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날이다.
예상치 못한 배신은 나를 참 슬프게 한다.
딸이 재수하는 동안 아들이랑 참 친하게 지냈다.
같이 연극 보고 미술관에 다니며 대화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에 배우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 예매한 연극을 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아들이 나타나지 않아서라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들은 불과 연극 보기 두 시간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문자에 답도 없고 카톡은 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약속을 어긴 적이 없는 아이라서 무슨 사고가 생긴 줄 알고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연극이 시작한 후에 112에 신고했다.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살면서 112에 신고해 본 적도 경찰서에 가본 일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신고라는 걸 해보았다.
경찰관님이 위치 조회 후 경찰관을 보내서 수색하고 연락해 준다고 했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아이는 집 근처 공원에 있었다. ㅜㅜ
아이를 찾은 경찰관이 지구대에서 아이와 함께 기다려주어 남편과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창 밖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남편과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가 고 2가 되는 나이까지 큰 비밀 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아무 연락 없이 연극 약속을 어기고 연락도 받지 않은 아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은 아이 심리를 고려해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아이는 “모른다”는 말만 연거 푸하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일이 있어서 남편은 우리를 집 앞에 내려주고 다시 나갔고 나는 아이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차에서 내리 자마 펑펑 울며 “미안하다”라고 했다.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엄마가 “미안하다”라고 했다. 아이의 마음을 몰라준 거 같아서 속이 쓰렸다. 혼란스럽고 복잡한 감정 상태로 아이를 안아주고 토닥여주었다.
어른인 나도 나이만 먹었을 뿐인데 성숙한 어른 역할을 하려니 참 힘들다. 바람이 부는 공원에서 아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는 엄마니까 아이의 기댈 나무가 되어주어야겠기에 서운한 마음은 우선 접어두었다.
그 뒤로 이틀 동안 아이는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고 하루종일 잤다.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고 하루 꼬박 자더니 둘째 날엔 하루 한 끼를 먹었다.
아이가 연락 두절 상태로 있던 3시간 동안 나는 정말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려 온 신경을 아이를 찾는 일에 집중했다. 부디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며 마치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적막감을 느꼈다.
막상 아이를 찾고 나니 안도와 서운함이 겹쳐 기운이 쭉 빠졌다. 첫째의 재수가 끝나고 나니 그동안 미뤄뒀던 둘째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그동안 누나 뒷바라지하느라 사춘기를 미뤄두었던 아이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
일주일 정도 아이에게 별 말 하지 않고 쉬게 두었다. 아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다스리며 지냈다. 아이는 스스로 마음 문을 열고 다가왔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럴 때가 있었나 보다고 말하며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아이에게 엄마가 많이 서운했지만 용서한다고 말하며 안아주었다. 아이와 토닥토닥 서로를 위로하며 고등학생 시절이 참 쉽지 않은 시절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제 둘째 사춘기를 접하며 그동안 첫째를 챙기느라 많이 신경 쓰지 못한 둘째의 마음에 공감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알아서 자란다고 하지만 때론 가슴 졸이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시베리아 한가운데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늘 든든하게 내 옆에 계셨던 엄마 생각에 서러움이 두 배가 된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푸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느끼게 된다. 아이의 사춘기를 접하며 나의 부모님의 고생에 감사하게 된다.
이래서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키워보라고 하나보다.
아픈 만큼 성숙하는 건가. ㅜㅜ.
#마음일기 #사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