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착각에서 구하소서
현실에선 악(惡)이라는 존재가 아예 사라지면 좋겠지만 영화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영화는 악을 먹고 산다. 물론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도 있지만 영화란 게 어디 멜로나 코미디뿐이던가. 영화판에서는 히어로 무비가 여전히 대세고 영웅이 존재하려면 악당은 필수다. 원래 어둠의 존재로 인해 빛은 더욱 밝아 보이기 마련. 영화 한 편에 악당이 없을 순 있어도 영화라는 종합예술에서 악이 사라지는 날은 결코 오질 않을 것이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왜? 그럼 재미가 없으니까.
한편 재미는 보통 '자극'에 비례한다. 무슨 말이냐면 매운 음식이 중독을 일으키듯 자극적일수록 더 재미가 있다는 것. 이 말인 즉 악당이 잔인할수록 쾌감은 더욱 커진다는 이야기다. 뭐 어차피 영화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지점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잖은가. 현실에선 악은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면서도 영화에서는 더욱 자극적인 악당을 원한다. 재미를 위해.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허나 아무리 영화라지만 모방범죄라도 일어나면 어쩌려고.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 악당 역할의 레이(이정재) 때문이었다. 영화를 이끄는 핵심 동력인 그는 특유의 극악무도함으로 사실상 영화의 재미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레이는 이 영화 최고의 '자극제'인 셈. 하지만 도를 넘어선 극악무도함으로 인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살짝 든다. 그러니까 재미를 위해 지나치게 밀어붙였다는 것. 이 영화가 재밌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호평 속에서도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여기서 비롯된다.
하지만 감독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다. 홍원찬 감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 막 데뷔한 감독이지만 그는 과거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와 <황해>를 비롯해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게 생각하는 스릴러 작품인 <나는 살인범이다>의 각색을 맡았었다. 그러니까 센스가 있다는 말씀. 실제로 그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레이의 입을 통해 이런 대사로 지나치게 밀어붙인 이유를 해명한다.
레이는 원래 일본 야쿠자의 동생인데 과거 국정원 암살요원이었다가 조직해체 후 해외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는 인남(황정민)에 의해 형이 살해당하게 된다. 평소 '인간백정'이라 불릴 정도로 광기어린 레이는 이에 분노하고 복수를 위해 인남을 추적하게 된다. 그 무렵 인남은 한국에서 추방당하기 전부터 사랑했던 여자인 영주(최희서)에게 자신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태국 방콕에서 유괴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살인청부업자 인남과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는 방콕에서 격돌하게 되는데 딸 유민(박소이)과 겨우 조우한 뒤 레이에게 붙잡힌 인남은 그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이럴 필요까진 없잖아?" 솔직히 개연성을 집어 던진 감독에게 내가 던지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러자 레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그 질문이 듣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그리고 마지막에 둘 다 끝장을 본 뒤 레이는 인남에게 다시 이렇게 말한다. "애초에 이렇게 될 줄 알았잖아?" 이 대사는 이렇게 들리더라. "애초에 관객 너희들이 이런 걸 원했잖아?"
하긴. 그 순간 내 모습이 좀 웃기긴 하더라. 악을 즐기고 있으니. 훗. 사실 현실에서도 악이란 건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게 아닐까? 종식선언은 있어도 존재 자체를 아예 없애기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태양이 존재하는 한, 그러니까 살아있는 한 그림자가 생기는 건 누구든 피할 수가 없고, 빛의 존재로 인해 어둠도 더욱 부각되는 법이다. 해서 빛과 어둠은 대립이 아니라 어쩌면 공존의 관계일지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아니다. 내겐 왠지 '다만 (악이 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구하소서'같아 보였다. 2020년 8월5일 개봉. 러닝타임 10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