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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2. 2019

10. 가성비와 모란

짐작없이 계산없이 살아볼까

늘 가성비를 생각했다. 짐짓 순진한 눈동자를 하고, 속으로는 내일의 결과부터,정확히는 득실부터 따졌다. 그게 똑똑한 건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산수였다.

아이는 아무런 계산과 짐작없이 나에게 갑작스레 "사랑해요"고 말한다. 아무런 대가없이 내 목을 끌어안고 토실한 몸을 기댄다.

아무런 짐작과 회색빛 전망과 실패 가능성의 가늠없이, 학교 마당에서 주운 모란씨앗을, 빈 화분을 달라고 졸라대어  흙에 심는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모란은 3년후에나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아무런 계산없이 오늘 심은 모란씨는 이미 피어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건 산수가 아니라, 수학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함수보다 더 고차원적인.

"씨리얼에 만 우유가 맛있어졌어." (얘는 원래 늘 우유를 따로 먹었었다)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도,그 순진한 우유를 마실 날도 머지않았을텐데, 난 왜 그렇게 다그쳐댔는지.

늦잠자는 날에는, 너도 나도 일어나기 힘든 날에는 하루쯤 학교를 빠지고 아침에 베란다 통창으로 보이는 아이들처럼 모자쓰고 원색티셔츠를 입고  소풍같은 산책을 해도 좋지 않을까. 몇일쯤은.

하여,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직 내 봄이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도 싶은데.

오늘 빌려 읽은 '퐅랜,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리' 책에는 포틀랜드는 가을부터 우기가 시작되서 초여름까지 계속된단다.  지구상의 어떤 곳은 봄을 거의 잃어버리는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우리는, '가진 자'이다. 봄을 가진 자.(가진 자가 더하다더니..) 그렇다면,나도 투정은 덜 부려보고 날씨 그대로를 즐겨야하겠다. 이미 봄을 가진 것처럼 그렇게, 모란이 피든 말든. 씨앗만 심어놓고 다 한 것처럼. 왠 가을에 봄타령인가싶지만,어쨌든 너무 좋은 가을날, 가성비는 너무 따지지말고 좀 손해보더라도, 실패하더라도 넘어가면서 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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