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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7. 2017

새해 여행, 아이는 크고 우리는

청송 주왕산과 영덕 해돋이

새해가 되면서 열두살이 되는 큰아이는 어느 날, 담담하나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번 겨울방학엔 외갓댁에서 일주일만 보내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노안인데다가 까불지 않는 아이라 이렇게 뭔가를 말하면 꼭 들어줘야할 것 같은 느낌적 압박이 든다;;)

이렇게 해서 두 걱정 노인네틱한 부모 때문에 흔한 1박 2일 캠프도 한번 안가본 아이는 어떤 나이가 되자 스스로 '집'을 떠나 '집 아닌 다른 곳'에 머물고 싶다고 밝히는 때가 온 것이다.

그렇게 아이따라(?) 급서울행. 큰 아이는 서울 출장가는 아빠를 따라 먼저 외갓집에 가서 떨궈(?)졌고 둘째 예비소집이 그 다음날 있던 나는 예비소집을 마치고 둘째와 올라가기에 이른다.

직장맘이었던 1-2년전 엄마가 몇일간 출장갈 일이 있을 때면 의레 외갓집에 맡겨졌다가 늦게까지 안자고 엄마 없다고 우는 동생따라 저도 울었던 아이가, 이젠 사촌동생과 놀고 싶다고,외갓집에 혼자 있을 수도 있다며 제발 보내달라고 조를 때는 정말 격세지감. 그런데 사촌동생과 같이 놀고 싶은 이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터닝메카드라는 것이 함정.ㅋㅋ    


이렇게 새해가 오고, 우리는 나이를 먹고, 아이는 큰 것이다.

이번에 우리가 연말연초 여행지로 간 곳은 청송과 영덕이다. 오메가 해돋이를 봐도 별 풀리는 게 없는 작년에 데어서 올해는 좀 편하게 무리하거나 조바심내지 않고 아예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새해를 맞기로 한 것이다.

숙소 옥상에서 해돋이를 찍겠다고 하다가 도로 잠든 남편의 알람에 내가 혼자 깨어, 연회색 하늘에 주홍빛 띠가 물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손톱같이 나온 해가 금동전처럼 빛나는 걸 보고, 숙소에서 새해 첫날이라고 무료로 제공하는 떡국을 먹었다.   


 

우리는 전날 청송에서 1박을 했었다.

주왕산에 있다는 솔기온천에서 그렇게 온천을 하고 싶었다. 근처 펜션같은 곳을 잡아도 되지만, 왠지 온천관광호텔에서 그렇게 자보고 싶었다.온천관광호텔이라는 이름이 주는, 외할머니같은 소탈한 믿음이 있다.

가는 길에 군위라는 작은 읍에 들러 점심을 먹고 도착한 솔기온천은 저녁 8시까지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먼저 온천을 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해가 다 진 거리로 걸어나왔었다. 불빛이 별로 없어서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또렷이 보이고, 조금 걸어가면 트리로 장식된 작은 삼거리가 나오고, 비탈을 걸어올라갔다 내려오면 편의점이 딱 하나 있고 마트가 딱 하나 있는 그런 작은 마을이다. 왠일로 둘째는 잘 따라걸어온다. 두꺼운 잠바 모자를 쓰고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손으로는 온천후 사준 바나나 우유를 하나 물고, 왠지 독서실에서 나온 쿨한 언니 포스를 해서 남편이랑 웃었다.

순대국밥을 먹으려 했다가 달기 약수 백숙을 지금 먹을까 했다가 결국은 먹지도 않을 김밥을 사고 족발을 먹었던 저녁이었지만, 그 기억은 겨울의 세밑에만 느낄 수 있는 그 공기처럼 컴컴하고 차고 또렸했었다.    

남편은 그 다음날 아침에 청승맞게 혼자 주산지에 갔다왔더랜다. 혼자 간 겨울의 주산지는 흐린 하늘에 꽁꽁 얼어 물안개도 찍지 못했단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그  옛날 위장병을 고쳤다는 달기 약수를 마시고, (탄산이 있어 상한 사이다맛이 난다) 달기 약수를 넣어 끓인 백숙을 먹고 주왕산에 들렀다. 주왕산에는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바위가 있으니 바로 기암. 이 바위는 제주도의 산방산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가을이 아니어도, 주왕산에 오고 싶게 만든 바위였다.


        

주왕산은 중국 당나라때 주왕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신라땅까지 들어와 도망쳐 숨어살았주다는 전설이 있어, 숨어살던 굴도 있다. 대충 아이들 상태를 보니 평탄하다고는 하지만 7km에 달하는 폭포 3개를 보는 코스까지도  못갈것 같아 아이들에게 전설을 말해주며 그 주왕굴까지만 가보자고 어르고 달래고 업고 간다. 뒤늦게 주왕산 단풍의 위력을 안 김에 아무래도 둘째가 더 큰 내년, 단풍 든 가을에는 폭포 3개를 보고 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영덕으로 왔고, 해돋이를 본 후 숙소와 가까운 해변에 불가사리들이 가득 있어 별을 불가사리를 신이 나서 잡았다. 별이 별거냐. 이렇게 너희들 마음속에 알알히 들어와 박히면 그게 별인거지 싶은. 봄처럼 따뜻했던 1월의 첫날이지만, 너무 의미를 붙이려 애써 노력하지 않은 새해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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