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다시 찾은 3차원의 세계
지금의 우리가 과연 3차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아시다시피 3차원이라 하면 수직과 수평이 존재하는 입체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잠을 자지 않고 깨어있는 시간 동안 우리 인간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대부분 '수평'이다. 그러니까 바닥에서 대략 2m 정도의 높이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다. 한번 잘 생각해보시길. 하루 중에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보는지.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해서 방향을 뜻하는 '위(Up)'라는 단어도 추상적인 의미로 바뀐 지 오래 됐다. '위'는 이제 다들 자신보다 높은 자리, 즉 권력자나 성공 등을 의미하게 됐다. 일상에서 하늘을 떠올리며 '위'라는 단어를 사용할 일은 잘 없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점점 평면의 삶에서 벗어날 일이 거의 없는 2차원적인 존재가 되어 가고 있지 않을까. 저 위에서 누군가 우리를 내려다볼 때 지금 우리의 모습이란 2차원의 평면이 전부라고 믿고 열심히 바닥만을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우리가 바라보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하지만 이건 어른이 된 후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릴 땐 그렇지 않았다는 뜻. 그래도 그 때는 머리 위에 존재하는 하늘과 우주는 늘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그 곳엔 해와 달, 별과 은하수가 있었다. 또 가끔은 우주 저편에 E.T(외계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곤 했었다. 참, 꿈도 있었다. 그 땐 하늘을 동경해 천문학자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던 친구들도 적잖았다. 하지만 천문학자나 우주비행사의 꿈을 이루기란 극히 어려운 법. 결국 그런 친구들도 이젠 하늘이나 우주는 까맣게 잊은 채, 굳이 고개를 높이 들지 않아도 눈앞에 훤히 보이는 좋은 집이나 좋은 차에 목을 매달며 살고 있지 않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 그건 어쩌면 3차원의 세계가 2차원으로 바뀌는 과정이 아닐는지. 그리고 톰 하퍼 감독의 <에어로너츠>는 이런 시선으로 접근하면 좀 더 의미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19세기의 영국 런던. 주인공 제임스(에디 레드메인)는 날씨도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진취적인 기상학자였다. 당시만 해도 날씨 예측이란 불가능의 영역이라 믿었던 때였지만 제임스는 날씨 예측을 통해 홍수나 폭설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싶어 했다. 때문에 그는 런던 최고의 열기구 조종사인 에밀리아(펠리시티 존스)를 섭외해 그녀의 열기구인 '매머드'를 타고 높이 올라 하늘의 구조를 살피고자 했던 것. 반면 에밀리아는 열기구 고도 세계 기록을 깨고 싶어 했고 제임스의 설득 끝에 둘은 함께 하늘 높이 오르게 된다.
아직 비행기가 발명되기도 전이었기에 현재의 시점에서 둘을 바라보자면 제임스는 천문학자, 에밀리아는 우주비행사쯤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둘은 다 큰 어른이었지만 하늘에 대한 동경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에어로너츠>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적잖다. 아니 비행기나 우주선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열기구였기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더 강렬해진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그들의 도전정신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열기구 안에서 바라본 세계는 지상과 달리 한층 입체적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잊고 지낸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랬다. 그건 바로 언제부턴가 올려다보지 않기 시작했던 '나의 하늘과 우주'였다. 그러니까 제임스와 아멜리아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도전정신을 갖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식의 거창한 이야기 말고, 그냥 우리들 '위'에는 직장 상사나 권력자, 혹은 성공이 아니라 광활한 하늘과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는 뜻이다. 그날 난 그렇게 잠시나마 오래 전 잃어버렸던 3차원의 세계를 다시 찾았었다. 영화 속에서 아멜리아도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에 이렇게 조언한다. "위를 쳐다보라. 하늘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흔히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바로 천문학자와 우주비행사. 전자가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면 후자는 실행에 옮기는 사람을 의미한다. 하지만 천문학자 같은 제임스와 우주비행사 같은 아멜리아가 함께 하늘 높이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난 이 분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그냥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하는 거 같다. 바쁘게 살면서도 가끔은 하늘을 올려보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해서 오늘 하루는 잠시 시간을 내 오랜만에 하늘을 한번 지긋이 올려다보시길.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다. 그럼 아마 분명히 만나게 될 거다. 3차원의 전혀 다른 나를. 2020년 6월10일. 러닝타임 10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