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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time Reviewer Jun 22. 2023

갑각류 알러지 리뷰

간장게장

이 녀석은 갑자기 찾아왔다.

일평생 갑각류를 잘처먹어왔는데, 25살의 어느날 한 순간 갑자기.


처음은 간장새우 초밥이었다. 모둠 초밥 세트를 이루고 있는 간장새우 초밥 고작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입술이 가려웠다. 이질감을 느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입술이 약간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느낌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입술이 퉁퉁 부어버렸다. 부어오른 부분은 참을 수 없이 간지러웠으며, 무언가에 닿으면 아프기까지 했다. 한시간 정도 지나니 붓기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간지러움과 통증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지난 25년동안 수많은 새우의 목을 땄던 내게 내리는 갑각신의 천벌이었을까. ‘단순히 새우 알러지일 뿐’이라고, ‘새우를 안먹으면 될 것’이라고 가벼이 여겼으나, 그것은 이어지는 천벌의 시작일 뿐이었다.


간장새우

안타깝게도 새우로 시작했던 알러지 반응은 대하, 꽃게, 단새우, 딱새우를 거쳐 모든 갑각류로 번져갔다. 이제는 대게나 킹크랩, 랍스타, 독도 새우와 같은 ‘값비싸지만 대존맛인’ 음식들에도 입술이 반응하기에 이르렀다. 갑각류의 껍질만 입에 닿지 않으면 괜찮았던 초기와는 달리, 이제는 간장 게장과 간장 새우의 간장 국물, 양념 게장의 양념만 입에 닿아도 반응이 오는 지경이다.


그나마 갑각류를 익혀 먹으면 괜찮지만 이것이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그 맛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나는 간장게장의 녹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알아버렸는데, 게딱지에 남아있는 내장에 밥을 넣고 참기름 반큰술 두른후 김가루 조금 뿌려 먹는 밥도둑의 참맛을 알아버렸는데, 랍스터회의 쫀득함과 대게다리회의 감칠맛을 알아버렸는데.


아는데, 다 아는데, 먹을 수 없다니 이건 천벌이 분명했다.


이미 나는 날것의 갑각류가 주는 황홀함을 알아버렸기에 내 마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게장이 먹고 싶은 날이면 그저 저 아래로 내 욕망을 누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차라리 먹어보지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그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25살의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내려진 이 벌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갑각류 알러지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평소 갑각류를 많이 먹을 것을 추천한다. 먹을 수 있는 찰나의 기회라도 있다면 최대한 많이 처먹을 것을 추천한다. 암꽃게 철이면 간장게장을 최대한 많이 처먹고, 수꽃게 철이면 양념게장을 최대한 많이 처먹을 것이며, 대하철이면 생대하를 최대한 많이 처먹을 것을 당부하고 싶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리듯, 어느 한 순간 후천적으로 생기는 이 알러지로 인해 그것들을 못 먹게 되는 몸이 되어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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