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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Mar 25. 2017

나는 빠져있었을뿐이예요,

통도사 매화와 진하 해변

모든 것은 남편의 실어증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회사가기 싫어증.
('실어증입니다,일하기싫어증' 이라는 책이 있다)

어느 초봄이라 하기에도 이른 토요일 아침, 원래는 남편이 처음 말한 양산 통도사의 홍매화만 보려고 출발했던 것이

울산 간절곶가고,진하바닷가에서 1박을 하고 왔다.

남편은 늘,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는 것 같지만 속은 아주..무엇보다 말을 안하는... ㅊㅊㄷ(충청도) 남편이,혹시 자고 올지도 모르니 준비하라고는 했지만 정말 그럴줄은 몰랐었다.

 여행 좋아한다한다 하지만 미리 숙박을 예약하지 않고 간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나는 여차저차 집에 올 생각이었다.  회사가기 싫어증에 걸린 남편의 머릿속엔 이미 이대로 집에 가고 싶진 않아 '진하 해돋이 사진' 이라는 키워드 검색이 들어가있었던 것 같긴 하다만.  나중에 알고보니 일출 명소라고.



우리나라 3대 사찰이라는 통도사 입구의 개울가에는 짐짓 언 눈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그 눈이 녹아서 반짝반짝 흐르고 있었다. 그냥 보면 봄이 정말 왔구나, 싶은. 그렇지만 아직 공기는 차가웠다.
통도사 경내에는 홍매화나무가 4개 정도였고 그 주변만 사람들이 사진찍느라고 붐비고 있었다. 나는 매화마을처럼 나무가 아주 많은 줄 알았는데, 절로 "아이고, 이게 뭐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철몰라서, 아님 철이 너무 일찍 들어서 그렇게 핀다고 하는 매화는 아직 코끝이, 두 볼이 시리도록 추워도 필 날을 알아서 그렇게 핀다. 사람들은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만이 제일 신기하더란 걸 알아서, 계절이 그렇게 신통한 걸 알아서 매화를 그렇게 전설처럼 찾아 간다.  


진하는 작은 바다마을이었다.  일출로 유명한 간절곶에 해 다저무는 시간 와서 의아한 가족사진을 찍고  오뎅을 먹고 추위를 달래고 도착한 진하. 무작정 호텔 어플로 검색해서 찾아낸 바다앞 작은 모텔 호텔에 방을 잡고 나와서 회를 먹었다. 남편이 검색한 곳이어서 그런지 별 신비감이 없었는데 일어나보니 바다앞에는 액자처럼 작은 섬이 떠 있었다.  그리고 아침 봄볕에 눈이 멀듯 빛나는, 남해에 가까운 바다. 그 물결을 보고 나는 그제서야 여기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간절곶 쪽의 스타벅스에 가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 나 바다에서 놀고 싶어" 라는 아이들의 말에 그냥 바닷가 바로 앞에 있던 엔제리너스로 가서 2층을 전세냈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브런치 놀이를 한다.


일출을 찍겠다고 새벽에 나갔다온 남편은 까페 창가 소파에 길게 앉아 마치 밤새 MT를 끝내고 온 대학생처럼 깜빡 . 잔다. 큰 통창으로는 남해바다가 반짝이고 그렇게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얼핏 생각해보니 강릉, 속초, 울산, 동해, 통영, 숱한 곳들을 돌이켜봐도 바다와 가장 가까운 까페가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었다. 이 작은 바다마을이, 어릴 때 내가 살던 곳,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기위해 타던 버스의 종점이었었다.  



 그새 까페 주인집 아이들과 친해진 둘째와 바다로 나와 강양항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가본다. 둘째아이는 또 조개와 소라껍질을 줍는데 빠져있다. 매번 그렇지만 나도 덩달아  조개껍질만 보면 열심히 손이 넘칠새라 줍고 있다. 이상한 조개껍질줍기의 마력. 그렇게 소중히 비닐봉지에 담아온 조개들은 집에 오는 순간 까맣게 잊혀지는 미스테리. 너에게 이 조개들은 무엇이냐, 무슨 의미냐. 대체 조개를 줍던 시간들은 무엇이냐 같이 줍던 나는 뭐가 되냐;; 묻고 싶어진다. 묻지 않아도 답을 알 것 같지만. 조개들은 그 순간 나의 행복이었고 나는 거기에 빠져있었을 뿐이예요. 인생에 그런 것이 한둘이랴. 우리도 알수 없는 순간에 우리를 완전히 지배했다가, 홀연히 놓아버리는 것들. 그 빛나는 바다에서 바다는 보지 못하고 고개 숙여 주웠던 조개들을 까맣게 기억도 못하는 일들이,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조개줍는 시간들이.




진하까지 내려오면, 내가 어릴 때 살던 곳이 지척이다. 내가 살던 곳에 가보자는 말에,남편은 흔쾌히 차를 몰아 주었다. 그 곳은 거의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주말이면 따라다녔던, 엄마아빠가 테니스치러 가던 테니스장도, 봄이면 벚꽃잎들을 주워 뿌려대고, 여름이면 매일같이 수영하러 가던 길들도, 다독상을 받을만큼 자주 걸어서 가던 단지 내 도서관도, 이렇게 그리워할 줄 몰랐던, 혹은 너무 이르게 그리운 그 곳이 그대로 다 그대로 있었다. 도서관 건물 앞의 작은 매화나무의 점점이 핀 매화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더 이상 바라면 욕심이다.
그리고 6학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5분만 걸으면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어릴 땐 그렇게 넓었던 그 학교 앞 해변 백사장이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마치 시간의 압축렌즈를 끼고 보았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
엄마는 이렇게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고, 아빠는 산골 마을에서 살았단다, 얘기를 해주며 돌아오는 길에 잠든 아이는, 엄마,나는 그 조개를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아주 나중에, 아주 나중엔 기억할 거예요, 이렇게 엄마처럼. 이라고 이미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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