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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l 14. 2017

쓸데없는 것이 필요하다, 어라운드빌리지,6.3-4

집안 행사를 마치고 난 주말에 우리는 충북 보은에 있는 어라운드빌리지 캠핑장으로 떠났다. 남편으로서는 그 바로 전주말에 첫째와 둘이서만 캠핑-군위 바람이 좋은 저녁-을 다녀왔으니 1주일만에 노숙 캠핑을 또 가는 것이었지만 군말않고 떠난다. 어라운드 빌리지 캠핑장은 작년에 남편이 첫째와만 회사 행사 때문에 다녀오고는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꼭 한번 나도 데려오고 싶다고 했던 곳. 간 곳을 두번 가는 일은 거의 없는데, 모르겠다, 나도 감성캠핑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던 건지.  


어라운드 빌리지 캠핑장은 그 감성잡지 'AROUND' 와 관련된 것이 맞다.  옛날 초등학교 건물을 까페와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았고,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는 캠핑을 할 수 있는 이 캠핑장은 해당 출판사에서 운영하는듯한데 이 관리사무소이자 까페에는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책들과  AROUND 최근호와 과월호 잡지들을  진열해놓아 구매할 수도 있다. 



흰색과 원목이 주된 까페와 게스트하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캠핑장도 실제 AROUND 잡지의 성격대로 빈티지하고 감성적인 분위기이고, 까페와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학교 건물은 개조가 아닌 거의 옛날 모습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복도 마루는 옛날에 초를 먹이던 그 삐걱거리는 나무 마루다. 실제로 막 캠핑장(운동장)에 들어서자마자, 오래오래전 옛날 국민학교 시절에 걸스카웃 활동으로 밤에 학교 운동장에서 종종 텐트를 치고 잤던 기억과 함께,  필연적으로 이 시골학교의 행사에 초대된 느낌이 들었다.

단, 잔디가 가득한 캠핑장은 다른 캠핑장처럼 사이트 배치가 체계적이지는 않고 텐트들이 이겹 삼겹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어서 남편과 같은 전문캠퍼들 입장에서 보면 불만일 수도 있다. 아니 사실 건물이 흰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잔디밭이 있다는 것 외에는 불편한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카페의 존재만으로 여기가 썩 마음에 들어버렸다.


아님 어쩌면 지난 번 캠핑의 악몽같던 밤을 겪고나서, 나는 오히려 캠핑에 많이 관대해졌나보다. 
게다가 저렇게 큰 플라타너스가 있는 캠핑장이라면, 이런 잔디라면, 많은 것을 넘어갈 수 있다. 까페에서 팔던 밍밍한 아이스레몬티도, 평범한 커피도, 손바닥만해서 아이들이 번호표 받아야할 것 같던 방방도. 게다가 잡지를 팔고, 책도 판다. 여차하면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나같은 책중독자 활자중독자에게는 여행자보험과도 같다. 안그래도 진열되있는 낡은 과월호 잡지를  까페 안이 아닌 텐트로 가져가서 읽고 가져다놓아도 되냐고 했더니, 여태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었다는 듯, 능숙한 까페운영자같지는 않고 재미있을 것 같아 하루 도와주러 온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혹시 출판사 관련된 분이신가?)분은 "아마, 될 거예요. 가져다주기만 한다면. 책을 무척 좋아하나봐요-" 라고... 그리고 난 여기서 WEE 잡지를 한 권 샀다.(탕진잼)
낡은 국민초등학교의 음수대였을 개수대에서 설겆이를 하며 그저 생각했다. 천정이 뚫리고 바람이 부는 씽크대라니, 얼마나 멋진가. 상추와 깻잎을 하나하나 씻는 행위가 이렇게 상쾌하다. 
마침 캠핑의자에 앉아 읽는 잡지에서, 먼 자연 풍경을 바라볼때 우리 뇌에서는 알파파라는 것이 발생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근처에 물가가 없어서 이 더운 계절에 아이들이 뭐하고 노나, 했는데 그건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아이도 어른도 알아서 잘 놀았다. 열두살 먹은 큰 오빠-_-도 코딱지만한 방방장에 갔다가, 주머니칼을 하나하나 빼서 나뭇가지를 깎아보거나, 드물게 대놓고 허락되는 감자칩을 먹으며 책을 읽거나 동생을 놀리기도 하면서 심심함을 즐긴다. 


우리집에서 제일 오지랖 사회성 높은 둘째는 말해 무엇하랴. 어느새  (한국 특유의 "너 몇살이야?"질문을 통한 서열구분과 또래의식 재생산에 동참해)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서 왠종일 나가 붙어 논다. 가끔은 친구의 "야, 따라와-!"하는 명령에도 복종하면서.-_- 밤에도 텐트로 불러서 같이 마시멜로를 구워먹고, 다음 날 아침에도 만나서 방방장에서 놀고, 헤어지면서도 또 다시 만나자고 약속약속하길래  뭐든 애착이 많은 편인 둘째가 돌아와서도 계속 친구를 찾으면 연락이라도 해줘야하나, 연락처라도 알아봐야하나 해서 아이스께끼 하나 사주면서 어디 사는지, 어느 학교 다니는지도 물어보고,남편이랑도 그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찌어찌 또 남편이 친구 아빠의 핸드폰 번호를 땄다 물어봤댄다.그런데 돌아와서는 그 친구 얘기 1도 꺼내지도 않더라는.-_- 엄마아빠만 감정이입해서 전전긍긍한거냐.. 그러나 가끔 이렇게 쓸데없는 일들도 필요하다. 가끔은 꼭 필요없는 것들이 필요하고  쓸데없는 일들이 쓸데가 있다. 쓸데없는 번호를 따고, 별 쓸데가 없는 잡지를 사고, 별맛도 없는 레몬티를 사 마시는 행위들, 딱히 쓸데없이 감성적인 것들이 필요하다. 
남편이 늘 우리집엔 여자가 한명(둘째)밖에 없다고 하는 말마따나 먹고 사는데 바빠(?) 감성 찾기 힘든 건어물아줌마지만 그런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좋은 말로 하면 낭만이고 나쁜 말로 하면 낭비인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이 쓸데없이 감성적인 캠핑장에서 깨달았다. (쓸데없는 걸 이미 너무 많이 하고있다는게 함정)


날씨가 유난히 좋아 키큰 플라타너스 나무잎이 그렇게 반짝이던 캠핑장에서 돌아온 지금 그곳에서 공들여 설겆이를 하고 이를 닦고 침낭을 펴고 누워 잠을 청했던 일들이 까마득한 축제처럼 느껴진다. 집에서도 이럴 수 있다면 좀 좋겠냐만 집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면, 축제는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이고 언젠가는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걸, 일상이 그렇게 찬란했던 순간에 깨닫는다. 그래서 일상을 여행처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그건 정말 공허한 구호였다는 걸.
공허한 구호로 나를 위로하기보다는 그저 매일 주먹밥을 만들어 아이들을 먹이고 잠든 아이의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는 가끔 꼭 필요는 없는 쓸데없는 일들을 하며 찬란한 계절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일이야말로 생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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