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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2. 2019

8.내가 캠핑을 가는 이유

캠핑: 문명인의, 피로 생산을 위한 발명 

이제껏 단 한번도, 숙박비나 항공료의 취소 수수료를 물고 취소한 적이 없었다. 예약하는 동안에는 세상 신중했고, 왠만하면 꼭 갔었다. 그러나 한달전 정말 오랫만에, 올해 첫 캠핑을 계획했던 우리는,그동안 알수없는 봄의 변덕을 받아주느라 벌써부터 지친 기분이 든 이후에, 그 기온의 널뛰기를 이미 겪은 후에, 그 날 기온이 내려가고 강풍이 불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듣고는 한여름같은 미풍에 한껏 달아올랐을 때 예약했던 캠핑을 포기했었다.

과연 그 날은 텐트조차 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내내 세게 불었고, 우리는 계속 창밖을 보며 안가길 잘했다고 합리화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이젠 나도 숙박비 취소 수수료를 물게 되었구나, 조금 착잡했다. 뭐랄까, 이젠 나도 타협하는구나. 여행마저도.

그리고 한달 후, 다시 그 곳으로 캠핑을 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날씨는 변덕을 부려 우중캠핑이 되었지만. 


내가 캠핑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은 비밀스런, 짐을 싸고 푸는 능력시험에 대비 하기위해서? 최소한의 조리도구와 재료로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아침을 생산하는 주부능력 레벨업을 위해서? 잠을 잘못자고도 최대한 짜증내지 않고 싸우지 않는 능력 배양을 위해서?(이번에는 실패했다.) 


이번에 우리가 간 캠핑장은 청도에 있는 '청도자연속캠핑장'이다. 바닥은 파쇄석으로 되어 있어서 비가 왔지만 땅이 질어지지 않아서 괜찮았고, 원래 과수원이었던 곳이어서 키낮은 자두나무들이 가득해서 어디에 자리를 잡아도 나무아래 캠핑을 즐길 수 있다. 단 비가 오니 나무 송진이 같이 떨어지는 단점..

여기서 나는 책태기(책 권태기)를 극복해보려는 시도로, 여러 소설가와 시인들이 여행에 관해 짧게 쓴 단편들을 조금 읽을 수 있었다.

비가 와서 오들오들 떨면서, 사 간 김밥을 먹고 커피를 끓여마신다. 야심차게 잡은 계곡 옆 캠핑장이었으나, 비오고 추워서 계곡엔 못들어가게 했더니 첫째는 심심해 죽는다. 둘째는 한켠의 방방장에서 아들손자며느리가 아니라 친구오빠언니들이랑 하루종일 방방장에서 살았는데, 계속 같이 다닌 동갑 친구 이름은 아는지 물어보니 모른단다. 그런 관계, 쿨하다. 나는 이름부터 알아야 안도감이 드는데. 

모닥불에 손쬐면서 남편이 마트에서 마지막에 꽂듯 장바구니에 넣은 마시멜로우를 구워먹고, 게임을 하고(해주고), 샤워실 수온조절이 잘 안되는 수도로 머리감다가 머리를 데일뻔도 하고, 유난히 땅바닥같은 느낌의 텐트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이 지방 사람들의 캠핑철학일까, 역시나 새벽까지 먹고 마시고 웃고 유난히 큰 목소리들의 그 한가운데, 후두둑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누워있었다.

몇번의 빗방울 소리와 함께 아침이 왔다. 어제 오후부터 아침까지, 참으로 비는 오다 말다 꾸준히, 간헐적으로 왔다. 

다행히 오전에 햇살이 비쳐서 아이들이 계곡에서 놀다가 둘째는 발가락을 다치고 첫째는 미끄러져 빠지며 잠깐 놀 수 있었는데, 첫째는 누가 잡았다가 버렸는지 물가에 너부러져있던 큰 물고기들을어부지리로 잡고선 노심초사 집으로 가져왔다. 집에 다슬기 어항에 합사하자 몇시간만에 죽어버렸지만.

그리고 우리는 아침을 먹다가 냉전을 하고, 의자를 난로에 태워먹고, 남편은 디스크가 재발했는지 목이 아프고, 약 2시간동안 텐트를 걷고 정리를 하고, 고픈 배를 움켜쥐고 국수집을 찾다가 결국 청도 읍내에 있는 중국집(어머니(=나)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와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쓰러졌다.

 마침 못다읽은 하루키 책 뒷표지에 이렇게 써 있다.'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이  말을 가훈처럼 삼아보면 어떨까.

고작 하룻밤을 잤음에도, 뭘까 이 느낌은. 그  경사가 비스듬한 그 땅바닥위에 누워있었던 그 느낌은 생생하다.하늘과 얇디 얇은 텐트 한장만을 사이에 두고 자는 그 기분은, 누가 뭐래도 생생한 현장감이다.

두들겨 맞은 듯한 몸을 일으켜서 여행가방에 들어있던 빨래를 꺼내 세탁기에 넣고, 가지에 토마토소스를 바르고, 양파와 모짜렐라 치즈를 뿌려서 오븐에 넣었다가 꺼냈다.  피로가 반가운 그 모순적인 기분으로.

그러니까,내가 캠핑을 가는 이유는, 원인을 정확히 아는 피곤을 위해, 내가 만들어낸 피곤을 위해. 그래서

떠나기전부터 이미 직감되는, 우리집 침대와 이불이 얼마나 포근한 것인지 알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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