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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민 Jul 10. 2024

"로피탈의 정리를 증명하고 사용하면 괜찮나요?"

수학과 수학교육을 혼동하는 사람들, 그리고 본질 파악의 중요성

페이스북 수학 그룹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고등학교 수학 서술형에서 로피탈의 정리를 증명하고 사용하면 감점 안 당하나요?"


로피탈의 정리는 고등학교 수학 과정 중 함수의 극한 문제를 풀 때 치트키처럼 쓰이는 정리다.

분수 형태로 이루어진 식의 극한값을 구할 때 분자와 분모를 미분하더라도 극한값이 동일하다는 정리인데, 보통 미분을 하면 수식이 간단해지다 보니 극한을 구할 때 꽤나 유용한 법칙이다.


하지만 문제는, 로피탈의 정리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지 않고 대학교에 와서야 배우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교육계는 시험 문제를 풀 때 굉장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이 스킬을 학생들에게 거의 필수적으로 가르치기에 이를 모르는 학생들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다.


객관식 문제에서는 이 정리를 썼다 하더라도 알 방법이 없지만, 풀이과정 또한 채점에 포함되는 서술형의 특성상, 로피탈의 정리를 활용하여 문제를 푼다면 문제가 될 수 있고, 답이 맞았다고 하더라도 감점의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댓글을 보니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은 경우 의견이 크게 갈렸다.


로피탈의 정리를 풀이과정에 증명하고 사용한다면?


사실 의견이 크게 갈렸다기보다는, 대체로 "그러면 감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반응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를 보고 적잖이 충격받았던 것 같다.


감점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측의 주장을 변호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수업 시간에 수많은 수학적인 정리들을 가르쳐주고 배우는 일은 "시험에서 이 정리들은 증명 없이 사용하여도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의 과정이다.

로피탈의 정리는 수업 시간에 배우지 않았다.

그러므로 로피탈의 정리는 증명을 하고 사용하여야 한다.

증명하고 사용했다면, 서술형 답안지에 쓰인 전체 풀이에 수학적, 논리적 오류는 없다. 즉 배운 내용만 활용한 풀이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감점해서는 안된다.


수학 그룹은 수학 교육자들이 모인 그룹이 아니라 수학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다. 그러다 보니 수학 시험을 단순히 "수학적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하여 답을 내리는 과정"이라고 보고 "그것이 논리적으로 옳다면 정답"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 시험의 목적은 그렇지 않다. 다음은 내가 남긴 답변의 일부다.




시험을 왜 보냐라는 질문으로 돌아갔을 때 시험의 목적은 두 가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그 학생이 수업에 성실히 임하고 교육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였는가?

2. 그 학생의 수학적인 능력이 요구되는 수준 이상인가?


1의 경우 로피탈을 쓸 경우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겠죠. 분명히 ‘로피탈을 쓰지 않고 해당 극한의 극한값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의 사고 과정과 논리력’은 앞으로 수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쓸모없는 능력이 아니며, 이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문제의 목적입니다. 빙 돌아가는 길 위에 있는 장애물들을 잘 넘어갈 수 있느냐 (장애물 하나하나를 넘어서는 능력을 가르쳐줬는데 배운 대로 잘 넘어가느냐)를 평가하고자 하는데, 장애물이 없는 지름길로 가버리면 장애물을 넘는 능력을 평가할 수 없겠죠, 그 장애물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지름길의 부재'와 함께 마주할 수도 있는 장애물일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2는 충족되는가? 로피탈을 증명해서 썼다고 해당 학생의 수학적 능력이 요구되는 수준 이상임이 증명된 것일까요? 혹시 질문자 분께서는 '로피탈 증명하고 쓴다'라고 표현하셨지만 '로피탈 증명을 외워서 적어 놓은 후 쓴다'라고 말씀하신 건 아니신지요? 그것 만으로는 로피탈을 증명함으로 인해 수학적인 능력이 요구 수준을 넘어섰음을 증명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간혹 정말 로피탈의 'ㄹ' 자도 안 들어본 학생이 스스로 로피탈 비스무리한 원리를 발견해 내서 증명하고 사용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그런 케이스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고 보이며, 증명을 외워온 학생과 구분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결국 로피탈을 쓰는 것은 1로 보나 2로 보나 ‘출제자가 수험자로부터 검증하고자 하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지는, 로피탈을 쓰는 것은 출제자가 평가하고자 하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여 해당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증명하고 쓰더라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고등학교 수준의 상위 내용을 고등학교 수준의 지식을 활용해 증명까지 해서 활용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반박의 여지에 대해서도 나는 "로피탈을 증명했다고 보는 것이 맞나? 증명을 외워서 쭉 적어 놓고 활용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라는 의견이다. 사교육을 통해 남들에게 제한된 정보를 얻고, 그걸 외워서 적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해서 남들보다 수학 실력이 높아졌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당 시험에서 로피탈을 증명해서 쓴 학생만을 탓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 의견이 다르다. 다음은 내가 추가적으로 남긴 답변의 전문이다.




그럼 그렇다고 감점을 하는 게 옳은 것이냐? 사실 교육자가 시험을 낸 목적까지 학생이 이해해 가면서 시험을 볼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출제자가 이런 걸 검증하고 싶어서 낸 문제겠지?라는 걸 깨닫고 알아서 이쁘게 문제를 풀어준다면 교사도 학생도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로피탈 한번 쓴다고 갑자기 쉬워지는 문제를 안 내거나 (즉 학생들이 출제자 의도를 따를 수밖에 없는 문제를 잘 내거나), 그럴 능력이 안된다면 학생들에게 로피탈의 정리를 사용하지 말고 풀라는 말을 미리 공지하거나 시험지에 적어 놓을 수 있겠죠.


이처럼 선생과 학생 사이에 누군가 먼저 한 발자국 다가와 주면 아름답게 마무리될만한 중립 지대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 둘 다 한 발자국도 안 온다면 굳이 굳이 누구의 탓이냐? 학생보다 경험도 많고, 어른이고, 평가를 하는 입장인 교사 쪽이 제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질문자는 학생인 것으로 보이니까, 그냥 중립 지대에서 먼저 한 발자국 다가가 준다고 생각하고 로피탈 없이 문제 푸는 연습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나는 이 "중립 지대에서의 한 발자국"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의 자발적인 한걸음들이 많은 사회적 장치들을 필요 없게 만들고 그에 따른 비용도 들지 않게 한다. 모두가 서로를 불신하고, 결국 아무도 한 발자국도 다가가지 않았을 때 결과적으로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질 시간에, 한 발자국만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은 힘든 일일까?


룰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략을 찾아내어 기발하게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 미덕인 사회 보다는 룰이 왜 존재하는 것일까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이 추구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수학시험과 수학 교육의 의미로부터 출발해서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어쩌면 당연한 진리에 대한 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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