 제 아빠의 작은아버지니 고모니 가끔 만나 볼 일이 있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의 큰아빠와 큰엄마는 어디 계셔?" 하며 만나보고 싶다고 하니, 남편이 그러자고 한다. 아이로서는 당연한 궁금증이었는데, 나는 왠지 받으러갈 빚이 있는 마냥 그때부터 조급해졌었다. 
어린 시절 그 곳에서 보낸 시간 다 합쳐 얼마나 될까마는, 갓 쓰고 도포걸치고 할아버지들이 자전거를 타는 그 소도시에서 스쳐지나갔던 나의 그 유년마저 샅샅이 쓸어모아야한다는 듯 마음을 재촉한다.  마침 그 질문이 처음 나온 것이 대구로 이사온 후였으니 가깝기도 하고. 절묘한 타이밍이다. 

가려고 마음먹었던 개천절 연휴에 비가 내내 온다는 예보에 막상 주저한 탓에 출발 하루 전이 되서야 검색을 했더니 마음에 드는, 특히 원했던 하회마을 내의 민박, 특히 화장실이 붙어있는 곳은 방이 없다.  
남편은 예전에 경주에서 한옥 민박이 정말 좋았었는지 이번에도 한옥에서 자고 싶다고 하는데. (휴. 빈티지 매니아) 반나절을  정신없이 검색한 끝에 아침도 종가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는, 안동의 한 종택이자 고택을 예약하는데 성공(?)했다. 그건 성공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지만.

하회마을, 도산서원, 월영교 등 사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았다. 안동찜닭, 간고등어, 헛제삿밥, 맘모스제과점 등 먹어보고 싶은 건 또 얼마나 많은지.(결과적으로 하회마을밖에 못가봤..) 일단 하회마을에 가고, 찜닭을 먹고 그 다음날 오후엔 큰댁에 들르는 것으로 윤곽을 잡았다. 

하회마을은  마을의 보호를 위해 차량이 마을까지는 못가고,(아마 숙박객은 예외일듯)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 주차를 해 놓고 전용셔틀을 타고 5분여 들어가야한다. 그 셔틀은 꽤 자주 오가는 듯.


하회마을엔 가을이 옅게 오고 있었다. 양동마을, 한옥마을 등 여러 마을을 가보았지만 하회마을이야말로 내 마음속에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전통마을과 제일 흡사한 것 같았다. 
하회(河回)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마을을 크게 낙동강이 돌아나가고, 그 강 건너에 부용대라는 큰 병풍같은 절벽이 있고 그곳을 왕래하는 나룻배(라고해서 기대했는데 사실은 통통배여서 타보지는 않았다)도 있다.
저녁 어스름에 초가지붕 사이로 굴뚝에서 밥하는 연기냄새를 맡고 싶은 풍경. 차가 다니지 않으니 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우리는 마치 이탈리아 고도시 어느 골목의 골동품 가게에서 처음 보는 물건을 보고 지갑을 풀듯(이탈리아 가본 적 없습니다) 여기서 나무로 만든 숟가락, 젓가락, 호박엿, 부채 모양의 책갈피 같은 것들을 샀다. 아무렇게나 가득 쌓여있는 국산 나무로 만든 숟가락이 1,000원. 중국산은 오히려 비닐에 쌓여있었다. 


하회마을 들어가기 직전, 셔틀타러 가기 전에 초가집 모양들의 식당과 매점들이 모인 곳에서 늦은 점심으로 간고등어 정식을 먹었었는데, 그 배가 다 꺼지지는 않았지만 찜닭을 안먹을수는 없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안동시장에 있는 찜닭골목으로 간다. 시장안에는 수많은 찜닭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그 중 유진찜닭이라는 집이 가장 유명한 모양인데 줄도 길고 가게가 작아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과감하게 남편이 한적해보이는 찜닭집을 골라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여기도 무려 100년ㅋㅋ (클라스 보소) 전통의 맛집. 먹고 나와서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맛도 맛이지만 아주머니들이 친절해서 더 인상깊었던 곳. 안동찜닭은 사실 이 찜닭골목 어디에 들어가서 먹어도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전에 서울에서 먹던 안동찜닭과는 다른, 좀 더 매콤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리고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시골 초행길을 달려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는데..지난 번 통영여행 이후로 최대의 패닉이다.
전화로만 통화하고 예약한 고택의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안방, 즉 내외분께서 그냥 사시던 방을 그대로 내주신 것이다. 종택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을듯.  관리하시는 분이 종가 어르신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ㅜ 그 안에서 마냥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추억하기에 나 스스로의 낭만 역량(?)은 부족했다ㅠㅠ 게다가 나는 어디를 가도, 캠핑을 가도 꼭 샤워를 하고 자야하고, 캠핑장에서도 화장실과 샤워실을 따지는 스타일인데, 이 날은 샤워를 하지 않았으니 말다했다.  화장실은 작았고 청소는 기대할수 없었....이래가지고 무슨, 어디 유럽배낭여행을 한다는 것인지.(구체적인 계획 없습니다)
생각도 못했던 곳에 드디어 가게 되는 그 일에 따라왔던, 완벽하게만 되어야한다는 그 강박때문에도 더욱, 나는 그 밤 자정 넘어서까지 잠못들고 또록또록 뜬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아야했던 것이다.


아이들이야 마냥 잘 잤고, 둘째는 옆방 가족과도 안면을 트고 사과체험으로 땄다는 사과까지 얻어왔다. 사과가 맛있어서 놀랐다. 바로 딴 사과의 맛이 이렇구나. 색은 빨갛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사과중에 제일 맛있었다.
고택 뒷 마당에는 잔디 언덕과 큰 그네가 있어서 다 큰 우리 부부도 그네타며  깔깔깔깔 거리면서 네 식구 모두 잘 놀았다. 그리고 이제는 허리가  너무 많이 굽으신 종부 어르신에게 밥상을 받는 일도 좀 송구스러웠다.


숙소에 패닉을 느낀 나를 의식했는지 여행지에서 맛집(특히 빵집)에 목숨거는 나에게 비협조적인 남편이 순순히 차를 맘모스 제과점으로 돌려준다. 전국3대 빵집이라고도 하고 미슐랭 그린가이드 (레스토랑에 별을 매기는 레드 가이드와는 다른 것으로,여행정보를 소개)에 실렸다고도 하는 이 핫하다는 빵집에서, 들어가기만 하면 원하는 빵을 살 수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특히 유명하다는 크림치즈빵이 나오려면 기약없이 기다려야한단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크림치즈빵 언제 나와요?" 하고는, 끝까지 기다리는 파와 그냥 다른 걸 사서 나가는 파로 갈린다. 그래서 어쨌냐하면, 승부욕이 발동한 남편은 나올때까지 빵이랑 커피를 먹으면서 기다리자고 한다. (테이블에서 먹다가도 빵이 나올때쯤엔 줄을 섰다) 그렇게 나는 잠못잔 얼굴과 못감은 머리를 하고 20대들 사이에서 빵을 사먹으려고 줄서는 일을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빵은 진짜 맛있습니다. 


그리고 큰 댁에 들러서, 내 예상과는 달리 그리 많이 늙지는 않으신 큰아빠와 큰엄마를 만나뵙고, 자고 가라는 두 분을 사양하고 나와 차에 올랐다. 드리러 사갔지만 굳이 덜어 되싸온 포도를 트렁크에 싣는 그 새를 못참고 아이들은 오래된 아파트 놀이터로 달려간다.하긴 너희에게 놀이터말고 뭣이 중허리. 집에 온 다음에도 엄마의 외큰할아버지;;가 사과잘먹는다고 칭찬했던 이야기나 용돈받은 얘기를 하는 이 아이들에게 가족의, 이 뜨게실같은 우주의 라인의 의미는 무엇일까. 빚은 내가 졌는데 아이들이 갚은 느낌이다. 차에 올라 다음에는 본 지 오래된 이모댁도 가봐야지,이런 나의 크고 작은 채무들을 생각해보며, 이런저런 음악을 골라 들으며, 그 때는 미리미리 검색해서 숙소에 실패하지 않으리라 절치부심하면서-

그러나 그때라고 완벽한 숙소일 리 없고,완벽한 여행일 리 없다.어차피 가보지 않은 길,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여행은 너무도 인생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여행에서 뜻대로 되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한번도 가도 보도 못한 것인데 그 모든 것이 짐작대로 될 리가 없고 인생도, 사실 뜻대로 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10만원의 방값으로 치룬 교훈치고는 싼 것도 비싼 것도 같은, 이른 것도 늦은 것도 같은 교훈을 집에 와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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