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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13. 2019

15. 이번엔 변산반도에서

해는 마음 속에 있는 거니까,

우리 가족은 어느 해부터인가 매해 해돋이를 보러 여행을 해왔다. 맨 처음은 강원도 고성 캠핑장에서 추위속에 고생을 하고(겨울에는 바닷가에서 캠핑하지 말자) 두번째는 강릉에서, 세번째는 영덕의 해변에서 등등.

여느 날과 다름없이 뜨는 해지만 해돋이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서, 적어도 한 해의 마지막날 그 해를 반추해 볼 때는 약간의 도움을 준다. 작년엔 여행앱을 보다가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바닷가 호텔이라던가? 그런 컨셉으로 모아놓은 광고를 클릭했다가 거제도의 한 호텔의 선상일출패키지라는 재미있어 보이는 걸 예약해서는 호텔 바로 앞에 있는 선착장에서 배타고 일출도 보고 온천도 했었다.  


이제 3년차를 접어드는 대구 생활. 적응했을 때도 됐건만 나는 조금 지쳤나보다.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이 완전히 변했을 때, 적절한 적응의 시간은 짐작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마음처럼 해돋이 여행도 조금은 타성에 젖었다고 생각이 들 때였나보다. "일출.. 이번엔 어디서 볼까?" 무심코 던진 질문에 큰 애가 무심코 한 한마디, "서해에서는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다면서요?" .

서해에서는 통상 일출을 보기가 힘들지만, 지형상 동쪽으로 갈고리처럼 꼬부라져 동쪽을 향해있는 지형에서는 일출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호오. 재미있게 들리는데.


서해에는 그런 지형이 몇 군데 있는데, 우리가 이번에 선택한 곳은 변산반도였다. 채석강에서 일몰을 보고, 숙소가 있는 모항에서 일출을 본다는 계획이었다. 올라가는 길에 군산에 들르고, 시댁이 있는 대전에 들러서 집에 오는 대장정(?)이었다.

변산반도까지는 집에서 3시간여. 중간에 마이산이 보이는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채석강에 도착했다. 채석강은 서해답게 물때라는 게 있어서 하루에 두번 밀물,썰물이 된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그 유명한 채석강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서해란, 그렇게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곳인 것이다. 서해엔 조석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12월의 마지막날답게 찬 바람이 서해의 파도와 함께 밀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서해에는 그전에 눈이 왔는지 가득히 쌓여있었다. 바닷가 주변에는 백합 요리를 파는 횟집이 즐비했고, 세상의 끝이라도 되는 양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해안으로 걸어나가본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바쁘게 흩어지는 구름 사이로 주홍빛 물이 드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몰려든 눈구름 속으로 해는 예상보다 더 빨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일몰 예정 시각보다 10분정도 빠른 시간에 해가 사라져, 시간에 딱 맞춰 해안호텔에서 나온 사람들은 허탈했을 것이다. 일몰도 그렇더니 다음날 일출도, 잔뜩 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잠은 잠대로 설치고, 일출도 못보고, 게다가 군산으로 올라가는 길 새만금 방조제를 달릴 무렵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근래 보지 못한 푸짐한 눈송이었다. 새해 첫날에 눈이 펑펑 오면 잘산다는 그런 말은 없나요? (없다.)

군산에서는 바지락무침과 바지락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앞이 보이지도 않게 눈이 오는 군산거리를 걷다가, 나는 관심도 없는 비행기니 군함 전시를 남편따라 보고, 지척인 이성당엔 들리지 못하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해가 갈 수록, 여행이 반복될수록, 생각한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을 께달아가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의 기대도 나이가 들고 성숙해간다. 합리화의 잔머리도 늘어간다. 새해에 큰 눈을 보면 그 해 잘 살 거라고, 나는 이미 갖다붙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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