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의 ‘假’를 잊지 않기 위해

by 천인우

PM으로서의 일뿐 아니라, 모든 일은 결국 가설 수립, 실행, 회고, 그리고 다시 가설 수립의 사이클을 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행을 잘한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디어가 많다고 해서 유능하다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핵심은 회고와 다음 가설로의 연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첫 번째 어려움은 첫 가설에 너무 얽매이는 경우다. 이는 심리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조직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내가 세운 가설에 너무 얽매이고 애착을 가지게 되면, 그것을 맞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 실행을 끼워 맞추게 될 위험이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방향 감각을 잃는다. 조직 차원에서도 비슷하다.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조직 구조, 팀 문화, 업무 시퀀스 등으로 최적화 해놓으면, 그 조직은 어느새 Agility를 잃는다. 몸이 무거워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워진다.


두 번째 어려움은 회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행’이 일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실행을 하면 하루하루가 바쁘고, 뭔가를 해냈다는 도파민이 터지기 때문에 그 감각이 인간에게 주는 위안이 크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한 상태, 바로 그게 실행 구간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나서서 중간 점검과 회고를 해야 한다. 문제는 그 타이밍을 잡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 덜 바쁠 때 회고를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덜 바쁜 시기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사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다. 추석 연휴 동안 오랜만에 길게 쉬면서 내 커리어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았다. 그때 비로소 내가 큰 그림을 놓치고 실행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가설(假說)’의 ‘가(假)’는 거짓 가(假)다. 이 한자를 쓰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가설은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잊는 순간 우리는 밤을 새우며 일만 하고 “내가 일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때부터는 성장이 멈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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