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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리뷰

갓생은 번아웃의 다른 이름이 아닐지

by Lifetime Reviewer


아침 6시 반이면 알람 없이 번쩍 일어난다.

일어나서 화목에는 아침 수영을, 월수금에는 헬스를 간다.

운동 후 바로 출근해서 6시쯤 퇴근한다.

퇴근 후 월수금에는 한 시간씩 골프 레슨을, 화목에는 프사오를 간다. 운동하고도 더 할 일이 있으면 카페에 가서 일을 하다, 12시쯤 잠에 든다. 그리고 다시 6시 반에 눈을 뜬다.


올해에 논문을 4편이나 썼다. 또 4편을 쓰고 있다.

랩장이 되었고, 연구실 예산 업무를 맡았다.

과제 하나의 PM을 맡아 이번 연차를 마무리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나 하고 있고, 종종 AI 관련 강연이나 외주 업무도 받아서 한다. 인공지능 관련 인스타그램 카드뉴스 만드는 일도 꾸준히 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삶을 보고 갓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지금 내 삶은 갓생이나 미라클 모닝이 아니다.




내 삶은 지금 번아웃 상태다. 심지어 3개월 차다.

9월쯤 번아웃이 씨게 온 채로 꾸역꾸역 사는 중이다.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꽤 되었다.


‘갓생’은 어쩌면 ‘번아웃’의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하루를 보낼 의욕이 없는 채로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는 저주에 걸렸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를 어떻게든 소모하고자 일과 운동을 과하게 늘렸다. 혼자서 생각할만한 틈이라도 생긴다면 수렁에 빠지는 것 같아, 잠들기 직전까지 나의 시간과 체력을 소모했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일과 운동에 매달리는 순간에는 일상이 활기를 띄는 듯했다. 그러나 그 활기는 가짜, 결국에는 피로에 지쳐 허무감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나 스스로를 피로하게 만들지 않았을 때 오는 허무감이 더 컸기에 바쁘게 무언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쉬는 시간이라도 생긴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한 사랑들에 대한 슬픔, 대상이 없는 원망과 울분들이 찾아왔다.


그렇게 내게 찾아온 번아웃은 한나절을 온전히 쉬는 것도 꺼리게 만들었다. 혼자 남겨진 틈을 메우기 위해 쉼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은 제대로 쉬는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번아웃 3개월 차,


이렇게 꾸역꾸역 살다 보니 이제 이 상태에 좀 적응을 한 것 같기도 하다 like 무중력 상태에 적응한 우주비행사.

기계적으로 살다 보니 얻게 된 잔잔바리 성취들이 요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논문을 열심히 쓰다 보니 졸업에도 훨씬 가까워졌고,

정수리 처박고 고개만 살짝씩 돌리며 호흡하는 빠끈한 자유형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7번 아이언 140m, 드라이버 230m의 안정적인 비거리 시스템도 구축했으며,

원래는 기피했던 유산소를 꾸준히 하다 보니 인생 전고점 피지컬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번아웃을 탈출했는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마음의 여유는 없고, 여전히 기계적으로 산다.




우리 엄마 말마따라 서른씩이나 되었지만

세상살이는 여전히 어렵고 때때로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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